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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광부 괴롭히는 박정희 귀신<파독광부 교회를 졸업한 이야기 17>
최정규 | 승인 2016.02.22 12:51

박정희 귀신이 독일 사는 우리 아직도 괴롭혀
광부기념관에 동상 건립 절대 안돼

매년 8월이면 재독동포들의 총집결하는 8.15 광복절 행사가 열리는데 언제인가부터 풍물패두레는 행사장 입장식에서 길놀이를 하게 되었다. 올해도 여전히 풍물패가 길놀이를 했다. 나는 또 북을 잡았다.

 

   
 

박정희 죽음과 동상 이야기

오늘은 박정희 죽음과 지금 독일에 박정희 동상 세우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박정희를 독재자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간첩으로 신고하게 만든 토큰 사건과 또 나의 동서까지 나를 신고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나를 무척 긴장 시켰으며, 독재가 하는 일이 뭔지를 확실하게 알게 했다. 또한 각종 집회와 모임에 참석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던 나는 군사독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망가지게 하는지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다.

1970, 80년대 재독 노드라인베스트팔렌 한인교회연합회 산하 7개 교회 장성환 목사님과 교인들은 박정희로부터 온갖 탄압과 반정부, 불순부자, 빨갱이로 찍혀서 살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고향도 수십년 방문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그 박정희를 부활시키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를 분노케 만들고 있다.

   
 
독일에서 파독광부의 친목단체인 그룩아우프회(Glueckauf) 회장과 일부사람들이 1000m 지하에서 피 땀 흘리며 일했던 파독광부의 역사와 죽어간 동료들을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파독광부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고 만들겠다고 야단이다. 나도 잘 아는 고창원 회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비문 및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 해외총괄 위원장으로 나섰다.

재독동포사회에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와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가 동상 세우겠다고 깃발을 들자 통진당유럽당협이 박정희 동상건립추진을 비판하는 글을 동포신문에 기고하자 동상추진위가 동포들의 의견을 모아보자고 공개토론회를 제안하여 왔다. 사단법인 한국민중문화모임을 중심으로 동상건립반대모임을 만들어 공개토론회에 참석했다.

공개토론장에 동상세우기를 찬성하는 사람들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참석하자 주최 측은 긴장하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아마도 인원동원을 하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지금은 백발노장들이지만 장성환 목사님과 함께 1970년부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통일을 생각하고 실천한 분들이었다. 한마디로 왕년에 한 가닥했던 사람들이 그들 눈에는 우르르 몰려오는 것 같았을 것이다.

박정희 동상 세우기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들을 파독광부로 보내줘서 잘 살게 해주었고,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눈물을 흘리며 파독광부, 간호사들을 위로하고, 오늘의 한국이 있게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기에 기념하고자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우리들의 생각은 달랐다. 박정희가 광부를 독일로 보낸 게 아니다. 박정희 쿠데타로 오히려 파독광부 협상이 늦어졌다.1961년 초, 세계광산협회총회는 장면정부와 이미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민주정부인 장면정부가 파독광부 협약을 진행했으면 파독이 더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고, 쿠테타로 떨어진 신임을 얻기 위한 박정희보다 광부들의 권익을 훨씬 더 많이 챙기는 협약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동상은 정신적, 교육적 상징이어야 하는데 박정희 행적은 정신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자랑할 것도 추모할 것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쪽에 더 가깝다. 어떻게 한일합병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시대에 일본천왕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총을 든 독립군 소탕에 앞장섰던 인물을 우리의 정신적, 교육적 추모 대상으로 삼을 수 있나? 또 청년학생들의 피로 이승만 독재를 물리치고 들어선 민주정부를 향해 총칼을 겨누며 쿠데타를 자행한 주역인 박정희를 어떻게 우리가 추모할 수 있는가? 박정희는 매국노이고, 변절자이자 거짓말쟁이다.

