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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갈릴리 마을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이원돈 칼럼 - 예수와 마을 씨리즈 12>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 승인 2016.01.14 15:56

지역의 십자가를 지고 마을의 생명망을 짜자!

2천 년 전,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도 "헬 조선" 못지않은 "헬 이스라엘"에 태어났다. 민중은 로마 제국의 폭정에 시달렸고 부패하고 무능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착취에 시달렸다. 유대 민중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했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구세주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 밖에 희망이 없었다. (서광선 교수)

초대교회의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은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을 어떻게 심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즉, 이 시대에 우리 신앙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현실에서 늘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의 악행을 부인하고 꼬리를 자르고 오히려 희생양을 만들어 남에게 뒤집어씌우면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 악의 정체를 폭로하고 악을 심판하시면서 오시는 구세주를 종말론적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심판을 받고 종말을 고하며 이제 곧 새 세상이 올 것이라는 강력한 종말의 신앙은 바로 당시의 헬 이스라엘과 헬 로마를 견디게 한 초대 교회 신앙의 핵심 이었다.

   
 

많은 사람은 지금 이 헬조선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신앙은 우리로 희망을 잃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고 준비하라고 명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 헬조선을 만들어낸 로마나 제국의 집권자의 이야기나 그림이나 시나리오가 아닌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아래로부터, 민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그림과 새로운 미래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이 땅을 온통 불안 증폭, 피곤 사회로 만들면서 피곤 사회를 넘어 탈진하는 헬조선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맘몬이 지배하는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은 무엇인가?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먼저 가겠다고 하시면서 갈릴리 마을로 돌아가라 하신 부활한 예수님은 갈릴리 마을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하려 하신 것일까?

다시 갈릴리 마을로 가서 우리가 지역과 마을에서 십자가를 지고 온통 지역과 마을을 불안 증폭, 피곤 탈진 사회로 만들면서 헬조선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이러한 맘몬이 지배하는 이 소비사회의 이 지옥에서 우리는 지역의 생명을 살리는 부활의 생명망을 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와 지역과 마을의 가장 심각한 현상은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 이러한 헬조선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 잡혀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탈진하여 점점 일할 의욕과 삶의 의욕을 상실하는 지옥과 같은 헬조선의 상황으로 추락하여 가고 있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에 부활의 생명망을 짜는 일이 절실한 것이 바로 오늘 한국 사회 피로사회 넘어서서 탈진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일주일 내내 많은 일을 하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얻고, 행하고, 소유하려 한다. 이러한 상품 소비 시스템은 우리가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사용하고, 더 많이 먹고 마시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극심한 경쟁은 쉼 없이 이어지며 더구나 한국 사회는 장시간 노동이후에도 또 스펙을 쌓지 않으면 죽음이다. 이처럼 노동이외에 스펙을 쌓아야만 하는 한국 사회는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무거운 짐을 진” 피로사회 넘어서서 탈진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주의, 소비주의, 맘몬주의는 온 세상을 불안 증폭, 피곤 사회로 만들고 피곤 사회를 넘어 탈진 사회, 탈진 사회를 넘어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러한 피로사회와 탈진 사회를 만들었고 급기야는 이러한 지옥 같은 헬 조선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맘몬이즘이 오늘 우리의 마을과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1. 오늘 우리는 오랜 식민의 경험과 독재의 경험으로 자치의 능력을 다 상실했다. 우리의 역사의 오랜 식민지의 경험과 오랜 독재의 경험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 젊은이들을 일할 의욕이 상실된 무기력 무능력한 지옥과 같은 헬조선으로 만들었음을 잘 알려 주고 있다.

그런데 미래학자 제임스 러스킨의 책 <한계비용 제로사회>에 의하면 미래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자연을 착취해서 살아갈 수 있는 그 한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제 석유화학 에너지의 시대가 끝난다는 것 이다. 한계효용 제로 사회란 결국 이윤을 위해 극한 경쟁을 하던 생산자들의 기술의 발달로 결국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는 3차 혁명 초입에 서 있다고 한다. 에너지는 석유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뀌고 그렇게 되면 수직적인 소통에서 소통적 소통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일하는 방향도 경쟁에서 협동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일은 바로 자동차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카 셰어링(Car sharing)’ ‘하우스 셰어링(House sharing)’ ‘재능 교환 네트워크 서비스’ 등 앞으로는 ‘마이카시대’가 아닌 공유자동차, 공유 집이 탄생할 것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역사상 최초로 자신이 필요할 때 네트워크로 언제든지 차를 빌리고 공유하고 심지어 집을 빌리고 공유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이러한 협동적 공유 사회는 먼 미래가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 마을에서 경쟁과 소유와 독점의 길에서 협동과 공생애 기초한 생명적 자치의 새 길의 미래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에는 돈거래 없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동육아를 꿈꾸는 어린이집이 생겨나기도 하고, 스스로 집을 짓고 고치는 목수들이 적정 기술을 살려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텃밭을 가꾸는 새로운 유형의 농사꾼과 새로운 먹거리 운동과 새로운 의료 협동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미래의 이 세 가지 일 즉, 재생에너지 사용과 수평적 의사소통과 그리고 협동이 가장 잘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려면 이러한 협동적 공유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출발은 소유적 인간에 사로잡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자신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려는 그 삶의 태도를 새로운 협동적 공유의 시대를 향한 호흡으로 바뀌는 것에 있다.

