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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같이 침묵하다 (출 15:12-18)<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28>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6.02.05 14:21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바다의 노래 셋째 연은 홍해바다에서 일어난 놀라운 구원, 광야에서 인도하심, 가나안 땅에 들어감 등 출애굽의 대 주제 3 가지를 언급하였다. (M. Noth 99)

우선 모세는 과거의 구원을 되돌아보며 미래의 구원을 내다보았다. 그는 6절(주의 오른 손)과 7절(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에 이어 12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모습을 비유와 상징(신인동형론적)으로 표현하였다. "주님은 오른손을 뻗으셨나이다. (n¹‰â) 그들을 삼켰나이다 (bb¹lâ±), 땅이.' (직역) 14:21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손을 뻗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이 일을 회상하면서 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민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내가’ 라고 하지 않고 '주님' 을 주어로 표현하였다.

물(4-5절)과 불(7절)에 이어 땅(대지)도 하나님 심판의 도구로 쓰였다. (12절) 물이 아니라 '땅이 삼켰다'는 표현이 평범하지 않다. 이에 땅이란 말(°ereș)을 학자들은 대체로 세 가지 의미로 보았다.

i) 죽음의 세계 (underworld = 지하세계). 이는 아마 히브리말 셰올과 비슷한 뜻일 것이다. (렘 17:13; 시 63:9; 전 3:21; 겔 26:20; 31:14, 18; 32:18, 24; 욘 2:6) 이 낱말을 노트(M. Noth 99)에 이어 해밀턴(Hamilton 225)과 브루크너 (225) 은 아카드말 에르치투(erșitu/ irșitu)와 같은 의미로 그리 보았다. 성경 여러 곳에 그렇게 볼 곳이 있다면서 해밀턴이 예로 든 본문은 세 군데 이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2)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렘 17:13)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욘 2:6)

ii) 바다 속의 진창이나 매장지를 가리키는 말로 이집트 군대의 죽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 안으로 걸을 때에 그곳은 마른 땅이었다. 이제 이집트 군대가 그곳으로 들어서자 마른땅이 진창으로 변하고, 거기 빠져 허우적거릴 때 물이 그들을 덮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인위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iii) 존엄하신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포괄하는 말. 이 말은 하늘과 대칭되는 개념인 땅(지구, 세계)를 가리키곤 하였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요 땅은 그분의 통치가 이루어는 장소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오른손을 드셨다. (12절. 참조: 6절의 주의 오른 손) 이것은 구원 또는 구원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낱말(나티타 ← n¹‰â)은 그 뒤에 나오는 인도하다 (나히타 ← n¹µâ) 및 인도하다 이끌다 (네할타 n¹hal)와 함께 12-13절을 두운법(alliteration)에 따라 하나로 묶어준다.

13절에서 그는 여호와의 끝없는 사랑(헤세드)을 노래하였다. 헤세드와 오즈(±œz = 힘 강함)이 나란히 쓰이는 경우 (parallelism) 가 흔하지 않다. (시 59:16; 62:11-12) 이것이 나란히 쓰인 이유는 아마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능력을 외면하게 만들지 않으며 그분의 강함(힘)은 그분의 사랑을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 사랑이 구속받은 백성을 인도하였으며(n¹µâ) 그 강함이 그들을 목적지로 들어가게 하였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3절의 거룩한 처소 (n¹weh qodšekâ) 16절의 통과하다 17절의 주의 기업의 산, 성소 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만일 이것이 이스라엘민족이 곧 경험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광야행진과 시내산에 도착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만일 이것이 보다 먼 미래의 일을 가리킨다면, 이것들은 요단강 도하 가나안 정복 실로 등에 세워진 성소 다윗-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진 예루살렘 성전의 건립 등이 포괄할 것이다.

그들이 들어간 주의 거룩한 처소(n¹weh qodšekâ)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노트에 따르면 ‘처소라는 말(n®w¢h)은 i) 흔히 말하는 거주지 ii) 여호와의 거처 또는 예루살렘 성전 (삼하 15:25) iii) 이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에서 매우 폭넓은 의미라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16절의 통과하다, 17절의 기업의 산 (har aµ­lat) (주의) 처소 (m¹kûn) 성소(miqdaš) 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피며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것은 i) 시내산. 하나님은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라 부르시며 언약(시내산 계약)을 맺으셨다. ii)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또 선물로 주실 이스라엘 땅 전체. iii) 성소(성전)라는 인상을 풍긴다. 이 셋 가운데 하나일른지 아니면 이 셋을 다 포괄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M. Noth 99; 송병현 251 참조) 

그리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문을 들은 이웃 나라 백성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들은 경악하였다. 그들이 놀라서 떨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여기에 정확히 묘사되었다.

