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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6.04.04 11:48
전에 살던 집 ⓒ임정훈

로자는 전에 살던 집에 주인집 일을 도와주는 Mana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인집 일보다는 주인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사 도우미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테툼어로 Mana는 언니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편하게 아줌마,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동티모르에서는 “마나”라는 호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그녀의 이름이 “로자”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를 돌보던 “로자아줌마”가 생각났다. “자기 앞의 생”은 수 십 년 전에 읽은 소설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로자 아줌마 앞에 주어진 삶이 주인공 모모 보다도 더 짠하게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또한 로자아줌마는 스스로 계단도 오르지 못할 만큼 뚱뚱하고 숨이 차서 계단에 오를 수 있도록 모모가 뒤에서 밀어주던 그 장면이 때때로 생각났다. 그래서 가끔은 내 체중의 무게가 감당이 안 될 때는 나도 로자 아줌마처럼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다. 

딜리에서 내가 만난 로자는 자그마한 체구에 아주 바지런한 사람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일을 하러 올 때 가끔 딸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는 엄마가 집집이 돌면서 청소를 해주고, 빨래를 하고 있을 때, 망고나무그늘에 앉아 주인집 손녀들과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하고, 다림질하는 엄마 옆에서 숙제를 하기도 했다.

전에 살던 집 ⓒ임정훈

나는 가끔 그녀와 함께 우리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것은 주인집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이 늦었기에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온 그녀가 배고파하기도 하였고, 나 역시 학교에서 돌아오면 허기져서 밥부터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로자와 함께 식사 할 때 즐거운 것은 그녀는 한국음식 특히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는 다는 것이다.

처음 로자와 식사 할 때 나는 그녀 앞에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주었는데 그녀는 숟가락으로 밥만 먹고 있었다. 아차 싶어 포크를 주었더니 그때 비로소 포크를 사용하여 반찬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그녀는 젓가락을 사용하기 위하여 나름 노력을 하였으나 애처로울 정도로 그녀는 젓가락 사용을 힘들어 했다.

한번은 로자가 김치를 먹고 싶은데 입안이 헐어서 먹지 못하겠다며 입안을 보여 주어서 보니 온통 헐어서 침도 삼키기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이를 어쩌나 하다가 마침 식탁위에 비타민C가 있기에 이거라도 먹어보라고 주었다. 로자는 비타민C 하나가 무슨 보약인 양 받아들고 좋아하였다. 그리고 정말 비타민C를 먹었더니 힘도 나고 입안 헐은 것도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로 우리는 비타민C 하나가 더위로 진이 빠진 몸에 새 힘이 솟을 것 같은 느낌을 눈빛으로 말하며 식사 후엔 꼭 비타민C를 챙겨 먹었다.

딜리에서 세를 놓는 집 주인들은 대부분 가사도우미를 두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집안일을 해주도록 하고 있다. 집세 속에 가사도우미의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행해지는 거라 굳이 하겠다 말겠다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다. 

나는 아침시간이 더 바쁘지만 그녀의 일을 좀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혼자 사는 살림을 굳이 로자의 손을 빌릴 것까지 없다는 생각에 그녀가 오는 요일은 청소랑 빨래를 일찍 해 놓고 학교를 갔다. 그것이 고마웠는지 그녀는 내 침대위에 놓인 이불을 더 가지런히 개켜 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 다림질을 해놓기도 했는데 그녀의 다림질 솜씨는 정말 예술이라 할 만큼 야무지게 잘 다렸다.

한번은 무슨 일인가 때문에 로자를 찾다가 창고 같은 곳까지 가보았는데 거기에서 그녀는 집집에서 모아 온 빨래를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비벼 빨고 있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무안한 마음이 들어 용건을 얼른 말하고 와서 여러 집 빨래를 세탁기 하나 없이 손빨래를 시키는 주인집에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작은 체구로 요일마다 다른 집의 일을 이렇게 하느라 힘들어서 항상 입안이 헐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에서 ⓒ임정훈

한번은 로자와 함께 시장을 간적이 있다. 우리는 길거리를 전부 세 낸 사람들처럼 수다를 떨며 시장을 돌아 다녔다. 그녀는 시장에서 과일 한가지와 야채 하나를 강력하게 추천해 주었다. 나는 그녀가 골라 준 과일과 야채가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라서 좀 망설여졌지만, 그녀의 강추에 일단 사서 들고 왔다. 

과일은 집에 와서 껍질을 벗겨보니 속에 하얀 요플레 같은 것이 들어 있고, 그 속에 까만 씨가 들어 있었는데 시큼한 맛 때문에 먹기가 좀 싫었다. 다음날 그녀가 왔을 때 이 과일은 맛을 모르겠다고 하였더니 그녀는 “아야따”라는 이름의 이 과일은 정말 맛있는 과일이라며 맛있게 먹었다. 로자, 네가 좋아하는 과일이라 사자고 했구나 ~~

아야따와 다른 과일 ⓒ임정훈

식사를 하면서 그녀에게 요리는 맛있는데 삶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이 요리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집은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때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불을 때서 요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가스를 사용하는 우리 집에서 이 요리를 만든 것이 정말 잘한 것 같았다.우리는 전날 사온 토란 같은 것을 요리해서 점심에 먹기로 하였다. 그녀는 그것을 일단 물을 많이 넣고 오랫동안 삶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일하고 있는 그녀를 간간이 불러 이제 다 삶아 졌는지 보라고 하면, 그녀는 계속 더 삶아야 한다고 했다. 무슨 요리가 이렇게 삶는 시간이 많이 걸리나 불평이 나오고, 그만 삶고 먹자고 했더니 지금 먹으면 아려서 못 먹는 다며 계속 삶으란다. 드디어 다 삶아졌다는 그녀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나는 그녀의 지시를 받으며 요리를 완성했다. 요리는 내입에 딱 맞게 맛있었다.

처음 집을 구하러 갔을 때, 마침 로자는 청소를 하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나와서 주인집 베띠와 이야기 하는 중간에 끼어들어 영어로 무슨 말인가를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심히 들으며 베띠와 테툼어로 이야기를 하였다. 나의 무관심이 무안했던지 그녀는 슬그머니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갔다.

그 후로 로자는 내 앞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녀와 점심을 먹으며 영어를 어떻게 배웠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영어를 쓰는 외국인 집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스스로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구나” 생각하며 영어를 귀에 담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마침 나를 보고, 내가 외국인이니까 주인집 베띠와 내 앞에서 영어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속도 모르고.. 영어를 모르는 주인집 베띠 앞에서 근사하게 로자를 세워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로자와 사이좋게 지내다 그녀가 다른 집으로 일을 하러 간 어느날, 작별 인사도 못하고 비타민C 몇 개 나누어 식탁위에 올려놓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고, 나는 그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사 온 집을 다시 가보기도 그래서 선뜻 발길이 향해지지 않았다.

살던 동네 ⓒ임정훈

그런데 며칠 전, 길을 걷는데 누가 나를 부르며 뛰어와서 보니 로자였다. 나 역시 그녀 소식이 궁금했고, 마음 붙일 곳 없는 딜리에서 그녀를 보니 반갑고, 나를 먼저 알아봐 준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는 길가에 서서 한참을 안부를 묻고 또 묻었다.

나는 그녀가 수 십 년 동안 내 마음속에 마음 짠하게 들어있는 프랑스의 로자 아줌마가 아닌, 사랑하는 그녀의 딸과 함께 언제나 명랑하고 씩씩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동티모르의 멋진 로자 아줌마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와 헤어져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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