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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의 장학금<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6.03.17 11:37
ⓒ이옥희 선교사

모든 후원자들은 자신들의 후원금이 선교지에서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질 것을 믿고 보내는 선교사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후원에 참여한다. 모든 선교사들은 후원금을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최선을 다하며 기도하며 기준을 가지고 후원금으로 나누며 섬긴다. 18년 동안 선교사로 일하는 중에 항상 작은 돈으로 좋은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며 오병이어 소망으로 후원금을 적재적소에 쓰고자 노력하였다. 

교회 건축을 후원할 때에는 ‘교우들이 건축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헌금해서 대지를 구입했거나 건물의 기초를 놓았거나 건축에 대한 헌금을 계속하고 있는가?’, ‘담임 목회자가 교회 건축에 대한 소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지도력이 있는가?’, ‘만약 건축 도중에 목회자가 다른 교회로 떠났을 경우 중단함이 없이 건축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가 있는가?’를 살폈다. 

자매결연으로 후원할 아이들은 내가 순회하고 다니는 선교 영역 안에 거주하는 달릿. 아디바시 가정의 아이들과 고아원에 있는 고아들로서 내가 만나서 알고 있는 아이들로 제한을 하였다. 달릿 가정의 아이들 중에서는 장애아동들, 편부모 아동들, 기형 아동들, 빈민 아동으로서 교회 예배와 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아동들, 꿈이 있는 아동들, 목회자가 되려고 하는 아동들 중에서 선발하였다. 

복돼지 나눔 후원은 동북인도에 국한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본토 인도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기피하고 있어서다. 동북인도에서도 마니푸르주에 교단 본부가 있는 독립교단 여신도회에 후원받을 사람을 선택하도록 위임하여 “여성 가장의 가정”, “조손 가정”, “자녀가 많은 가난한 가정”으로 선발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 지역을 방문할 때 마다 돼지를 받은 가정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기도하였다. 사정상 방문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받으신 분의 성함과 사진을 요청해서 확인하며 그 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충만하길 기도하며 축복한다.

장학금 후원은 쉽지 않다.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도 일률적이지 않다. 더구나 장학금은 1회 후원으로 끝나고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머뭇거리게 된다. 학교의 추천이나 목회자의 추천, 노회나 교단의 추천으로 하게 되면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과 일면식도 없이 장학금을 보내고 그대로 끝나기가 일수이고 아는 사람 중에서 찾으면 지지부진하기도 하거니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사람 차별을 한다는 말을 하며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사람들이 원한다고 다 지원하지도 못하거니와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일일이 만나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신학생은 노회와 신학교에 학생을 의뢰하고 개인들은 담임목사의 추천을 받으며 학생들의 사진과 이력서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5년 내지 10년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박사 과정이나 의대나 특별학과 등등의 지망생들은 내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고 자주 연락을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이옥희 선교사

사람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사람이라고 다 희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희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절망과 파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자신, 자기 가정, 자기 집단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들이 인류에게 저주와 대재앙이 되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손발로서 세상에서 희망으로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상을 위해 희망이 될 사람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나는 장학금이 희망의 사람을 만드는 좋은 길이라고 믿는다. 참으로 아무 조건 없이 나누어 주는 장학금은 세상의 희망이 되어줄 사람을 키워내는 하나님의 일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희망으로 존재할 사람들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며 1994년에 기장여신도회와 함께 장학금 지원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 까지 기본기금 없이, 장학재단 없이 오로지 믿음으로 한 해 한 해 장학금을 공급하였다. 

장학금 나눔을 시작한지 만 20년이 되는 2015년은 장학금 후원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며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절정을 체험한 위대한 해가 되었다. 하나님은 어버이의 마음으로 장학금 지원에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2016년 정초부터 장학금 후원의 기쁨의 정수를 맛보게 하셨다. 

할렐루야! 
정초에 인도의 수닐 목사로 부터 연합신학대학교(UTC)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 왔다. 2005년 석사과정에 입학한 그를 위해 장학금 후원을 시작한지 만 11년 만에 듣는 소식이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마치 내가 받은 것처럼 뿌듯했고 자랑스러웠고 신명이 났다. 처음 그의 장학금 지원을 결정한 후 UTC의 학비가 비싸서 (그 학교의 학생 1명의 1년 학비로 다른 신학교 학생 10여 명 정도의 1년 분 학비를 내 줄 수가 있었다.) 한 사람을 위해서 많은 학비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버거워하기도 하였다.

