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시대에 ‘사랑’이 씨가 말라가고 있다. 사랑이 씨가 마른건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행위의 문화적 풍경이 바뀐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전세대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성’(性)과 연동하고, 그래서 사랑/성은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가리키던 기표로서의 기능을 멈추고, 사랑과 성과 연애 등의 기표들은 이제 제 각각의 갈 길을 바삐 가는 중이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그래서 성을 포기하고 따라서 사랑도 포기된 것인가?

무언가 기표들의 흐름 아래서 진행되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기표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 가상적인 기의적 흐름을 포착하지 못한다. 기의(the signified)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프랑스태생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말하지만,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 우리 안에 내장된 기표들의 범위 안에 한정된다고 해서, 외부 세계가 우리들의 기표들의 연쇄로 한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논리적 비약이다. 본 연재는 바로 그 ‘논리적 비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사랑은 여전히 가능한가?’라는 물음과 더불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하고 어떻게 연애라는 삶의 스타일을 유지하는가를 탐문해 보고자 한다. 사랑을 성으로 등가 환원시켜 버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많은 경우, 사랑은 성적인 욕망과 어떤 식으로든 연동하고 있었다. 물론 프로이트가 ‘성’으로 기표화한 것을 라캉은 솜씨좋게 ‘욕망’으로 치환해 버리면서, 우리는 의식을 움직여 나아가는 무/의식이란 것이 더 이상 ‘성’이라는 단순한 기표로 처리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이를 묻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사랑이 가능한가의 물음은 바로 사랑이라는 가상의 기표를 체화하며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소위 말해서 ‘연애’에 대한 물음말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학하며 잔뜩 웅크려드는 세대라고 칭하여지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젊은 청춘이다. 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온 세상을 움켜잡고 흔들고 싶은 야망이 살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야망과 사랑의 결합이 바로 ‘연애’라는 모습으로 혼융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 모습은 어느 정도 부패하고 오염된 시대적 구조의 영향을 받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속에서 청년 주체의 몸짓을 분별해 내고자 한다. 그 주체적 몸짓을 통해 시대의 주체는 어떤 모습으로 행위하고 상호작용할 것인가를 예측해 보는 것은 정녕 흥미로운 몸짓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소개>   박일준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과, 보스턴대학 신학석사, 드류 대학 철학박사. 종교학과 철학과 신학의 접경 지역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며, 특별히 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들을 종교철학적으로 성찰해 나아가면서 ‘인-간’ 즉 ‘삶-사이’를 ‘인간-이후’ 시대에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갈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소속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혼종적 인간론 연구: 화이트헤드의 사건적 존재론과 진화론과 인지과학을 통한 사이-존재로서 인간론 구성’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박일준(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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