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목사가 먹사짓을 하는 만행을 했다”느니, “남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사기꾼노릇을 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정신적 위자료를 지불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70평생 처음 들어보는 이런 위협을 받으면서, 처음에는 그 당사자에게 무척 화가 나고 우울하고 잠도 자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시련에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 되돌아보게 되면서 점차 마음에 평정을 찾게 되었다.

그 분이 어떤 말을 하던지 내가 상처받는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런 시련으로 내가 더 성숙해지면 그 분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내 생각으로는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그 분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에니어그램 2번 형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예라고 본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흔히 두 얼굴의 휴머니스트라고 한다. 무엇이든지 잘 주고, 무슨 일이든지 잘 돕고, 봉사를 잘하는 모습은 분명히 휴머니스트이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보면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면보다는 실은 자기가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남에게 무엇이든지 잘 주고, 무슨 일이든지 잘 돕고, 봉사하는 성향이 있어서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2번 유형이 건강할 때에는 감정이입이 잘 되어 공감을 잘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남들 때문에 애끓지 않고 부드럽고 넉넉한 마음을 갖는다. 역지사지란 말처럼 남들의 처지에 자기를 놓고 보며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가슴이 따뜻하고 남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봉사하면서 남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상대방이 행여나 빚진 감정을 느낄까 조심하며 배려한다. 실상 나에게 이런 점이 많이 부족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나에게도 이런 성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에니어그램으로 본 성서인물이야기에서는 2번 유형의 대표적 인물로 룻, 막달라 마리아, 요한을 들고 있다. 룻은 기근으로 고향을 떠나 모압 땅에 살던 시어머니 나오미가 풍년이 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이 간청을 한다. “저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저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

실상 젊은 나이에 남편을 사별한 다른 신을 섬기는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를 위해 시어머니 고향으로 따라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다. 작은 며느리 오르바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처럼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것은 2번 유형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본다. 자신의 필요보다 남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돌보는 룻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런 선택으로 룻은 이방여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해 다윗 가문에 편입되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된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먼저 주는 사람, 돕는 사람, 돌보는 사람으로 성격의 특징이나 성향이 묘사된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필요는 기피하면서 남의 필요는 어려서부터  잘 아는 사람이다. 본인의 필요는 잘 보지 못하는 탓에 자기가 한 일을 남에게 자랑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자신의 성격과 격정 때문에 정신 상태가 건전하지 못했고, 유혹을 이기지 못해 타락했으며, 소문난 여자로 창녀 생활까지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을 떨어져 나가게 한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건강한 모습을 회복해 옥합을 깨트려 값진 향유를 흔쾌히 예수님에게 바치며 헌신적인 봉사를 하게 된다.

이런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릴 때, 장례를 치를 때, 부활하셨을 때 그녀의 이름이 가장 먼저 거명되고 부활을 가장 먼저 선포한 증인도 그녀의 몫으로 되었다. 남자들과는 달리 겸손하게 예수를 따르며 뒷받침하는 그녀의 모습은 전형적인 2번 유형의 건강한 모습이라고 본다.

2번 유형은 늘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며, 다른 사람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와주며 뒤에서 협력하는 형태를 취한다고 한다. 사도 요한이 전형적으로 이런 삶을 살았던 분이다. 야고보, 베드로와 더불어 ‘삼총사’라고 할 수 있는 요한은 중요한 장면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증인이 된다.

예수님께서 아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다볼 산에서 영광 가운데 변모하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실 때,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요한의 이름이 늘 거명된다.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는 요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나 지배욕이 작동하고 공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로서 가만히 있어도 최측근인데,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옆에 앉게 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지위와 권력을 추구했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라고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2번 유형의 격정은 자만 또는 자랑이라고 한다. 2번 유형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싫기도 하고 좋지도 한 양가적 관계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해드리려 하는 행동이 습관처럼 되어, “나의 필요는 몰라도 남의 필요는 참 잘 아는” 봉사자로 성장한다.

나는 전혀 그런 아버지에게 그런 죄책감이 전혀 없고 남의 필요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2번 유형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사랑해서 도와주기 보다는 자신의 자존심과 우월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봉사하는 측면이 많은 것을 보면 나는 건강하지 못한 2번에 해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필요나 욕구를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사는 것도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

반면에 2번의 전형적인 특징인 “남의 필요를 재빨리 알아본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거나 무언가 잘 주고 그들을 돕는 것”은 나에게 무척 부족하다. 이에 대해 2번 유형이 반대급부가 없다고 생각할 때 조작하려는 성향이 나타날 수 있고 관계나 사람을 독점하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하는데….

내가 살아온 일생을 되돌아보면, 나에게도 이런 봉사자적 기질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난한 산동네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고, 외국인 노동자 쉼터를 개설하여 돕고, 또한 현재처럼 외국에까지 나가서 그들을 돕고자 하는 모습에서 보면 이런 성향이 오히려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내가 “먹사짓” 이나 “사기”를 쳤다고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면 조작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이타심과 희생 · 봉사 정신, 겸손한 마음과 사랑을 살려서 이 위기를 관리해야 할 것 같다. 나를 비우고 나를 부정해서 롯처럼 순전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남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감동이 되는 삶을 누리고 싶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뜻과 거룩한 의지를 드러내는데 빼어나기를 기도한다. 사도 요한처럼 사랑과 영성이 하늘 높이 치솟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최정의팔(목사, 사회적 기업 트립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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