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범죄행위

미국 언론사인 불룸버그(Bloomberg)에 시평을 쓰는 노아 펠드만(Noah Feldman)이 지난 12월 31일에 쓴 글을 읽었다. 제목을 번역하면 “한국 위안부에 대한 사과는 정의가 아니다.”(Apology isn't justice for Korea's 'comfort women')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말이 인륜에 반하는 범죄는 자동차 사고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과 다른 윤리적 차원이 있다는 말과, 윤리적 요구를 보상과 종결로 끝낼 수 있는가? 한국인들의 침묵을 돈을 주고 매입하는 그런 거래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펠드만의 글을 읽다보면 한국인인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얼굴을 붉히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옛 농경시대에도 시장이 있었고, 돈을 매개로한 상품의 거래 외에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되었던 노예를 사고파는 인신매매도 있었다. 윤리도덕이 발전하고 인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지금은 거래할 수 있는 것과 거래가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지금도 불법적인 거래가 횡행하고 있지만, 경제학적 용어인 거래(trade)라 하지 않고 밀매 내지 "실어 나른다."(trafficking)는 말을 사용한다. 무론 유비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지만 정치적 거래라는 말도 있긴 하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타협과 절충이 아닌 밀실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빈정대서 하는 말이겠다.

거래를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범죄행위와 관계된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범죄행위를 한 측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기 전에,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범죄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으며, 합당한 보상행위를 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에라야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 이 3 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진정한 용서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실수나 실례라면 진정한 마음으로 말로 사과할 수 있을 것이고 상대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속 좁은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일본의 전범들이 행한 범죄죄행위의 피해 여성들이 대만과 필리핀 외 다른 나라 여성들도 있다고 들었다. 같은 피해를 입었으니 상식적으로 대만과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및 윤리적 요청을 전달할 책임이 있는 정부당국자들이 함께 모여 대책을 숙의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다른 나라들은 일본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이러한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유효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계약이란 일방이 이행하지 않으면 깨어지는 것이니,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잘된 것이라면 유지가 될 것이고, 언젠가 잘못된 것이라 판명이 되면 국가 사이의 합의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무효가 되거나 해지 또는 파기될 것이나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협정이니 합의니 하는 것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범죄에 대해서도 형법이라는 것이 있어, 범죄자가 용서를 빌든 말든 사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심각한 피해를 준 사람에게 말로 “진정으로 사과합니다.”하면서 돈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피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라도 대체 범죄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 하면서 범죄행위를 한 자의 정신적 건강상태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행한 범죄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가의 전쟁범죄에 대하여 또 남은 것이 있다. 범죄행위와 그에 따른 용서와 회해가 가능했다면 그 역사적 사실은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의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양국에 수많은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이 있으니 나라 사이의 합의와는 별개로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나름대로 올바른 길로 간 것인지 아닌지 평가를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는 어떻게 기록을 남기고 한국의 역사학자는 어떤 시각으로 기록을 남길 것인가?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가 있고 지금도 사용되는 말이다. 순수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도 용서와 처벌, (화해 그리고 배상이란 절차가 없이는 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전쟁 범죄자는 반드시 개인적인 처벌을 받게 되고 전쟁을 일으킨 국가는 국가대로 책임을 져야한다. 돈으로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 자체로 모든 전쟁범죄 행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종군했던 모든 일본인들이 전투가 아닌 다른 잘못을 한 데 대해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가정을 이룬 그들이 누구에게 그러한 사실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일본의 정치인들 중에 자신의 아버지나 조부가 종군하면서 혹시라도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 멀쩡한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지 않겠는가?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다. 피해자는 존재하고 범죄자는 개별적으로 숨어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침묵한다고 해서 피해자와 피해국가에까지 침묵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윤리적인 사안으로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 당국자와 성공적인 협상을 했다고 모든 것이 종결된 것이 아니다. 단지 일본의 미래세대에게 자신의 짐을 떠 맡겼을 뿐이다.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한 후에 용서를 청하지 않는 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구차한 공식적 “사과”로 끝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범죄에 대한 사과는 노아 펠드만(Noah Feldman)의 말처럼 정의롭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박상조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2010-2014.3)을 역임하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인간중심발전론적 시각으로 본 대기업정책의 평가"(한국학술정보/2007),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사람인가 돈인가" (이담북스/2011), "경제시평 -무너지는 바벨탑 수리하기"(이담북스, 2014)가 있다. 2011.11부터 내일신문 에 경제시평을 기고하고 있다.

박상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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