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영화 <동주>

1. 사랑 네 가지

성 어거스틴은 네 가지 사랑을 이야기 하며 이 네 가지 사랑이 모두 합해져야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된다고 한다. 첫째는 ‘위에 있는 신’이고, 둘째는 ‘우리 자신’이며, 셋째는 ‘이웃’이며, 넷째는 ‘아래에 있는 물질’이다.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이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공허함’을 해소하고,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의 맹목성’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상(無常)이라는 슬픈 운명을 지고, 영혼의 분열에 마음 앓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한 헤르만 헤세는『지와 사랑』에서 신에게 종사하는 사색가요, 분석가요, 현명하고 통찰력이 예민한 나르치스가 미에 열중하며 몽상가요, 예술가요, 맑고 수줍은 동심의 감각과 영감을 지닌 천부적 예술가이자 자연인인 골드문트에게 “네가 너 자신을 발견하면 그 순간 너는 나보다 우월하게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열등감을 표출한다. 그러나 작품의 결말을 통해 헤세는 나르치스의 ‘지와 정신(신 사랑과 이웃 사랑의 차원?)’과 골드문트의 ‘사랑과 자연(예술을 포함하여,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의 조화, 인간 영혼 속에 깃든 정신적인 측면과 육체적인 측면을 조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들의 상황이 식민지 조선이었다면?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2016)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실존과 예술의 탐색’을 몽규와 동주의 ‘고통스런 시대적 상황에 처한 실존과 예술의 순수성’으로 보여주며 그 답을 내리고 있다.

2. 열등감의 양면: 순수성과 폭력성


▲ 영화 <동주> 포스터

아름다운 서정시로만 알려진 윤동주의 시들이, 식민지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탄생되었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 <동주>는 윤동주(강하늘 분)의 시도 새롭게 보게 하지만, 그의 곁에 송몽규(박정민 분)라는 혁명가가 있었음도 보여준다. 외사촌 형이 되는 송몽규의 천재적 자질에 열등감을 느끼지만(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느꼈던 것처럼), 자기만의 순수시를 완성하려는 동주는 이념으로 모든 것을 배제하는 혁명(해방)에 문학의 순수성을 외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학이 있을까? 동시에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 덩어리이지만, 아시아를 구하겠다는 신념과 문명국이라는 명분으로 표출되는 일본의 폭력성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탄압한다. 비열한 욕망을 숨길 수 없어 서구식 사법제도로 동주와 몽규를 살해하는 것이다. 항상 열등감은 이렇게 긍정적으로는 예술의 순수성(동주)으로, 부정적으로는 폭력성(일본)으로 드러난다.

3.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르치스 방식으로 살고 있는 나 역시, 골드문트(혹은 몽규)가 수도원 담을 넘듯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담을 넘어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욕망(몽규에게는 조선의 독립)’을 간직하고 있으나, 아직 ‘이렇게 서 있는 것(동주의 예술적 감각)’은 어쩌면 골드문트나 나르치스가 서로 살아간 방향은 달랐지만, 결국 두 사람이 간 곳은 같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의 순수성은 혁명의 그 어떤 구호 보다 강하다. (상황이 열악할 수록!) 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도 그렇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지금 봄이 오고 있다. 가을 같은, 그리고 아름답게 가꾸지 못한 후회가 밀려든다. 영화를 본 백기완 선생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불만스러워했던 건 윤동주의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기독교와 지식인, 중산층의 모습은 있어도 민중의 삶이 없다는 거였어. 이번 영화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영화 마지막 대목에서 윤동주는 그런 자신의 삶을 뒤집거든. 시만 써서 부끄러웠고 좋은 시를 못 써서 부끄러웠다고 일본 형사한테 대들 때 윤동주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거든. 그 대목이 감동적이었어.” 나도 그렇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가을 같은 봄이지, 가을 혹은 겨울이 아니지 않는가!

필자소개


▲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목사인 최병학 목사는 생명이 생명답게 존중받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실천하고 있으며 도덕 이론가 및 윤리사상가, 문화 신학자, 영화 평론가로 경성대, 한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에서 해체주의 신학자 마크 테일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쿠바, 인도와 동학 관련 영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부산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영상시대의 종교와 윤리- 타락을 통한 구원받기』 (인간사랑,2002), 2004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인 『현대 사상과 영화이야기-지식인의 자기발견』 (브레인코리아,2003),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윤리-답없는 물음, 찾는 윤리』(부산대출판부,2005),『영화관에 간 현대신학자』(이경,2006),『대중문화와 윤리의 향연』(부산대출판부,2011),『성서로 읽는 동시대 인물』(살림,2012),『해체주의, 사이버스페이스, 신체성과 무의식, 후기생물사회의 신학윤리탐구: 자아의 소멸과 흔적의 윤리』(한국학술정보,2012)등의 저서가 있다.

최병학 목사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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