2005년 안식년을 마치고 안드라푸라데쉬주 라열라씨마지역으로 복귀했을 때 수닐 목사가 나를 찾아와서 자기의 포부를 밝혔다. 달릿 신학을 전공해서 달릿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자기 전 생애를 바치겠으니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해 주라는 것이었다. 자나 깨나 달릿 문제에 관심하고 있던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여서 아무 생각 없이 장학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달릿 출신의 달릿 신학자가 달릿을 위해서 책을 쓰고 강연하면서 달릿 해방과 구원의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내며 신학교에서 달릿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목회자를 계속 키워내서 성숙한 달릿교회가 되어 인도사회를 변화시키는 그런 꿈을 꾸면서 지원을 약속했지만 11년에 걸쳐서 지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마다 등록금 고지서를 받으면서 고민도 적잖이 하였지만 그를 달릿 지도자로 쓰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한국 경제 불황 속에서도 필요한 만큼 공급하게 해주셨다. 그는 이제 “여호와 이레 장학금” 으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안드라푸라데쉬주 신학대학교” 조직신학과 교수가 되었다. 나는 그를 통해서 일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1월 내내 신명이 나서 또 다른 UTC 박사 학위 지망생을 찾았다.

2015년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해다. 선교사로서 인도에 입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선교사가 동시에 인도를 떠날 것을 가정하면서 인도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자문에 대한 자답은 인도교회와 달릿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인재를 양육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재를 키우는 방법 중의 하나인 장학금 지원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될 수 없는 사역으로 다시 자리매김이 되었다. 그러나 인도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후원금 모금을 어떻게 하고 또 학생 선발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여느 해처럼 3월에 실맛신학교에 15명분의 장학금을 보냈다. 그리고 2014년에 옥포교회 류 목사님께 받아서 보관하고 있던 냔댤노회 소속 신학생 7명의 장학금을 송금하고 올 해는 장학금 후원을 충분히 다하였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감사 기도가 끝나자마자  첸나이 희망발전소에서 직원의 자녀들 2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특별히 모금하지 않고 사역비로 장학금을 후원하였다. 

그 다음부터 예년에 없던 후원 요청이 물밀 듯이 들어 왔다. 타밀나두주 부흥교단에 소속된 시골교회 여학생 3명은 부흥교단 역사상 대학교에 합격한 일이 처음이라며 절박하게 장학금을 요청하였다. 희망공동체 공부방 학생들 2명, 박사과정 학생 2명, 부흥교단 소속 목사의 아들로서 신학대학교 합격생이 나왔다. 모두들 사연이 절박하고 구구절절해서 누구를 거절하고 누구를 받을 수 없어서 내 생활비와 사역비에서 장학금을 먼저 송금하였다.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과 교회와 교우들에게 사연을 적어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짧은 기간에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장학금 후원을 요청받은 분들이 장학금을 기꺼이 내주어서 부족한 장학금이 동시에 다 채워진 것이다. 

ⓒ이옥희 선교사

기적처럼 장학금 후원을 받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때, 에이즈에 감염되어 고아원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사랑하는 고아 학생 6명이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 달릿 목회자로서 남다른 소명의식이 있는 순더 라주 목사의 아들 암베드카가 연합신학대학교(UTC)에 합격했다는 소식, 달릿보다 한 계급 더 낮은 아디바시 출신의 목회자 죠오지 목사의 아들 바자야가 공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날아 왔다. 나는 그 소식들로 너무 기쁜 나머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폭포수처럼 퍼부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내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다 잊어버리고 장학금의 후원의 방법들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겁 없이 장학금으로 사용할 돈이 단 돈 일원도 없는 상황에서 앞서 했던 대로 내 생활비와 사역비로 우선 송금을 하였다. 기도하면서 지난번과 똑 같은 방법으로 장학생들의 신상을 밝히며 모금을 호소하였다. 9월은 장학금을 모금하기에 늦은 때여서 인지 반응이 두 곳에서 만 왔다. 암베드카 등록금의 일부인 100만원을 김창수 목사님께서 해주셨고 두 명의 에이즈 고아들의 장학금을 이원택 님이 해주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으므로 두 분께 감사를 드리고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아무 미련 없이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았다. 