14절: 듣다 (š¹ma±)  떨다 (r¹gaz) 두려움(paµad)에 사로잡히다 (µîl °¹µaz)
15절: 놀라다 (b¹hal) 낙담하다(mûg)
16절: 놀람(°êmâ)과 두려움 (r¹±ad)에 떨어지다 (n¹fal) (돌같이) 침묵하다 d¹mam)

이집트인이 마치 돌처럼 바다에 잠겨 침묵에 들어갔듯이 그들은 돌처럼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그들은 죽지는 않았으나 간장이 녹아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심한 낙담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다.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이 그런 예이다. (삼상 25:37)

모세는 여기서 블레셋 에돔 모압 가나안 주민 등을 언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출현을 반길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i) 여러 나라 ii) 블레셋 iii) 모압 iv) 암몬 v) 가나안. 구체적인 이름으로 블레셋이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14절) 이는 아마 그 나라가 이집트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필시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였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들었으리라. 에돔과 모압이 언급된 것은 광야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M. Noth 99-100)

   
▲ 울며 통곡하는 이집트 여인들

16절 ‘주께서 사신 백성’ (공개: 당신께서 불러내신 백성, 표준: 주께서 속량하신 이 백성; 천새: 당신께서 얻으신 백성)에 쓰인 동사 카나(q¹nâ)의 의미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i) 구약성경에 80번 이상 쓰인 이 말은 상업적 거래관계 아래 노동력이나 금전을 내고 얻어내는 것이다. (Schmidt, THAT2, 650-659) 얻어내다는 그 뜻은 13절의 구원하다(g¹°al 주께서 구원하신 백성)와 좋은 상관관계를 보여주었다. ii) 창 31:18처럼 노동과 수고 고통과 시련을 거치면서 얻어낸 것이다. (Köhler, ZAW52, 160) iii) 본문과 신 32:6 등 아홉 개 구절에서 이것은 창조하다는 말맛을 지녔다. (Humbert, FS Bethlodt 259-266; Fretheim, Exodus 167; Douglas K. Stuart, Exodus360) iv) 낳다 부모가 되다는 뜻으로 쓰인 민 11:12에서 엿보이듯이 (Irwin, JBL80, 135-136, 143; M. Dahood, CBQ30, 513) 이는 위험한 여정에서 택하신 백성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나타내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백성이요 품어주신 사람들이다. (참고 - 출 4:22 나의 아들 나의 장자) 이 낱말이 취득 창조, 소유, 생산(출산) 가운데 어떤 말맛일지를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Hamilton 226)

여호와는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기이한 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13절: 인도하다 (n¹µâ) 구속하다 (g¹°al) 들어가게 하다 (n¹hal)
16절: 통과하게 하다 (±¹bar x2)
17절: (주의 기업의 산에) 심다 (n¹‰â±)

13-17절에서 그는 과거의 구원받은 것만 찬양하는 데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그 구원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내다보았다. 13-16절은 가나안을 향한 행진 및 정착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출애굽시킨 백성을 인도하신 결과가 17절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7절은 이 노래의 결론이다.

성경에 따라 이 부분을 미래형으로 또는 과거형으로 번역하였다. NIV(개역개정)와 NRSV(LÜ, NEB 천주교 새번역)를 비교해 보자. (Hamilton 230-31)

   
 
문법으로는 이 두 가지 번역이 다 맞는다. NIV는 이것을 미래형으로 옮겼다. 이 다섯 절에서 모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곧 장차 일어날 일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NRSV는 마치 이 일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과거형으로 옮겼다. 여기 쓰인 동사들이 다 완료형(q¹tal-form AK)이기 때문이다. 옛날 문법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예언적 완료형'(the prophetic perfect)이라고 불렀다. (Douglas K. Stuart, Exodus 356-357) 오늘날 그들은 카탈-형식을 과거형으로 보지 않는다. 고대 근동의 다른 셈족언어가 그러하듯이. (Hamilton 231) 히브리어는 카탈형식(어미변화형, 완료형)으로도 얼마든지 미래의 일을 표기할 수 있다.

