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에 대한 언어의 독특한 역할은, 개념 표현을 위한 재료로서의 음적 수단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소리 사이의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사상과 소리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단위의 상호 구분으로 귀결된다. 원래 혼동 상태에 있는 사상은 분해됨에 따라 명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상의 물질화도 없고 소리의 정신화도 없다. ‘사상-소리’가 구분을 내포하며, 언어가 형태 없는 두 덩어리 사이에서 구성되면서 그 단위를 만들어낸다는 신비로운 사실만이 있다. 공기와 하나의 수면이 접촉해 있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대기의 압력이 변하면 물의 표면은 분해되어 일련의 구분, 즉 물결을 이룬다. 바로 이 파동과 비교하면, 사상과 음색 재료의 결합, 말하자면 접합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얼마 전 산림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기의 관심사를 좇아 신기한 눈으로 이것저것 보고 있던 한 아이를 그의 아버지가 끌어당기며 “너, 나이테가 뭔지 알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버지는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그 아이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저게 뭔지 알아?”라고 말했다. 가족이건 일행이건 어딘가를 가다 보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말로 건네고 싶어 타인의 사색을 침범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을 너도 똑같이 가졌으면 하면 동일성의 명령조가 담겨 있다. 사상(事象)에 대한 차이를 함께 공유하면 동질감이 느껴지고 이는 나의 안온으로 이어져 생존 도모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이 관계를 깨뜨렸다. 바람 부는 호수를 볼 때, 누구는 바람을 느끼고, 누구는 물결을 보고, 누구는 과거를 추억한다. 그래서 나오는 언어나 쓰는 글이 다르다. 이를 개인에서 세계로 확대하면 상황은 더 달라진다. 동행의 즐거움을 위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좋지만, 일방적인 시선 강탈은 서로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의 관찰이 나의 글로 이어지니까!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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