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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장준하의 4.19와 5.16 (5)<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04.01 14:55

한국사가(韓國史家) 들의 과제,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재이해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그 성(聖) 칭호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 부(父), 그 자(子), 그 영(靈)에 붙여 부르는 성(聖)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성경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것이 있어 사람의 생명(生命= 명을 이뤄 사는 것) 이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허나 성(聖)은 쓰는 곳이 많을수록, 쓰는 횟수가 잦을수록 불성(不聖)이 되어 버린다. 잡(雜) 스러워 진단 말이다. 성전(聖殿), 성직자(聖職者), 성도(聖徒) 등 기독교는 성(聖)을 전매특허 낸 종교인가? 심지어 성물(聖物)이라고 하는 경우는 어떤가? 정말 성(聖)을 붙여야 할 자리가 있다. 민(民)이라는 자리다. 그래서 성민이다. 세계 기독교가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지 까지는 필자로서는 확실히 아는 바 없으나 한국 기독교의 경우 기독교인 자신들을 성민(聖民)이라 이해하고 있고 구약 속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꼭 같이 현 중동(中東)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며 '성민'이라 부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넌센스(Nonsense)다. 기독교(敎)도, 교회(會) 라는 것도, 성전(殿)이라는 것도 제도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정말 완성은 미완성일 때 완성을 지향하는 도상에 있을 때이다. 완성, 완전은 여하한 지경에도 머물지 않는다. 머물 수 없다. 그래서 완성은 없다. 완전은 없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함석헌이 "하나님도 미완성이라 해야 옳다"한 것이……. 어떤 종교거나 그 종교가 태동하던 초기, 그때 그것에 '거룩'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게 된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때 그 태동은 실(實)로 고귀한 사건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그 종교의 맥(脈)을 이은 것이라며 이제도 자신이 믿는다는 종교의 그 조직에, 직명에, 종교의식에, 그 필수품들에 '성(聖)'을 붙여 부르는 것, 그것은 오히려 참 종교에 대한 무지요, 역사의 무지가 아닐 수 없다. 성서는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느님이 "창조하셨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이 창조(創造) 하셨다? 창조하셨다니, 우연이 아니요 필연(必然)이란 말이다. 창조하셨다니! 조형(造形)이 아니요 "창조주의 의지주입"이란 말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사(創造史)안에서는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 심지어 시궁창을 낙천지(樂天地)로 사는 지렁이 하나까지도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다. 헌데 성(聖)이라니? 성(聖)이라고? 그것은 하느님의 피조물들을 계급 짓는 소리다. 하나님의 피조세계(被造世界)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는 것이다. 공존하지 못하는 것들은 버려진다. 국가? 민족? 예외가 아니다. 세계의, 인류의, 우주의 죄 짐을 져야하는 종교임에서 일까? 어떤 종교도 스스로를 성(聖)이라 할 때 그것은 이미 다음역사에서는 버려질 것들이다. 

성(聖), 그것은 하나님만의 것 ↔ 민(民)만의 것

성(聖) 이라니? 그것은 하나님만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동시에 민(民) 만의 것이다. 하느님이 역사의 주(主)이시다. 하나님만이 역사를 주관하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해계신다. 개개의 역사(歷史, 被造)를 간섭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역사(被造)를 위임해 처리 해 가신다. 하나님께서 이때 자신의 역사를 진행하시기 위해 선택하는 그 피위임자(被委任者)가 민(民), 민중(民衆)이다. 필자가 성(聖)이란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형용사(Holy)라 하면서 그야말로 딱 하나, 또 다른 거룩한 이가 민(民), 민중이라는 것은 바로 그 피위임 사건(被委任 事件)을 두고서이다. 기독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들이 자신들이 고집하는 '성(聖)'을 떼 내어 민(民)에게, 민중에게 돌려(드려)야 한다.

하나님만 거룩하시기 때문에!
민중만 거룩하시기 때문에!

민(民), 민중(民衆)이란 무엇인가?

1991년 2월 20일 자로, 한국신학연구소(韓國神學硏究所)에서 펴낸 <민중과 한국신학>(民衆과 韓國神學)이라는 논문집이 있다. 거기 '씨알이란 무엇인가?'라는 씨알사상의 창도자(?)인 함석헌의 글이 실려 있다. 그 글 속에 민(民)이라는 한문자의 풀이가 있는데 필자는 함석헌의 이 민(民)의 뜻  풀이를 긍, 부정양면으로 상당한 세월 되씹어 오고 있다.

