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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기고 간 선물<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6.02.24 11:26

   
▲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집 입구에 이발소가 들어왔다. 나는 너무도 조용해 오픈 하루 전에야 알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다닌 탓도 있었지만 딜리사람들은 소박하다. 보자기를 펼친 크기의 현수막 하나로 신장개업을 알리고 있었다. 내 머리도 편안히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단발머리를 하는 학교를 다닌 이후로 거의 머리에 변화를 줘 본 적이 없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달리 머리를 손질하는 재주가 없었기에 단발머리가 제일 편했다.

그래도 몇 번 곱슬머리 파마를 해본 적이 있었다.
언니는 나에게 파마를 권했다. 수 십 년을 너의 그 단발머리를 보는 사람들은 너를 볼 때 마다 얼마나 지겹겠냐며, 보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머리에 변화 좀 주라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그러나 파마를 하고 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머리에 가채를 쓴 것처럼 파마머리를 이고 있는 느낌이 영 불편했다. 또한 손재주가 없으니 파마머리를 한 이후의 내 머리는 제멋 데로가 되어 더 봐 줄 수가 없었다.

내 머리 모양새를 보다 못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어이 친구 머리 좀 어떻게 하지~”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파마머리도 단념하고 은발의 단발머리 할머니로 늙어 가겠다고 생각하며 머리문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은발의 단발머리를 하고 다닐 거기에 염색을 할 필요도 없으니 그 또한 편한 일이었다.

동티모르에 들어 올 때 나는 머리를 아주 짧은 단발머리로 자르고 왔다.
그러나 그 머리가 자라니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딜리의 미용실에 맘먹고 갔던 적이 있다. 내가 들어 간 미용실은 커트 비용도 한국보다 배는 비싸고 무엇보다 내 의견은 뒤로한 채 미용사 취향에 맞게 머리를 잘라 주어 그 후로 다른 미용실도 선뜻 들어가지지 않았다.

한번은 지난번에 나에게 인조 원피스를 주셨던 선생님께서 신경이 쓰였는지 이번엔 내 머리를 잘라 주시겠단다. 그래서 선생님께 맡긴 내 머리카락은 선생님의 야무진 손끝에 의해 시원하게 잘려 나갔다. 머리 커트를 마친 선생님께서 앞으로 비죽비죽 자라나오는 머리카락은 거울 보면서 살살 다듬어 보라고 하셨지만 손재주 없는 나는 아예 머리에 손을 댈 생각도 안했다. 내 무관심 속에 시간이 흐르며 머리는 장마에 잡초 자라듯 각기 원하는 방향으로 잘 자랐다.

   
▲ 마나뚜뚜에서
지난 달 내가 살고 있는 딜리로 남편이 왔다. 그가 왔을 때 나는 공항에서 목에 타이스를 걸어주며 환영했다. 태국에 있을 때나 중국에 있을 때 나는 그에게 한 번도 내가 있는 곳에 와보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내심 섭섭하기도 했겠지만, 빈말을 못하는 사람임을 아는 그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굳이 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동티모르는 한번 오고 싶었나 보다.

딜리에 오던 날 그는 내 머리를 잘라 주었다. 결혼 생활 삼십년이 넘도록 파마를 하고 있던, 단발을 하던 머리에 대하여 한마디 도 말이 없던 그가 공항에서 타이스를 들고 서있는 나를 본 것이 아니고 내 머리를 보았나보다.

의자에 나를 앉혀놓고 보자기를 내 목에 두르며 그가 말했다.
“나도 군대에서 사병들 머리 많이 깎아주었어”
묻지 않은 말을 그는 계속했다.
“당신들 식사 당번하고 있을 때 교회 학생들 머리도 많이 깎아 주었잖아.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내가 깎아 주었고.”

내가 생각하기로 그가 가위를 놓은 것은 십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그런데도 그는 차분하게 가위를 들고 내 머리카락을 잘 잘라 주었다.

그는 딜리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한낮의 더위 때문에 어디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었다. 주중에는 내가 학교에 가니 집에서 혼자 있어야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 방송을 켜 놓고 있기도 하고 간단한 테툼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수돗물을 끓여 정수기에 걸러 놓기도 하고 어느 땐 여주를 사다가 햇볕에 말리기도 하면서 묵묵하게 지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우리는 동티모르 국립대학교 교정도 거닐고 동티모르 역사관도 관람하며 그동안 딜리에서 가보지 못한 곳을 다녔다. 그는 딜리에 있는 동안“내가 본 동티모르”라는 제목의 글을 일기를 쓰듯 매일 쓰고 있었다. 이제 그 글도 쓰기를 마쳤다며 그는 노트북을 덮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의자에 앉지.”
“머리 깎아 주고 갈께.”
“빨리 자라지 않도록 아주 짧게 깎아 줄게.”
그는 그렇게 내 머리를 아주 짧게 또 한번 잘라주고 오늘 한국으로 돌아갔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흰 머리가 비집고 나와 희끗희끗했다. 그를 배웅하고 공항에서 돌아 와보니 그가 한 달 동안 신고 다니 던 슬리퍼가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떠나기 전에 빠진 것이 없나 몇 번을 살피 던 그는 슬리퍼는 챙기지 않았나 보다.

그가 두고 간 것은 슬리퍼 뿐 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보였다.
봉지 속에는 뜯지 않은 염색약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그가 나에게 준 선물이 많이 있었지만 오늘 가장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선물을 주고 갔다. 화장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모습은 낯설었지만 내 짧은 머리는 그가 나에게 남겨 놓고 간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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