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광장: 빨간 약 or/and 파란 약’은 청년 필진만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그동안 에큐메니안 신학위원회는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모아, 연재하는 방식으로 필진을 운영해 왔다. 우리 시대의 여러 지점들을 조명하는 이분법들 중 이론/실천 혹은 이론/현장의 이분법이 있다. 본래 상아탑의 폐쇄된 공간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근대적 학문방식을 꼬집는 뼈있는 비판의식이었던 이 이분법이 우리 시대에는 자신들의 공부를 게을리 하는 학인들의 변명으로, 자신들이 하던 익숙한 것을 반복하려는 활동가들의 변명으로 남용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이론적 관점들의 도입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들의 글 속에 근원적으로 결여된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미래 세대의 결여’였다.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죽는다.’ 이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과정의 종말을 대할 때, 반응은 극단적으로 간략히 범주화하자면, 두 가지이다: 죽음이라는 과정의 불가피성을 수긍하고, 그에 대하여 자신만의 극복 방식을 찾는 존재와 아예 그러한 종말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고 오히려 죽음의 반대인 ‘영생’을 찾으려는 존재. 인류 역사에서 전자의 방법을 택한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고, 그 의미를 이해한 사람들은 더 적었다. 미래 시대와 세대에 대한 염려는 바로 우리 인간이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과정을 마주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생물학적 지혜로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장된 방법이다.

‘나’로서 영원히 살아남는 인간 존재는 없다.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서는 죽어야 한다. 죽지 않으려 하면, 그것은 그 존재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생명의 망 속에서 (자연과 문화를 망라한) 생태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인간이 죽기를 거절할 때, 전체 생태계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 거의 또는 전혀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으면, 전체 생명 망의 작용에 균열이 생긴다.

생명의 망은 삶 뿐만 아니라 죽음과도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말하면서 우리는 죽음을 존중하지 못하는 역설을 마주하는데, 우리가 ‘생명의 망’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생명/죽음의 망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존재나 개체가 아니라 같은 동전의 앞뒤면처럼 작용한다. 우리들의 글 속에서 ‘미래 세대가 결여’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의 굴레로만 즉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만 세상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철학자 지젝이 지적하듯이, 주체는 “사라지는 매개자”(vanishig mediator)이다 혹은 그래야 한다. 자신이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영생하려 할 때, 모든 인물과 조직은 부패한다. 청년광장은 우리들의 관점에서 우리들의 미래, 즉 우리가 없는 미래를 위한 기여이다.

우리 시대 청년 세대에 대한 수없이 많은 대책들과 위로와 힐링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나름대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 청년세대를 향해 조언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무의미하다. 최근 시대, ‘세대 차’(generation gap)이라는 말이 회람되는 것은 이전 세대의 조언과 교훈들이 정작 다음 세대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를 어찌 염려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겠는가? 다 우리의 딸들이고 아들들일터인데. 문제는 그런 조언들이 전혀 젊은 세대들의 삶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대와 상황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전 세대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도 아마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세대 차’ 개념이 우리에게 가리키는 것은 결국, 현 세대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가장 목소리를 내야할 주체는 바로 청년 세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주변 세대들이 아무리 조언을 해주고 위로를 주고 힐링하겠다고 해도, 그것들은 그냥 non-sense할 뿐이다. 청년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청년광장은 그래서 청년들의 목소리로 운영해 나아가는 자리이다. 청년의 눈과 목소리로 시대를 향해 외치는 자리이다. 그 이름으로 선택한 ‘빨간 약’과 ‘파란 약’은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장면에서 유래한다. 이 영화에서 활용하는 시공간은 ‘사이버 공간’(cyberspace)인데,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이를 “전뇌공간”(電腦空間)으로 번역한다. 아마도 두 영화가 회람되던 시기가 같진 않지만, 대체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이니 평행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현실이 ‘사이버 공간화’가 되어가는 미래 현실을 그려주고 있다면,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정말로 실재(real)하는 것이냐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지향점은 다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You take the blue pill and the story ends. You wake in your bed and you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and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hole goes. Remember! All I’m offering you is the truth, nothing more."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권을 제시하지만, 이미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암시 속에 어떤 것을 선택해도 좋다는 제안은 결코 아니다. 파란 약을 먹고 마치 현실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지금처럼 살아가겠다면, 파란 약을 먹으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살아가겠다면 왜 굳이 파란 약을 먹어야 할까? 먹을 필요없다. 바로 지금이 그 현실이니까. 빨간 약이든 파란 약이든 내 손으로 결정해서 먹을 용기가 있다면, 이미 지금처럼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며 복종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넘어선 것이다.

그 용기를 지닌 이라면, 빨간 약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했다. 청년광장은 청년들에게 바로 그 ‘용기’를 제안한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느끼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삶 말이다. 왜냐하면 미래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니까. 아직 아무도 죽음 이후를 연장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니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 속에서 책임지고 결단할 주체는 지금 세대가 아니라 청년 세대인 것이다. 그리고 청년 세대의 용기와 결정은 언제나 그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청년광장 필진’들은 주체적인 글쓰기를 시작한다. 우리의 미래를 그들의 결정에 위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들이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되기를 희망하며, 기꺼이 그렇게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욕망하며.

<필자 소개>   박일준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과, 보스턴대학 신학석사, 드류 대학 철학박사. 종교학과 철학과 신학의 접경 지역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며, 특별히 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들을 종교철학적으로 성찰해 나아가면서 ‘인-간’ 즉 ‘삶-사이’를 ‘인간-이후’ 시대에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갈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소속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혼종적 인간론 연구: 화이트헤드의 사건적 존재론과 진화론과 인지과학을 통한 사이-존재로서 인간론 구성’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박일준(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