▲ <예수냐 바울이냐> 비평적으로 읽기, 민중신학회 1월 세미나가 4일(월) 이제홀에서 열렸다 ⓒ에큐메니안

“바울은 예수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바울의 잘못된 이해를 교회가 이어받았고, 교회는 예수가 아니라 바울을 따르는 결과가 됐다. 교회는 예수의 뜻에서 너무 멀어졌다”

문동환 목사 경향신문 인터뷰(2015. 5. 14) 中

출간 당시 바울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예수냐 바울이냐> (삼인 출판사, 2015) 는 1970년대 유신 체제 하에서 광야 같은 한국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문동환 목사의 책이다. 그는 <예수냐 바울이냐>를 통해 바울과 그를 추종했던 기독교가 전파했던 것과는 다른 완전히 다른 깊은 진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있을 것을 있게 하시는 영께서 강자들이 구축한 바벨탑에 짓밟혀서 아우성치는 무리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삼고, 새로운 내일을 찾아 구하고 문을 두드리는 자들을 통하여 환희에 찬 ‘생명문화공동체’를 이룩하는 이야기다.  <예수냐 바울이냐>는 바울을 잘못된 이해에 이르게 했던 다윗왕조의 메시아사상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한편, 독자층에서 일었던 뜨거운 반응과는 달리 정작 학계에서는 책에 대한 이렇다 할 논평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매월 정기 세미나를 열고 있는 민중신학학회(총무 최형묵 목사)는 신년 첫 세미나로 <예수냐 바울이냐>에 대한 비평적 읽기를 통해 문 목사의 주장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4일(월) 이제홀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는 박경미 교수(이화여자대학교)가 발제를 맡았다. 박 교수는 문 목사가 예수는 출애굽 전승을 잇는 것으로 바울은 다윗 전승을 잇는 것으로 해석한 것을 주목, 전승의 역사적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문 박사의 바울 해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묵시문학 전승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 하며 발제를 진행했다.

▲ <예수냐 바울이냐> 삼인 출판사, 2015

박 교수는 먼저 이스라엘 전승에 관한 홀슬리에 연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대전승(지배계급의 신념 및 행동양식)과 소전승(농민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독특한 신념 및 양식)으로 이스라엘 전승이 평행적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두 전승의 상이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전승을 형성해 갔는지 그 살아있는 과정을 규명했다. 결론은 이렇다. 두 전승은 각기 독립적으로 병행해서 발전되었지만, 동시에 상이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서로 상대방의 전승을 전유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대립은 출애굽 전승이냐 다윗전승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전승과 소전승 사이에 출애굽 전승과 다윗 전승을 서로 전유하면서 대전승과 소전승으로 전수해온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박 교수에 의하면 문 목사의 주장처럼, 민중이 거짓된 다윗왕조 이데올로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민중적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고, 결국 전승이란 살아있는 민중경험 속에서 이루어진 역설적 재창조인 것이다.

또한 책에서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사관과 거기서 파생된 묵시문학적 세계관, 그리고 그것을 계승한 바울까지 민중적 삶과는 거리가 먼 반생명적 사상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오늘의 관점을 고대의 본문에 무리하게 적용 한 것”이라며 “그 시대의 절박성, 긴박성과 관련해서 본문과 그 배후의 인간 경험을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명기계 역사서와 묵시문학 본문을 탄생시킨 주체들은 민중이 아니라 유대 지식인들, 그 중에서도 소수 사제-서기관 계층이었다. 이들은 성서에서 오로지 야훼만을 내세우는 고집불통 야훼중심주의,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보여주는 지독한 여성혐오 경향, 종교적 광신주의로 비춰진다. 그러나 신명기 역사가와 그의 사관을 이어받은 묵시문학 본문들에 나타나는 관심사는 외국 통치자들의 지배 아래 있던 유대 백성의 절망적인 상황과 그로 인해 생겨난 다음과 같은 의문이다. ‘하느님은 여전히 역사에 대해 주권을 가지고 계신가?’, ‘왜 야훼께서 이 땅에 이렇게 하셨는가?’

박 교수는 “놀라운 것은 서기관들 가운데 소수 집단이 엄청난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제국의 지배에 저항했다”고 전했다. 이는 묵시문학이 ‘우주적 대파국’을 강조하고 ‘묵시사상’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것이라는 대중적 관념과는 사뭇 다르다. <예수냐 바울이냐>에서도 문 목사는 이러한 대중적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에 따르면 묵시문학은 그 반대로 제국이 백성들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하고 지원을 빼앗아 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하느님은 제국의 억압을 종식시키고 백성들의 주권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묵시문학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예수냐 바울이냐>에 따르면 바울은 유대 묵시문학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로마제국의 지배부터 벗어나게 해줄 메시아로 오인했고 예수를 믿으면 이방인까지도 메시아 왕국의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를 기다리는 대망공동체를 조성했다. 문 목사는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오류의 기원을 바울이 잘못 받아들인 메시아 기대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이러한 역사적 환원주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발제를 맡은 박경미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에큐메니안

박 교수는 “각 시대는 시대마다 오류와 책임이 있으며 일차적으로 각 시대의 현실에서 역사적 과오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바울이 세운 공동체들을 대망공동체로 규정하고, 그것을 관념적이자 종말론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공동체로 규정하는 것은 실제 공동체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룬 평등공동체적 이상, 대안적 삶을 위한 바울의 노력 등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울 역시 시대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그가 했던 행동들을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 평가 방식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바울의 선교와 활동은 예수의 생명문화공동체 운동을 곁길로 오도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공동체들, 즉 급진적 변혁을 앞당길 지역의 교두보들이었다”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산업문명의 폐해와 불평등 속에 있는 현재에서 바울의 사상과 실천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바울은 먼 유토피아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지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삶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바울을 “진정으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발제가 마친 뒤,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은 특별히 신학대학원 학생들을 비롯한 민중신학회 회원들의 많은 참여로 활발한 토론이 오고 갔다. 한 참가자는 “오늘 발제를 통해 바울이 단순히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가장 창조적으로 전승한 사람으로 이해하게 됐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토론이 오고 갔다 ⓒ에큐메니안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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