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부엉이가 무섭게 울어대던 겨울밤이었다. 사위는 적막강산에 싸여 있고 하늘엔 상현달이 비스듬히 기울고 있던 시간이었다. 바깥엔 겨울바람이 전선주를 핥으며 괴로운 신음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 시간, 꿈속에서 전화벨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날은 유독 공부방을 늦게 마쳤던 터라, 피곤에 절어 금방 잠자리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벨소리는 때로는 길게 때로는 단음으로 오랫동안 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부비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전도사님, 흐흑,>

어디에선가 들어봄직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등뼈를 훑어 내렸다, 갑자기 새벽녘에 듣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사람을 오싹 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울음에 젖은 목소리는 민통선의 스산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나는 몸을 한번 움찔 떨어야 했다 .

<누, 누구지?>

나는 말을 더듬으며 상대를 확인 했다. 새벽녘 전화기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금방 알아먹기 힘들었던 것이다.

<흐흑 저, 일홍이예요..전도사님>

나는 순간 전류에라도 감전이 된 듯 얼어붙고 말았다. 일홍이라면 내 둘째아들인 한얼이와 같은 반 친구인데, 매우 쾌활하고 명랑한 아이였다. 노동일이라면 그 또래 나이 못지않게 무슨 일이든 척 척 해내는 억척스러운 녀석 이었다.

나는 녀석의 장래를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녀석은 공부는 꼴찌였지만 육신으로 하는 일은 어느 또래의 친구들 못지않게 머리까지 써가며 어려운 일들을 잘 소화 해 내고 있었으므로, 저 녀석의 부모는 미래에 고생은 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는 아이였다. 

녀석도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아이였다, 녀석의 집은 성동리 최전방 서해 바닷가 철책선 옆에 위치한 양철집 셋방이었다. 하도 집이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밤에 집까지 녀석을 데려다 줄때면 녀석이 집에 걸어 들어갈 때까지 라이트를 그쪽을 향하여 한참동안 비추어주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 일홍아. 무슨 일이냐? 사고난거야? 왜>

나는 전류에 감전이라도 된 듯, 심장의 떨림을 느끼며 녀석의 안부부터 물었다.

<전도사님, 무서워요. 무서워죽겠어요 흐흑..>

녀석은 소리 내어 낮게 흐느끼고 있었다.
녀석이 무서워 죽겠다는 말에 나는 더 조바심이 났다,

<그래 일홍아, 내가 지금 갈 테니까 밖에서 크랙션을 울리면 바로 집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알았지 일홍아>

나는 애가 무슨 이유로 무섭다고 하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무작정 차 시동을 걸었다.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8검문소로 넘어 가는 새벽길은 어둠속에 새까맣게 함몰 되어 있었다, 북녘 땅에서는 잔잔한 전등불이 호롱불처럼 졸고 있었다. 임진강 하구언 DMZ에 위치 해 있는 유도섬에서 겨울새 우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8검문소에서 차를 정지 시켜 놓고 잠시 검문하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야밤중에 민통선 8검문소를 통과 하는 차량은 없다. 그 시각에 라이트를 켜고 넘어 오는 차량은 당연히 철저한 검문의 대상일 터이다. 내가 마을 목회자라는 것을 안 초병들은 순순히 거수경례를 붙인다.

다시 가속도를 붙여 일홍이네로 달렸다. 길이 워낙 꼬불길이라 큰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마음은 급하고 차량 속도는 낼 수 없고 환장 할 지경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철책선가에 납작 하게 붙어 있는 일홍이네 집이 약한 전등불을 깜빡이고 있다. 

그런데 일홍이네 집 근처에 갔을 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디젤 차량의 요란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선가 여자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차량 시동을 끄고 그 소리를 잠시 확인 하여야 했다. 시동을 끄니 그 울음소리는 더욱 더 명료하게 들려왔다.

인적도 없는 외딴 가구 근처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울음소리.. 예사 울음소리가 아니다. 나는 주기도문을 외우며 다시 차량 시동을 켜고 일홍이 집 대문 앞에 차를 세우고 크략션을 힘껏 <빵 빵> 하고 눌렸다. 

그때였다. 일홍이집 단칸방에서 후다닥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둠속의 일홍이였다. <빨리 타> 나는 여유를 줄 사이도 없이 일용이를 봉고차 앞자리에 태우고 <뿌앙> 하고 그 자리를 탈출 했다. 아이는 그때까지 떨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최대한 아이부터 침착 시키려 한쪽 손은 핸들을, 한쪽 손은 일홍이의 손을 잡고 다시 민통선 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 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이가 더 무서워 할 것 같아 내 귀로 직접 들은 여인의 울음소리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아이가 엄마와 함께 그 집에 살아야 할 것이므로 굳이 내가 직접 들었던 여인의 울음소리를 나도 들었다고 무서움을 보태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일홍이를 재워놓고 새벽녘을 새까맣게 지새우고 말았다. 예배당에서 아침기도를 마친 후 일홍이가 자는 방을 확인하고 서재로 들어갔다.

나는 울음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아이가 무사히 이 집에 기거 하려면 그 구슬픈 울음이 누구 울음인지 그리고 왜 우는지, 그 울음의 주인공을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다시 일홍이집으로 갔다. 일용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인가가 없기에 누구에게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철책선가에 군인들이 근무 서는 소초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소초에 들렸다. 보초병 몇몇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자 담배를 부벼 끈다.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혹, 오늘 새벽에 근처에서 여자 울음소리 듣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서슴지 않고 <들었습니다>한다. 나는 하마터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내가 헛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 반가워서였다.

<근데 말입니다, 그 소리가 오늘  한번이 아니고 자주 들려와요. 저 집에서요>군인들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은 일홍이네 양철 지붕이었다.

<그래요?> 나는 눈을 <흡> 뜨며 놀라는 모습을 해 보였다. <우리 중대장님도 저 집을 찾아가 물어보려는데 낮엔 아무도 없어요>

<근데 저 집에는 주인 할머니하고 어떤 아줌마가 셋방에서 남매만 데리고 사는데요. 그렇게 구슬프게 울 사람이 없어요>

나는 알았다하고 밤에 그 집을 찾을 요량을 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