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제5공화국' 화면 갈무리)

정도형.
키 165 가량, 얼굴 작으며 입이 찢어짐, 군모를 항상 15도 가량 삐뚤어지게 쓰고 다녔으며, 말씨는 경기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목소리는 약간 쉰 듯 했으며 기질이 사나워보였던 사내. 그 사내는 항상 내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무고한 백성들에게 살상적 폭력을 휘두른 군사정권의 범죄를 용서 해주겠다 라고 했지만 그 국가의 범죄 행위를 잊어야 한다는 내 가슴속의 의식과는 별개로 나는 밤마다 고문조교 들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정도형 조교의 그 찢어지는 목소리는 내 의식 속에 극명하게 남아 사건이 역사 속에 파묻히고 있어도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주여, 저들에게 긍휼을...> 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기도 하고 간구 했지만 나의 기도의 바람과는 달리 그들의 환영은 내 꿈속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특히 정도형 고문조교가 비오는 날 내무반 침상 위에 나를 세워 놓고 반나절 동안이나 허벅지에 가하던 그 고문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정도형의 찢어진 입 사이로 <흐흐> 하고 새어 나오던  괴기스러운 웃음과 나의 단말마적인 비명소리는 침상에서 정좌로 앉아있던 50여명의 동료들의 뇌리와 동공 안으로 빠짐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동료들도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고통의 신음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가하는 고문 행위는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또 하나의 고문으로 작용되니깐... 아니, 정도형은 그 것을 즐기고 있었으니깐... 나는 죽음과도 같은 모멸감 속의 고통을 감내 하고 있었다.

이젠 그만 하고 싶었다. 허벅지가 새까맣게 변하여 피방울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모질고 독한게 인간이라던가 .

나는 그래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정도형의 그 모진 손길은 멈춤이 없었다, 그의 손톱으로 찍어 내리는 여백의 속살은 여지없이 새까만 돌멩이 같은 살덩어리로 변해 가고 있었다. 정도형이 그 고문을 멈추는 조건으로 그의 더러운 부위를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했다면,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가 어떤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문을 멈추어 준다는 조건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정도형으로부터 받은 고문의 상처는 노역장을 향하여 행군 하고 갈 때도 고문 같은 고문이 따랐다. 허벅지의 상처는 칙칙한 군용바지에 달라붙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땀망울과 습기로 인하여 그 덧은 쉽사리 아물지를 않았다. 스걱거리는 군용바지와 물기 젖은 딱지가 8킬로 행군에 떨어져 내리면 거기는 토마토 붉은 속살처럼 피부가 헤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정도형은 임근실과 내가 물고문 당하고 난 뒤, 결국 임근실을 저 세상으로 가는데 일조를 한 악질 조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랬다. 나는 정도형의 꽁무니에 이끌려 행정반으로 불러갈 때, 반 초주검이 되어 있던 꿈을 자주 꾸곤 했다. 임근실과 고문조교들이 덫을 놓은 취사장에서 밥알을 주어먹고,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할 때, 나는 그가 저항 하며 한마디 쏟은 말 <전두환 타도, 교도소 에서 10년을 살았으면 살았지 이곳에선 하루도 못 살겠다> 그 한마디의 저항감을 용기 있는 저항이라고 몽매한 글을 수양록에 썼을 때, 정도형은 <일기 내용이 참 좋다>며 마치 굶주린 늑대가 먹잇감을 발견 한 듯 행정반으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린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었다.

정도형은 오기택 대위로부터 고문 허락을 받은 것인지 나는 그에게 끌려 나갔었다. 임근실이 야외 세면장에서 발가벗겨, 물고문을 당하고 있었던 현장으로 끌려갔을 때 그건 꿈이었다. 그날 나는 죽어가는 임근실의 곁에서 엄청난 물고문을 받고 기억을 상실 해 버렸다. 그리고 정신이 되돌아 왔을 때 임근실이 내게 희미하게 웃으며, 살아나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달라는 그 마지막 유언을 듣던 그날 그 현장이 밤마다 꿈으로 되돌아 왔다.

나는 그 악몽의 꿈에서 탈출 하려 수없이 노력을 하여야만 했다. 밤마다 당하는 그 가위눌림, 온몸이 뻣뻣해지며 정신과는 반대로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차라리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러나 임근실과 함께 당하던 그 악몽의 과거는 끊임없이 내 침상으로 찾아와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악몽을 깨고 나면 나는 정도형을 만나고 싶었다. 왜 그가 끝나버린 그 고문의 세월 너머에서도 내게 끊임없이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지...

<그래 만나리라, 찾으리라, 잊으려 해도 찾아오는 너의 환영은 나와의 악연이며 운명이다. 역사의 단죄가 두려워 숨어 있을 너를 만나면 말 하리라. 당신으로부터 탈출 하려는 사람에게 아직도 괴롭힐 힘이 남아 있냐고>

그리고 나는 기도 했다.

<내가 그로부터 탈출  하여도 그가 내게 환영으로 다가와 나를 이토록 괴롭히니 내가 그를 만나겠노라>고 나의 신께 기도를 올렸다. 나는 그때부터 내 머리 속에서 그를 지우지 않고 본격적으로 기도 하기 시작 했다.

<나의 신이신 하나님, 공의와 평화와 박애를 사랑 하시는 하나님, 제가 그를 내 머리 속에서 지우지 않겠나이다. 잊고 지우려 했으나 그를 지우지 말라 하시는 당신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저는 잊고 용서 하는 것만이 나의 길 인줄 알았나이다. 잊지 않겠나이다. 제가 그를 만나겠나이다. 당신께서 나를 역사의 증언자로 쓰실려거든 그의 죄악을 평화의 연단으로 이끄시고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쓰러져간 임근실의 원한이 내 머리 속에 영으로 살아와, 나를 이용 하려 한다면 나는 받겠나이다. 나는 그를 찾겠나이다>

그랬다. 나는 임근실의 원한이 나를 찾아와 하소연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밤마다 꾸는 그 고통의 환영은 오기택을 역사의 청문회에서 심판 하고 용서 했듯이 아직도 숨어 살고 있는 그 잔당들을 찾아 그들을 심판하고 용서 하라는 뜻으로 받아 들여야만 했다.

나는 80년대 청문회장에서 그들의 죄상을 폭로 했기에 그 심판이 끝나버린 것으로 판단했고, 그리고 잊으려 했던 것이다. 내가 설사 그들을 용서 할지라도 그것은 개인의 판단 일 뿐이지 역사의 판단은 아니며 정의의 판단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심판할 권리는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유일한 심판의 권리 이지, 나의 권리는 아닐 것이다.

또 내가 아무리 용서 하고 복수치 않는다 하더라도, 그 피울음의 역사는 잊혀 지지 말아야 하며,  과거의 피를 먹고 자라는 역사발전과 민주주의는 그들의 죄상을 기록 해 놓아야 할 것이었다. 숨어있는 거짓은 없다. 그 거짓은 언제든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공의로운 세상을 향해 정의의 기록은 남겨 놓아져야 하는 것이다. 세월은 흘러도 역사는 남아야 한다는 이유는 다시는 그 같은 범죄가 우리에겐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벌어졌다. 내가 고문조교 정도형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 하면서부터 그 악몽은 사라졌고 나는 밤마다 꾸던 환영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일구일심 마음속으로 기도의 염원만 하던 10년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내 자력이 아닌 어떤 타력에 의해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알고야 말았다. 정말 이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를 자력으로 찾아 헤맨 적이 한 번도 없다 . 만남의 염원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적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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