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포기한 세대?

우리는 일찍이 연애, 결혼, 출산(3포)을 포함해 내 집, 인간관계를 포기했고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세대인 N포 세대라고 불리며 자칭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가는 듯하다. 청년들에게 결혼, 출산, 집 등등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는 ‘청년’이라는 단어와 함께 묶이는 게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 단어는 늘 함께 한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대한민국은 연애공화국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연애는 청춘에서 노년까지 모든 세대를 가로지르는 한국인의 당면과제”¹⁾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연애를 포기한 세대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시대가 어렵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 사진출처 : IU <스물셋> 뮤직비디오 中 한 장면

같은 세대(?)인 가수 아이유의 노래가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아이유, 스물셋)” 아이유가 ‘N포 세대’를 대변한다는 건 과한 해석이지만, 사랑이 하고 싶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것. ‘N포 세대’의 솔직한 심경이다. 우리는 자칭 ‘N포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은 어렵다

하지만 사랑은 어렵다. 혼자 하는 짝사랑도 어려운데 생활방식, 사고방식, 취향, 사상이 다른 누군가와 하는 사랑은 오죽할까. 사랑과 연애가 어렵다는 건 전 세대가 공감하는 영역인지 서점에는 사랑과 연애에 대해 코치하는 책부터 사랑을 주제로 한 철학, 사회과학, 종교서적들이 쌓여있다. ‘성性’과 ‘사랑’을 주제로 오래 공부한 이들도 ‘사랑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랑 실패담을 보며 위안을 얻지만 남이 어려워한다고 내가 어렵지 않은 게 아니니 곤란하긴 매한가지다. 하물며 사랑이라는 분야에서는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어리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유명한 니체도 사랑 앞에서는 찌질 했다.²⁾

우리는 사랑에 대해 글로 배우는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과 연애가 어렵다는 건 다들 공감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지거나, 무용론에 빠지거나. 전자든 후자든 사랑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 부딪히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과정 중에, 혹은 사랑을 알기 전에 사랑에 관한 책이나 글귀를 읽으며 공감한다. 고미숙은 “사랑은 생명의 원초적 동력”이자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므로 ‘열렬히, 제대로’ 배우라고 조언한다.³⁾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관한 책이 항상 베스트셀러로 있다는 것은 우리는 열심히 실행하고 있다는 말이고 우리는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는 증거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명동, 종로, 대학로를 걷다보면 사주를 봐주는 집, 타로카드점이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연애와 사랑에 상주해 있다. 사주, 타로카드로 미래나 미래의 연인, 현재의 연애관계 등을 점치는 기독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신이 정해놓은 운명적인 관계는 꽤나 낭만적으로 보인다. 영원함에 대한 숭배는 신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한다면 “훌륭한 직장과 운명적인 사랑”, 둘 중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미디어는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 말하며 낭만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 낭만적인 분위기, 낭만적인 것은 특별하고 비싼 음식, 영화, 뮤지컬 등의 문화생활, 여행 등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애인과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을 낭만적이라고 말한다. 인사동에 자리한 예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순간을 낭만적이라고 말한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밥을 먹는 순간을 낭만적이라고 말한다. 월화, 혹은 수목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연애는 사회가 소비하는 낭만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첫눈에 반하기, 가족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남성과 여성, 신분상승, 소소한 연애 등등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사랑과 연애를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의 상품 소비, 계급, 권력 등 다양한 것들을 은폐시킨다. 우리는 소위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낭만적 사랑을 꿈꾸며 있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낭만적 연애를 팔고 있는 시대에 우리의 연애는 낭만적일 수 있을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헬조선에서 살아남기’를 몸소 실천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 중 운명적인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낭만적인 삶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기에는 대한민국이란 현실이 녹록치 않다. 사랑에 삶을 올인(All-in)하겠다는 생각은 주변인들의 걱정 어린 충고를 받을 것이다. 물론 훌륭한 직장을 선택해도 ‘젊었을 때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경험을 해보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존재하겠지만. 낭만적인 사랑도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다. 사실 훌륭한 직장도 보장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거 맞나?

여차저차 어렵게 연애를 시작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미디어가 주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우리는 거울을 보며 콤플렉스를 곱씹는다. 동화 백설공주에서도 백설공주가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다는 백설공주의 새 어머니도 끊임없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를 물었다. 우리는 더 하다. 20대의 연애는 자기혐오의 문을 두드리는 행위이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받고 싶어진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길 원한다. 애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연애를 하면 할수록 사랑한단 말로 상대방의 모든 부분을 이해하려고 한다. 남들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치졸함, 인간적 나약함, 어리광을 주고받으며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이 지배와 예속 관계를 반복하는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⁴⁾ 스스로에 무지하며 타인의 상처를 감싸려고 하는 것은 연민과 동정이고 순간적인 안정감을 줄 뿐이다. 우리는 6개월용 상담센터를 전전하며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치유에는 관심이 없고 위로에만 관심이 있을 뿐. 배려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상대에 맞추며 스스로의 호(好), 불호(不好)를 주장하지 않는다. 연애를 시작하며 자기혐오의 문 앞에서, 문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대중들에게 사랑을 소비하게 만드는 ‘연애공화국’에서, 우리는 연애를 포기했다고 선언했다. 소위 있는 사람들만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제대로 사랑(연애)할 수 있을까? 사랑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현실에서 사랑(연애)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은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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