10월 초순경에 목포남부교회 이동해 장로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교회가 70주년을 맞이해서 7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는데 목사님도 필요하시면 신청하세요. 원래는 한국 학생만 해당되는데 갑자기 목사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어요. 필요하시면 필요하신 대로 자세한 내용을 적어서 교회 장학부와 목사님께 보내세요. 제 생각에는 지원이 가능할 것 같아요.” 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을 느꼈다. 에이즈 고아들의 대학진학 사실과 암베드카와 라자마니의 사연을 적어 보내며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을 느꼈다. 과연 하나님께서 11월 2일에 남부교회로부터 부족한 장학금을 다 지원 받게 하셨다. 나는 “여호와 이레의 장학금”이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부교회에 장학금 요청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내고 난 후, 인도 뉴델리에 사시는 이수미 집사님으로부터 “매씨 목사님이 따님 등록금 때문에 굉장히 힘드신가 봐요.” 라는 카톡이 들어왔다. 매씨목사님의 딸을 위해서 남부교회에 장학금 요청을 추가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쓰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매씨목사와 사라는 나에게 남다른 사람이어서 장학금에 대한 부담이 컸다.

매씨목사는 18년 동안 나와 동행한 인도의 목회자로서 많은 고난과 고통에 단련된 사람이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를 10대 초반에 잃어 조부 밑에서 성장하였으며 30대 중반에 아내를 잃는 비운을 겪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지진아이고 큰 딸은 아버지가 섬기는 고아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그는 막내딸 사라와 둘이서 함께 고아원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인간사 고통과 기독교인으로서 당하는 고난, 고아원 운영으로 인한 긴장과 불안을 만날 때 마다 호소하였고 심지어는 한국에 있는 나에게 SNS와 이메일로 호소를 하곤 하였다. 그런 그가 사라의 등록금 이야기를 일찍이 하지 않은 것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3월에 일찍 말했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더라도 사라 장학금을 우선 배정하였을 것이고 모금도 비교적 수월하게 했을 것이건만......나흘 후에 이 집사님이 카톡으로 300만원을 내지 않으면 사라가 곧 퇴학당한다는 소식과 2016년 등록금이 600만원에 이른다는 소식을 다시 전해왔다. 우선 퇴학을 면케 하기 위해서 서둘러서 300만원을 먼저 모금하기로 결심하고 짧은 문장으로 장학금 호소문을 적어 여섯 분에게 카톡으로 발송하였다. 

ⓒ이옥희 선교사

그날 밤 늦게 고향 후배인 박원일 님의 응답을 필두로 하여 열흘 사이에 우성일 님, 부태성 님과 이상태 님이 660만원을 후원해 주었다. 때가 때인지라 최선을 다해서 모금을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내 개인 생활비로 보충해서 후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장학금이 300만원을 훌쩍 넘어선 기적이 눈앞에 나타나자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사라의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확인을 한 뒤에 11월 초에 뉴델리로 장학금을 송금하려고 하니 이 집사님께서 올해 사라의 장학금 300만원은 자기들이 후원하기로 결정했으니 보내지 말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그 순간 감동의 물결이 전신을 휩쓸었다. 

아버지 매씨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주신 주신 하나님, 나환자들과 고아들의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라의 뜨거운 마음, 외로운 사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라와 매씨의 마음에 감동된 우리 형제들의 순수한 인간애, 우리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아름다고 선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샘솟듯 흘러 내렸다. 나는 그 분 앞에서 말을 잊었고 그냥 넙죽 엎드려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였다. 

다섯 사람을 불러서 위대한 “여호와 이레의 장학금”을 공급해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인색하지 않고 작은 자를 위하여 “여호와 이레의 장학금”에 기꺼이 출연해 주신 분들이 계시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에 희망으로 존재하며 희망을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장학금이 빚어 낼 희망의 사람을 그려 본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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