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무인도 자코에서 하루쯤 지내는 것은 버킷리스트에 올려도 좋을 거라고.

또 누군가는 자코를 말하기를 지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며

천상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라고.

 

내 생각도 그랬다.

천상은 결코 잘 가꾸어 놓은 곳은 아닐 거라고, 처음 그분이 만들어 놓으신 그 모습 그대로 자연의 순리대로 존재하는 곳 일거라고.

자코 가는 길이 그랬다.

 

동남아시아에 가장 끝자락에 있는 막내 같은 섬 동티모르.

호주에 가까워 혹자는 동티모르를 오세아니아 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도양 가장 끝자락에 있는 자코섬을 혹자는 남태평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티모르에서 살다보면 거리가 몇 Km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걸리느냐가 중요하다.

자코를 다녀 온 이들은 차로 족히 여덟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그 정도 시간이 걸리는 곳이라면 소풍을 나서듯 가볍게 떠날 곳은 결코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들떠 아침 일찍 일어나 주먹밥을 싸며 부산을 피웠다. 힘을 팍팍 주어 꼭꼭 눌러 싼 주먹밥과 망고, 파파야, 제철이라 한껏 맛이 오른 파인애플까지 과일을 챙기고 커피도 탔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여행에 달뜨고, 쪽빛 바다에 취한 우리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래사냥‘을 부르고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며 딜리에서 자코로 향했다.

 

우리를 태우고 가는 차는 어떠한 험한 길에도 너끈히 갈 수 있는 사륜구동차다.

그래서 인지 키가 작은 나는 차를 오르내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를 태운 사륜구동차는 곳곳에 험한 길이 나와도 큰 요동 없이 의연하게 잘 달려 주었다.

 

동티모르는 면적이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 정도지만 산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길은 험한 산길이다. 그러므로 동티모르 사람들은 바닷가에 접한 도시에 살지 않으면 산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또다시 산속 길로 얼마를 갔을까

고산지대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호수가 나왔다.

그러나 호수는 우기 철인데도 비가 오지 않아 안타깝게도 소나무 등걸처럼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이 호수에 살고 있다던 악어는 어디로 갔을까.

 

바다는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았고, 산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산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집집마다 대가족이 살고 있는 것을 빨랫줄에 길게 널어놓은 빨래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디서나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롭게 보여 좋았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빨랫줄에 널려 있는 하얀 기저귀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을 볼 때나 이불 호청이 길게 펼 져진 모습을 볼 때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서로 다정하게 지 낼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자코로 가는 길에 보이는 마을들이 그랬다. 아이들 옷부터 할아버지 옷까지 길게 늘어 선 옷들이 빨랫줄 위에서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마르고 있었다.

 

간간이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논들은 천수답이어서 가뭄에 논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오랜 가뭄이 안타까웠고 이 우기에 속 시원히 비가 내려주길 바랐다.

 

숲은 사람 손이 타지 않아 숲길은 울창하고 나뭇잎은 새순에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유월의 나무처럼 싱그러운 모습을 하고 우리를 맞이하고 배웅했다.

 

어느 만큼 왔을까, 더위에 지치고, 거리 개념 없이 달려 온 시간에 지친 우리가 잠시 졸고 있는 동안 뚜뚜알라에서 이정표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루 자코 8km.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부터였다.

차보다는 차라리 기어서 가는 편이 더 나을 듯 했다.

처음부터 길로 만든 곳이 아니었다.

찻길은 더욱이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다니던 길에 차가 가고 있을 뿐이었다.

8Km가 80km 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다.

어찌나 길이 험한지 몇 번이나 그냥 내려서 걸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를 태우고 달리는 빌립은 침착했다.

스물다섯 살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차분하게 그 험한 길을 동요 없이 우리를 자코섬이 보이는 바다 앞에 내려 주었다.

 

무려 아홉 시간이나 되는 길을 휴게소는 물론 식당도 없었으니 차안에서 주먹밥과 과일을 먹고,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잠시 빵과 커피로 점심을 대신하며 강행군을 하여 도착한 곳 발루 자코, 그 감회를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자코섬이 보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저편의 자코섬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면 될 것 같았다.

우리를 자코섬에 내려놓은 할아버지의 쪽배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저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무인도에서 원시인으로 살아야 된다며 마냥 달뜬 우리들의 웃음은 태평양으로 퍼져나갔다.

 

누가 알까 남태평양의 이 작은 섬을.

자코의 바닷물 속에서 이름 모를 조가비를 잡고, 물놀이를 하고,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던 그 즐거움을 내 지인들은 내 기억이 멈추는 날까지 평생을 들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떠나기 전부터 부탁한 생선구이는 언제나 나오려는지.

우리가 Hamnaha (배고파요)를 외쳐도 소식이 없었다. 주방 쪽으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활활 타고 있는 장작불을 제쳐놓고 장작에서 떨어진 작은 숯으로 생선을 아주 천천히 굽고 있었다.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오르고 별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아따우로에서 보았던 별들은 친절하게도 발루 자코의 밤하늘에서 다시한번 우리에게 인사를 하였다. 가끔은 별똥별도 보여주며.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아름다운 섬 자코에서 하루를 보내며 시름이라 명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던 오늘은 우리의 삶에 보너스 같은 행복한 여정이었다.

 

창문 없는 방에서 잠을 청하는 우리들의 귀에 대고 “뚜개”라 부르는 도마뱀들이 얼마나 “뚜깨, 뚜깨”하며 소리를 지르던지, 그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음이 감사했다.

 

이른 아침, 어제 배를 타고 자코섬으로 향했던 곳으로 가 보았다.

할아버지 몇 분이 긴 대창을 들고 허리춤에 칼을 차고 물고기를 잡으러 바닷길을 걸어가고 계셨다.

대창으로 잡을 물고기를 생각하니 어젯밤 우리가 먹은 생선구이에 대창으로 찔린 상처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자코에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