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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 나는 참외가 먹고 싶다<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6.03.03 14:24
헤라농장. ⓒ임정훈
참외 밭. ⓒ임정훈

 딜리에는 바나나처럼 사철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는가 하면, 꿀루 (Jack fruit)나 수카에르 (Tamarind)처럼 잠깐 나왔다 들어가서 눈에 띌 때 사 먹지 못하면 일 년 동안 먹을 수 없는 과일도 있다.

그래도 아보카도, 수박, 파파야, 아야따, 망고와 같은 과일은 자주 눈에 보이는 과일이고, 사과나 배처럼 수입과일도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살 수 있다.

그렇지만 딜리의 대형 마트에서도 볼 수 없는 과일도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참외다.

나는 참외를 참 좋아한다.
내가 참외를 좋아하는 것을 안 누구는 나를 ‘임참외’라 부르기도 했다.
참외는 다른 과일처럼 강하지 않으나 평범하면서도 은근한 맛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참외만이 풍기는 향내 때문에 나는 참외를 더 좋아한다.

나는 노란 참외의 농익은 향내도 좋고
진초록의 풋 참외에서 나오는 신선하고, 풋풋한 그런 향내도 좋다.
참외밭에서 막 딴 참외를 두 손에 들고 맡아 보는 향내를 그 누가 알까

주께서 만드신 세상의 색깔은 어떤 색깔도 유치한 색이 없는 것처럼
주께서 만드신 향기는 세상에서 만들 수 없는 향기로움이 신비롭게 들어 있다.

엊그제 나는 뜻밖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딜리 가까이에 한국인이 가꾸는 농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참외가 재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참외가 영글어서 밭에서 참외를 직접 딸 수 있다고 하니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좋아서 토요일에 있던 선약도 취소하고 참외밭으로 따라 나섰다.

농장은 딜리에서 조금 벗어난 헤라라는 곳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교회가 하나 있었고, 농장은 교회 옆에 있었다. 농장에는 고추, 가지, 호박, 오이가 한국에서처럼 자라고 있었고, 그리고 참외가 때를 맞춰 풍성하게 열매를 맺으며 잘 자라고 있었다.

참외 밭을 돌아다니면서 내 기억은 어느새 유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성한 잎 속에 살포시 숨어 있기도 하고, 우리 육남매처럼 한 그루에 매달려 덩글 덩글 자라고 있던 그런 참외 밭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냇가 가까이에 있던 우리 밭에 참외를 심으셨다.
한 여름날 친구들과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다 지치면, 우리는 살금살금 참외밭으로 가서 잘 생긴 참외는 차마 따지 못하고 조금은 못난이 참외로 골라 따 먹었다.
친구들 집처럼 다른 농작물을 마다하고 왜 할아버지는 우리 밭에 참외를 심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밭 참외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이었다.

참외. ⓒ임정훈

달빛 밝은 날
우리 가족은 평상에 둘러 앉아 모깃불 피워 놓고 참외를 깎아 먹었다. 그런 밤에는 참외를 먹으며 정담 만 나누는 게 아니어서 우리는 “오빠생각”, “ 낮에 나온 반달”같은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언니들과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며 손뼉 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느 땐 엄마가 들려주는 “부엌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상에서 잠이 들기도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 갈 즈음 우리는 유년의 추억을 각자의 기억 속에 담고 고향을 떠나 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도시로 왔다. 그리고 몇 년 후 할아버지도 참외 밭을 팔고 우리들 곁으로 오셨다.


풋내 나는 참외가 먹고 싶다.
                           
임옥훈

나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백마강가 모래밭에
참외를 심고
원두막을 지으셨다.

아침마다
잘 익은 것들은
할아버지의 지게를 타고
읍내 장으로 나가고

학교에서 뛰어 온 나에겐
봉숭아꽃 물든 손톱만큼
땅자리가 먹은
푸른 듯 노리끼한
설익은 참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따서
옷자락에 모래만 쓱쓱 문지르고
한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넘치던 풋내
이 세상 어디에
그런 상큼한 맛이 있을까.

또다시
풋내 나는 참외 먹고
풋내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글을 쓴 임옥훈은 나의 큰언니다.

큰언니는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세우고 싶으셨던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겠다며 한국신학대학(한신대)을 다녔다.

그 후로 지금까지 들쳐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참외처럼 소리 없이, 주님의 향기를  참외의 향내처럼 풋풋하게 날리며 그렇게 사모의 길을 가고 있다.

가족사진. ⓒ임정훈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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