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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그만 좀 바라봐 주세요<흐물흐물 혹은 말랑말랑하게 교육하기>
김정원 | 승인 2016.04.05 12:54

제조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한창이었을 당시, 그러니까 IMF가 오기 전 그 시절에, 아버지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머무는 기숙사에서 사나흘 정도를 나고 오실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고명딸인 내 걱정을 지극히 하였는데, 그의 걱정의 전반은 내가 공부를 게을리 할까 하는 조바심에 기인한 것이었다. 부모가 자녀의 공부를 걱정하는 것은 두루 해당되는 일이겠지만, 그의 자녀사랑은 그의 정신적, 심리적 결핍을 고대로 반영하고 있었기에 중용을 잃을 때가 많았다. 딸내미를 코앞에 앉혀놓고 중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영어와 ‘산수’를 손수 가르쳤으며, 13살 ‘다 큰 딸’의 머리 감겨주기는 물론 말리는 것에서부터 손발톱을 깎는 것까지 해주던 것이 그의 교육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부재는 그 자신에게도, 그렇게 길러진 딸에게도 보통 큰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그는 고심했고, 어느 이른 아침 날 그는 밝은 표정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자신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들려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집무실 소파에 앉아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는 그 사진을 내 책상머리에 붙여 놓더니, 갱지 한 장을 달라하였다. 모나미 볼펜을 꼭꼭 눌러가며 그는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2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내용은 이러했다. ‘1.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2.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자.’ 그는 그 갱지를 아까의 사진 옆에 나란히 붙여 두었다. 꼼꼼한 그는 따뜻한 말도 잊지 않았다. “아빠는 정원이 마음속에 있잖아. 여기 이렇게 사진을 둘 테니, 언제나 아빠가 정원이 곁에 있으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그가 자주 사용하던 단어, ‘명심’과 ‘철저히’. 그의 목소리와 눈빛, 입가의 미소까지 죄 눈에 선하다.

그때의 기억은 그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저 그립고 따뜻한 것 이다. 아니다. 사실은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조금은 무서운 기억이자, 기이한 것이었다.

(사진 출처 : villains wikia)

대학원 졸업 후, 책은커녕 책 코빼기도 보지 않던 그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었을 리 없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었을는지는 몰라도, 여하튼 어린 딸에게 Big Brother (소설 1984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당 내의 최고 통치자이지만, 전체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허구의 인물이다.) 가 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그는 실로 내 마음 속의 Big Brother 로서 늘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부재 속에서도 ‘감시자’로서 엄연히 나와 ‘있었다’. 그는 분명 내 곁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책상머리 너머, 집안 구석구석에, 내 맘 여기저기에 십분 ‘있었다’. 나는 예습과 복습을 하지 않았음에 수시로 죄책감을 느꼈다.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자는 날에는 긴장 탓에 첫새벽부터 번쩍 눈이 떠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활은 2년 여간 계속되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나의 자발성은 거의 동이나 버렸다

그 사진의 영험이 다한 것인지, 내 맘 속에 ‘불온한’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로, 진짜로, 그의 실재는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것 - 매일 20개씩 수학 문제 풀기, 주변 정리를 잘하고 몸을 단정히 하기,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기 등등- 을 지키지 않을 때면,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아빠가 있던 없던 혼자서도 잘 해내던 것들에 게을러지기가 일쑤였다. 나는 마땅히 잘하던 일도 내팽개쳐두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적어도 아빠가 없는 그 시간을 ‘문란하게’ 즐기면 되리라. 아쉽게도 12살 어린이는 그만큼 약지 못했던 지라, 고스란히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였다. 되려 이제 곧 끔찍이 아끼는 딸을 만나러 올, 바로 그 아빠를 마주할 두려움이 날로 커졌다. 아빠를 만나는 그 날엔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곤 하였다. 그 때의 거짓부렁이 나의 체계적 거짓말의 효시지 않나 싶다.  