오늘 우리는 소유적 인간에 사로잡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자신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협동적 공유사회를 살려면 시간표를 짤 때 반드시 이웃과 공동체의 시간을 배려해야 한다. 가족과 부부와 이웃과 공동체의 시간을 배려하고 공유의 시간과 물질을 만들어 가야 한다. 특별히 마을의 축제는 이러한 협동적 공유의 삶의 미래적 가치를 배우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우리 젊은이들이 이러한 공동체 축제에 적극 참여를 유도하여 협동적 공유의 미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협동적 공유 사회는 우리가 물질주의 소비주의 맘몬주의에 저항하는 것인 동시에 죽음의 문화에 저항하는 것 물신 숭배로 인한 불안, 피로 탈진 그리고 지옥화되는 우리의 가족과 교회와 마을에 대한 저항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임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의 시간과 물질을 협동적으로 공유하는 안식일은 바로 이 맘몬적 소비사회의 저항이 되어야 한다.(월터 브르거만) 왜냐하면 안식일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을 듣고 실천함을 준비함으로서 바로 맘몬 즉, 화폐자본과 소비자본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다시 갈릴리 마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여야 할 일이 바로 거짓 풍요와 안정이라는 ‘제국의 파라오 시스템’ 즉 풍요의 경제와 침묵의 종교와 죽음의 문화를 중심으로 소비적 삶을 사는 제국적 맘몬이즘에 저항하는 것으로서의 마을을 협동적 공유사회로 만드는 생명망을 짜는 것부터 시작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까지 공부한 것을 중심으로 다시 마을로 내려오신 예수님과 제국적 맘몬이즘에 저항하며 마을을 협동적 공유사회로 만드는 생명망을 짜기위해 우리가 마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할 일을 다시 한번 요약해 보자!!

   
 

그 첫째는 사귐과 나눔의 단계이다. 제일 처음 갈릴릴 지역에 들어가셔서 예수님이 하신일은 공동체가 파괴된 곳에 밥상공동체를 만드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별명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요. 즐겨 같이 먹고 마시는 자였다. 그러한 공동체 생활로 공동체가 파괴된 곳에 함께 먹고 마시고 나누는 식탁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대성을 만든 것이 예수의 갈릴리 선교의 첫 번째 전략이었다. 이러한 식탁공동체는 오병이어 사건과 같이 나누는 사건을 통해 더욱 풍성 해지고,이러한 풍성한 기적은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자기의 몸을 나누는 성만찬으로 이어진다.

둘째, 이러한  나눔과 사귐의 과정을 통해 이제 가난한 자들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새로운 믿음이 탄생된다. 그들에게 새 믿음이 생기자 그들에게는 에파타!(열려라!), 달리다쿰!(소녀야 일어나라),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악령아 썩 나와라!,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는 예수의 질문에 바티매오가 눈이 보인다 하고, 벙어리가 말하고, 들을 귀 있는 자가 듣는다. 예수를 만난자마다 새로운 믿음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기 새롭게 눈뜨고, 듣고, 보고, 말하는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둘씩 갈릴리 전역에 급속도로 탄생하기 시작한다.

셋째로, 눈, 귀, 입이 새로이 열린 갈릴리의 마을 주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눈, 귀, 입이 새로이 열린 믿음의 백성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여인은 예수의 옷깃만 만져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다.(눅8:40-48)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모든 장벽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뚫고 예수에게 접근한다.(눅5:17-26) 어떤 창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바리사이와 식사하는 예수에게 나타나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에게 헬 조선과 같은 불안 공포를 조장하는 낡은 지옥판을 새로운 생명의 길로 갈아 없는 새로운 룰과 판을 만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베데스타 연못의 38년 된 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이 실행될 수 없는 미신적 경쟁의 확률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데스다의 38년 된 환자의 치유 이야기가 바로 물이 동할 때 남보다 먼저 뛰어드는 무모한 경쟁을 포기하고 지금 너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협동과 자립의 그 길로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명령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이 38년 된 운명론과 숙명론에 사로잡힌 병자를 치유한 치유의 핵심 고리가 바로 이 운명론과 숙명론의 고리를 이 38년 된 병자에서 깨뜨려 내는 것인 줄로 믿는다. 이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낡은 지배의 판과 룰을 협동과 자립과 생명이라는 새로운 신앙의 상상력으로 갈아 엎는 새로운 상상력과 규칙과 새로운 그림과 지도와 대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헬 로마 헬조선의 악몽에서 깨어 일어나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부활의 음성을 듣고 다시 갈릴리 마을로 가서 오병이어의 잔치를 베풀고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며 부활의 생명을 전하며 침몰하는 지역과 마을에 부활의 생명망을 짜서 이 좌절과 절망과 죽음의 맘몬적 권세를 이기고 다시 마을에서 만나자는 협동적 공유의 신앙으로 부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wewinw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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