놀랍게도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에서 이집트를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대목은 단 한 곳뿐이며(4절) 원수(6-7, 9절) 바다(5, 8, 10, 12) 그들(5, 10, 12절) 등 전체 대목뿐이다. 그 밖의 대목에서는 오히려 창조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홍해바다 사건과 창조이야기(창세기 1장) 그리고 노아 홍수 이야기 사이에는 비슷한 내용이 여러 가지 들어있다. (Hamilton 217)

i) 물에 대한 하나님의 영(루앗흐)의 작용이 세 가지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창1:2; 8:1; 출 14:21)
ii) 물만 가득한 곳에 마른 땅이 들어났다. (창 1:9; 7:22; 8:7, 13-14; 출 14:21-22)
iii) 마른 땅을 가리키는 낱말에 공통점이 있다.

전체 18절짜리 이 찬양은 하나님에 관해서 (1-5절, 3인칭의 하나님) 하나님을 향하여 (6-17, 2인칭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에 관한 찬양으로 (18절, 3인칭의 하나님) 마무리되었다. 시편 23편의 짜임새도 이와 같다. 그것은 목자에 관한 노래(1-3절) 목자를 향한 노래(4-5절)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는 확신으로 (6절) 마무리되었다. (Hamilton 229-230)

시편 78:52-55와 이 노래의 몇 구절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8절에는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여호와는 이런 분 곧 다스리는 분이다, 영원히 그리고 무궁히.” (직역) 시편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하나님은 왕이시며 세상과 만물을 통치하신다고 노래하였다. (시 29:10b; 47:6-7; 93:1; 95:3; 96:10; 97:1; 98:6; 99:1)

이 노래 전체에서 모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 다스림의 대상은 무엇인가? 우선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인 및 그 주변 민족들이다. 여기서 이것은 온 인류를 대표하는 뜻이다. 둘째로 땅(육지)과 물(바다)이다. 하나님은 땅을 물속에 잠기게도 하시고 질적질적거리게도 하시고 온전히 마르게도 하셨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물의 흐름과 작용을 하나님만은 자유자재로 부리셨다. 셋째로 하늘이다.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구름을 하나님은 자유자재로 활용하셨다.

오늘의 적용

1) 찬양

모세는 이 노래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찬양하였다. 첫째로 홍해바다의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이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하신 거룩한 처소로 데려가실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계 15:11-13)

노래에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 곧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희망과 소망 사랑과 미움 감사와 기림 등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2) 하나님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위치

이 노래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하였다. (16절 참조) 16절 ‘주께서 사신 백성’을 여러 성경은 다양하게 번역하였다.

공개: 당신께서 불러내신 백성,
표준: 주께서 속량하신 이 백성; 천새: 당신께서 얻으신 백성)

어떻게 번역하든 이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 백성의 위치와 신분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알려주고 있다. 13절의 ‘주께서 구속(구원)하신 백성’이란 고백과 함께 우리 마음에 늘 새겨야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 하나님께서 사신 백성이라는 거룩한 신분임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에서야 비로소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3) 처음부터 끝까지

출애굽기는 출애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본문에서는 17절 말씀이 그것이요, 15장 이후 40장에 이르는 말씀이 그런 사실을 뚜렷하게 나타내었다. 이 전체 과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1)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사 49: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8)

4) 여호와가 다스리신다

출 15:18에는 “여호와는 이런 분 곧 다스리는 분이다, 영원히 그리고 무궁히.” 라는 고백이 있다. 성경에 이런 고백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이것은 그 가운데 첫 번째 것이다.

핸델의 오라트리오 '메시야'가 1742년 런던에서 처음 연주될 때 "할렐루야 합창"이 울려 퍼지자 당시 영국의 왕 조지 2세가 감격한 나머지 기립하였다. 이에 그 신하들과 청중이 모두 일어섰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서 오늘날에도 '할렐루야' 합창이 시작되면 일어서서 감상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다스리신다. 그가 길이 다스리신다. 왕의 왕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사이에 계속해서 할렐루야를 반복하였다.

... 이 세상 나라들 영원히
주 그리스도 다스리는 나라가 되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만일 모든 결정과 실행의 주인공이 우리 자신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당당하고 자랑스러울까? 불안하고 초조할까? 두렵고 떨릴까? 자신있고 과감할 때보다는 아마 겁나고 주춤거릴 때가 더 많은 것이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신다. 이것이야말로 복음 중에 복음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몸소 다스리시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행하며 그분 안에서 결정과 결단을 내리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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