그는 또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데도 행사를 그치지 않고 계속 진행한 무서운 사람이지 않는가? 그의 죽음도 보면, 딸 같은 여자를 끼고 양주마시다가 총 맞아 죽은 사람을 어떻게 추모한단 말인가? 왜? 파독광부 모임인 ‘그룩아우프회’의 회장인 고창원이란 사람이 느닷없이 3억5000만원(23만유로)을 들여서 파독광부 기념관에 동상과 비문을 세우겠다고 나서서 그 박정희 망령으로 지금 독일 동포사회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선일보>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생긴다. 신용석이라는 예전 조선일보 기자였던 사람이 지난 2010년 박정희 비문을 1964년 박정희가 방문했던 함보론 광산 터에 세우겠다며 독일로 달려와 두이스브륵시와 협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잘 안 됐던 거 같다. 독재자를 추모하는 사업에 사민당 소속 시장이 동의 할 리가 없었다. 세 번 정도 만나도 결과가 없자 그들은 ‘파독광부 기념관’을 방문하고 "여기다." 생각했던 거 같다.

파독광부 기념관은 사적 소유이기에 기념관 안에 세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있게도 동상건립 추진위는 국내와 해외 담당으로 출발한 것이다. 신문광고를 자세히 보면 국내 총괄 담당자는 신현태로 한나라당의 전직 국회의원과 경기도 도의원을 지낸 자다. 신용석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했다. 신용석은 현재 인천 아시안게임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명함이 아시아 올림픽평의회 부회장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전 독일대사를 했다는 권영민이 고문으로 되어 있었다. 해외총괄은 고창원이 맡았다.

더 궁금해졌다. 통상적인 예로 보면 독일에서는 무슨 추진위 같은 게 뜨면 그 다음 지역에서 지원후원 조직들이 만들어지는데, 이번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동상추진위가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만들어져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더 재미있는 것은 파독광부 기념관 건물을 구입하면서 진 빚이 18만 유로라고 한다. 현재 사정으로 보면 이 빚을 갚기도 벅찬데 23만유로 들여서 동상세우겠다고 설치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반 노동자 적이었던 개발 독재자 박정희가 2011년 독일에서까지 망령으로 되살아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상은커녕 자리도 못 잡고 있다. 박정희 딸이 대통령이 되서 아마 제대로 한판 해야 할랑가 보다 했는데 조용하다. 아니 추진하는 사람들도 두패로 갈라져 서로 세운다고 물밑 경쟁을 한다는 소리도 있으나 흐지부지 된 것 같다. 한국 새누리당이 요새 총선을 두고 진박, 친박 거시기 헌다는데 박 정희 전대통령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대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동상을 집안 뒤 정원에 세우냐! 각하를 뭐로 보는거야!”
(파독광부기념관 뒤 정원에 동상을 세우려는 기획을 보고 했다고 한다.)

   
 
딸아이가 말을 시작했다

한국에 다녀온 후 오펠자동자 공장에 취직이 돼서 신나고, 한마음조합 결성으로 고민 고민을 하면서도 신날 때 집주인이 처음과 다른 조건을 내놓았다. 옆에 있는 건물을 함께 사라는 거였다. 우린 그 돈을 마련할 수도 없었고 그 건물을 사서 활용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거부했다. 그러자 주인은 당분간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이사를 하라고 해서 우리는 집을 옮겼다. Am sateellgutstr (암자텔굿 쓰트라세)에 있는 광산주택이었는데 천장 무척 높았고, 집세는 엄청 쌌는데 대신 석탄 난로 피워야 했다.

헌데 어느 날 아침 근무 후 돌아와 딸과 함께 놀다가 낮잠을 자던 나를 깨웠다.
"아빠! 아빠! 필 아우게! 필 아우게!(viel Auge!- 아빠 눈이 많이 내려!)" 하고 소리치면서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을 가르킨다.

난 한참 웃었다. 아우게는 우리 얼굴에 있는 그 '눈'인데, 딸은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초겨울 눈(Schnee)을 보고 "필 아우게"를 외친 거였다. 딸은 말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이라 미처 독일말로 눈을 표현할 줄 모르니 한국말로 우리가 눈이 내리면 눈이라고 한 걸 듣고서 자기 식으로 표현하면서 말을 배워갔다.

그 후 나는 우리말과 글에 뜻이 다른 같은 표현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물건을 바라보는 눈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리고 노를 젓는 배와 먹는 과일인 배, 그리고 우리 몸통 중에 한 부분을 이르는 배처럼 말이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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