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시아 각 지역은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공유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속해 있으면서 종교, 사상, 문화적으로 많은 내용을 공유해왔다. 이에 대한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전문적 연구들을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때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동아시아의 공동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려는 목적의 강좌를 개설했다. 종교, 사상,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비슷한 세계관과 공동의 가치를 의식하면서 ‘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의미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강좌다. 강좌명은 <아시아공동체론> (책임교수: 이찬수) 이다. 

이 강좌에서는 강사진의 절반 이상을 중국, 일본 등 해외 학자로 구성하고 있다. <에큐메니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이 강좌의 요지를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함으로써 동아시아적 공동 가치를 탐색하는 다양한 안목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강의하고 있는 정준곤 교수 ⓒ이찬수

첫 번째 강의는 “지금 왜 아시아 공동체인가”를 주제로 정준곤 박사(일본, 원아시아재단 사무국장, 정치학)가 맡아 진행했다. 

선입관과 마음의 벽을 깨기

몽골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다 수강생들에게 “한국이나 일본에 가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때 수강생의 절반이 손을 들었다. 잘못 질문한 건가 싶어 다시 물어봤다. 또 다시 반이나 손을 들었다. 그 때 나에게도 선입관과 편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열악한 상황에 처한 현재의 몽골만을 보고는 몽골 학생들이 한국이나 일본에 가기는 쉽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몽골은 800년 전 세계를 지배했던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다. 과거 몽골은 찬란했다. 현재만 보면 몽골 전체를 볼 수 없다. 과거만 보고서 지금을 판단할 수도 없다. 현재의 선입관을 깨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럴 때 미래도 보인다. 무엇보다 온전히 보인다. 

다양한 관점도 견지해야 한다. 흔히 아시아를 정치적인 시점에서만 보려 하지만, 아시아는 경험이나 전공이나 관심에 따라 다양하게 보인다. 아시아를 보기 위해서는 특정 관점에 갇혀서는 안 되고,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여러 시점에서 보아야 한다. 

아시아의 맥락에서 보기

한국만 안다면 한국 또한 모르는 것이다. 한국을 보려면 아시아적 맥락 혹은 세계사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더 큰 백락에서 자신을 다시 보기 위한 시도다. 개별 국가를 부정하고 아시아적 연대 기구를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오히려 국가의 본래 역할을 더 완전하게 하기 위한 논의에 가깝다. 

국가가 국민을 평화롭고 자유롭게 하도록 국민 자신이 기존의 국가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시민들 스스로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 간 벽을 더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이들도 종종 있지만, 그러한 국가적 벽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마이너리티도 많다는 사실까지 인식해야 한다. 

성공회대학교 옴니버스 교양과목 <아시아공동체론> 지상 강연 ⓒ이찬수

낡은 국가체제 졸업하기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졸업해야 한다. 대학 생활이 좋아도 평생 대학생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낡은 국가체제에 대해서는 졸업해야 한다. 국민을 특정 국경과 제도 안에 가두려는 시도는 일종의 폭력이다. 

특히 기존의 국민 개념은 극복되어야 한다. 국민이 특정 영역과 제도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국민으로서 완성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완성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이를 위해 제도적인 틀과 내면적인 장벽을 넘어서고자 해야 한다.

계속 이동해 가기 

사람의 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정치적인 박해나 경제적인 빈곤으로 인한 이동이다. 인류는 박해와 빈곤을 뛰어넘기 위해 이동해왔다. 또 한 가지는 삶을 직접 개척하기 위한 이동이다. ‘구글’이 탁월한 이유는 우수한 외국인 직원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인 과학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국가경쟁력이 높듯이, 과학자들이 스스로 선택해 국경을 넘어가면서 구글 같은 세계적 기업들도 생겨난다. 그 반대로 전문 연구자들은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곳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의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는 주요 이유도 폐쇄적 문화 탓이 크다고 한다. 심리적인 장벽을 깨고, 계속 이동해 가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에 구속되지 않는 시대로 더 빨리 옮겨가고 있다. 다양한 민족, 문화, 가치로 구성되는 시민사회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국가 간 제도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제도나 가치관을 넘어, 앞으로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정리: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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