긍정이라 함은 글자해석의 해석대로의 이해에서요, 부정이라 함은 역사의 진화에서 오는 새해석의 요구 때문이다. 민(民)에 대한, 함석헌의 글자 풀이는 이렇다. 민(民) 자는 원래 어미 '모(母)'에서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민(民)'의 해석에 있어 '긴 가시나 쇠 꽂이에 찔린 눈'으로 '풀싹'(grass roots)으로 ‘밭에서 일하던 중 죽은 노예(田亡)’등으로 그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들이 있음. 필자 주)

어미 '모'의 는 ㅁ는 여자의 가슴, 가운다 가로지은 ㅡ 은 유방과 유방사이를 흘러내린 골, 위 아래로 찍힌 두 점(÷)은 유방의 두 젖꼭지라면서 이 두 점 사이에 대각선으로 한 획(\)이 그어 내려져, '민(民)'을 이룬 것인데, 이 획 이란 어린 젖먹이라, 그래서 이 민(民) 자는 '어미의 젖을 빠는 젖먹이'를 뜻하는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필자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함석헌의 이 글자대로의 풀이는 긍정으로 받는다 했다. '민(民)'은 끊임없이 역사의 새 젖(말씀?)을 빨아야 하는 자 라는 의미로 받아서 말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민(民)의 해석을 그대로 받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대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부분이 말이다. 그 민(民)의 해석속의 그 민(民)이 '늘 젖을 빠는 젖먹이'라 했을 때, 그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는 자가 있어야겠는데 그럼 그 젖, 엄마는 누구냐 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민(民)의 어머니라는 것이냐? 말이다. 

필자가 함석헌의 민(民)의 해석에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점에서다. 도대체 누가 민(民)중을 젖 먹여 키운다는 것이냐? 시공안의 역사 속에선 민(民)중이 절대인데 말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필자는 함석헌의 민(民)의 해석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진화를 말하려는 것이다.

'민(民)은 젖을 빠는 어린애가 아니라 젖을 빨리는(먹이는) 어미다? 그렇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 예술도, 교육도 더 나아 종교까지도 민중의 젖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국가요, 근대요, 민족이요 따위겠는가? 초월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다느냐? 바닥 자리에 민중이 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야 말로 종교다. 

한국사(韓國史)에도 민주정권(民主政權)이있었다!

민(民)이 역사의 주체라면, 민주주의가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라면 현존하는 한국사가(韓國史家)들에게 할일이 있다.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을 복원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크리스천들의 경우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제2공화국은 한국의 근현대사(韓國 近現代史)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배경에 대해서, 그 수립에 대해서, 그 국정의 운영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그 퇴장에 대해 명확한 재이해가 절대로 요구된다. 이 제2공화국의 역사적인 복원 없이 한국근현대사에서의 민주주의는 절름발이로 계속(?)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왜? 제2공화국에 대한 평가가 바로 되지 않는 한 민주제도가 용서할 수 없는 제3공화국 버젓이 한국현대사의 한 사석(史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용서할 수 없는 제 3공화국이라는 것, 하늘이 퍼 부은 벌을 받아서였던가? 그 군사반란 말이다. 박정희(朴正熙)라는 그 이 땅에 와서는 안 되었던 사람.

한국현대사에 반민(反民), 반민중(反民衆)의 그를 분명히 정죄하기위해 할일이 있다. '제2공화국의 실상'을 밝히는 일이다. 제2공화국은 실로 자랑스러운 정권이었다. 대한민국헌법전문엔 대한민국이 계승해야할 두 가지 정신을 증언한다. 첫째가 3.1운동정신, 둘째가 '불의에 항거한 민주(民主) 이념', 곧 4.19 정신이다. 3.1 정신에 입각 대한민국(임시정부)이 4.19 정신에 의거 제2공화국이 탄생했다. 이 4.19정신을 절대기반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을 총칼로 전복시키고 그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의 군부는 자신들의 반란을 '혁명'이라 자칭하면서 제2공화국의 전북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
둘째, 그치지 않는 사회적 대혼란
셋째,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그래서 풍전등화와 같은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거짓이었다. 국가권력을 탈취하려는 탐욕배들의 광설(狂說)이었다. 박정희의 일단들은 제2공화국을 향해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운운했지만 장면 정권은 1961년 3월 정권쟁취 7,8개월 만에 '반공법'을 제정, 대북대책을 갖추기 시작한 바, 당시의 진보정당(사회대중당, 진보당 등)들로 부터 악법이라는 비난과 함께, 오히려 '남북의 대화, 교류를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형국이 빚어지고 있었다.

'사회적 대혼란'이라는 주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표현대로 '자고 깨면 계속되는 데모'를 두고 하는 주장이었는데 이야말로 자신들의 군사반란을 합리화하기위한 괴변이었다. 당시 데모의 통계를 보면, 대부분의 데모들이 1960년 4월 26(이승만의 하야일)로부터 6월 말까지의 사이에서 일어났는데, 이 시기의 데모건수가 정확하게 1960년 한 해 동안 데모건수의 80.1%에 이른다. 1961년도에 들어가면서 데모는 거의 수그러진다. 

나아가 4.19 혁명과 함께 이승만 정권의 유지수단이었던 폭력, 불법, 무법, 관권의 개입 등이 제거되면서 법치(法治), 민치(民治)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부정부패'운운 역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특히 제2공화국의 1차적 과제중 하나가 공채제도개선(公採制度改善)이었는데, 이 공채제도개선에 외곽으로부터 예기치 않았던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쳐 왔다. 국토 건설단 장준하사단으로부터 불어쳐 오는 바람이었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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