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2:14-23:56 
견딜 수 없는 가벼움 
임영섭 목사 

1.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2.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을 맞는다. 종려주일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하는 절기이다. 종려주일에는 우리 인간의 구원과 생명이 예수의 십자가와 교차되기 때문이다. 복음서를 보면,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를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친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이제 이스라엘을 과거의 다윗 왕조처럼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 곁에 있던 제자들도, 이제 큰 권세를 얻어 자신들도 한 자리씩 얻을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마음은 무척 무거웠다. 예수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이제 어떤 고통과 죽음을 당할지 안다면 나귀 위에 앉아 있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환호하는 군중들과 제자들 속에서, 큰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이 종려주일은, 이처럼 어린 나귀를 타고 행진하는 예수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환호성을 지르는 백성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차 있으면서도, 십자가를 생각하면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런 날이라고 하겠다. 

3.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사야서 5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세우신, 야훼의 종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벨론 포로기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해 야훼의 종을 세우신다. 여기서도 분명 구원과 위로의 내용이 나오지만, 우리는 무조건 기뻐할 수만은 없는 그런 상황을 발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방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야훼의 종은, 고통과 모욕과 어려움을 당한다. 게다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이 해방을 기뻐했던 것도 아니었다. 바벨론 땅에 남아 있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도 과거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포로들이 돌아오면, 그동안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빼앗기거나, 자신에게 손해가 간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4. 견딜 수 없는 가벼움 

요세푸스 역사서를 보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이 책에만 무려 19명이나 나온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유대 민족의 저항의식을 표현하는 매우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사용하던 그런 가벼운 이름이었다. 오히려 예수에게 특별했던 것은 그가 가진 이름이 아니라 그가 받은 사명 그리고 그의 삶과 십자가 죽음이 특별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이름 속에 담긴 “야훼가 구원하신다.”는 이름의 뜻을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내셨다. 그는 메시아로 오시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으로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루셨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들어오는 예수를 향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예수는 자신의 이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수는 군중들이 가벼이 연호하는 그 외침에 도취되지 않았고 그저 십자가 죽음이라는 과중한 사명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이해했던 사람은 없었다. 예수는 지금까지 여러 번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고, 마지막 식탁에서도 십자가 죽음을 예고하셨다(눅 22:14-21). 자신이 가는 길은 더 낮아지고 더 희생하고 죽어야 하는 길임을 알려주었고(눅 22:24-26), 제자들 앞에서 짓눌린 고통에 허덕이며 예수는 기도했지만, 예수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예수에게만 무거울 뿐이었다. 

이제 종려주일이 지나면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는다. 전국 사방에 교회들마다 십자가가 걸려 있고, 이제 일주일 동안 우리는 수십 번 십자가를 부르고 수백 번 예수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부르는 그 이름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던 가벼운 외침은 아닌지,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십자가가 예수가 지고 죽었던 그 형틀의 무게만큼 무거운 것인지, 혹시 우리도 십자가를 향하는 예수를 바라보며 나의 구원과 축복과 생명만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예수처럼 사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의 제자로 사는 것도 진정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수와 십자가를 너무 쉽게 부르고 가벼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기뻐할 수도 없고 슬퍼할 수도 없는 이때에,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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