그는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그가 있건 없건 감시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압박감에 못 이겨 나 자신을 ‘스스로’ 통제했다. 나는 ‘비교적’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억울해지기도 하고, 규칙 밖에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기도 했다. 자발적이면서도 아주 수동적이었고, 수동적이면서도 아주 자발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빠라는 인간이 아군 같다가도 적군인 것만 같았고, 때문에 나를 통제하는 것이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빠인 것 같기도 했다.

아래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의 내용 중 일부이다.

구치소에서는 저 유명한 벤담의 일망 감시시설을 본뜬 원형 칸막이가 운동공간이었다. 이 시설물은 수인 각자가 보여지기만 할 뿐 남을 볼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벤담의 감옥은 원래 베르싸유의 동물원 시설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하는데, 가장 바깥쪽에 원형의 높고 긴 담을 둘러치고 케이크나 피자를 자르듯이 부채꼴 모양으로 칸을 나누었다. (…) 원형의 탑이 중앙에 있고 이것은 이층으로 되어 있다. (…) 감시자는 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 사방의 칸막이를 위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감시자가 우리를 칸막이에 넣어두고 정말로 충실히 수인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탑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거나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동료와 잡담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시설은 참으로 상징적이었다. 연구실의 쥐새끼들처럼 우리들의 맴도는 움직임은 적나라하다. 
 
그가 통제하려던 것은 나의 숙제나 공부 따위가 아닌 ‘나’ 자체였다. ‘원형감옥 (파놉티콘 panopicon)’의 어원처럼 (pan 모두, opticon 본다),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길 원했던 것이다. 덕분에 아직도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영험한 그 사진이 여태 내 맘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파놉티콘이 적용된 쿠바의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의 내부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페놉티콘의 수인들처럼 나 역시도 ‘스스로’ 자신을 다그쳐가며 통제하였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죄책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빚쟁이마냥 찾아왔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아빠의 감시적 권력이 나를 억압했던 것이 아니라, 실은 내가 그 권력을 자발적으로 ‘생산’해냈던 것이다. 숙제를 미루는 동안에도, 새벽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을 동안에도, 반대로 단정하게 옷을 챙겨 입은 날에도, 복습을 철저히 했던 날에도 나는 그의 감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시간이 가만히 가듯, 그의 감시하는 권력 역시 내 안과 밖에서 가만히 커져갔다. 

내 아버지를 까대기하며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돌아가신 양반을 욕보이게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각자의 감옥을 생각해보고자 했다. 물음으로 치자면 “당신의 ‘빅브라더’는 누구입니까?”정도겠다. 나에게 빅브라더는 아빠였고, 나아가서는 신이었다. 아빠의 교육은 학교교육보다는 교회교육과 닮아있었다. 나는 학교 담임선생님이 방과 후 나의 일상을 감시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교실을 나오는 동시에 선생님으로부터는 자유였다. 그런데 신은 달랐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교실 안과 밖을 가리실 분이 아니지 않은가. 즉, 아빠의 자리를 하나님으로 치환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셈이다. 

교회는 한결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의지할 존재자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는 교회(교회 학교)는 여러 가지의 율법과 규율을 함께 제시하곤 한다. 이럴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가끔은 나를 따라다니는 ‘큰 눈’이 되기도 하고, 벌하시는 ‘심판 자’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감수성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감찰하시는 주님’을 바탕으로 한 경고성 설교와 교육 활동은 신의 심상을 ‘감시하는 신’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마저도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신 앞에서 죄의 고백을 강제하는 것은 종종 ‘자기 성찰 (self- reflection)’의 기회마저 거세하게 한다. 다소 냉소적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 물론 많은 어른들도- 회개의 눈물이 스스로의 반성으로부터 온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것 역시 하나님의 속성이며 사랑과 심판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혹은 심판의 하나님을 보다 강조하기도 한다. 불편한 논쟁이 예상되는 이 이야기를 기약 없이 미뤄놓은 뒤, 다만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하다. 아빠의 교육은 나의 자발성을 무너뜨리고, 죄책감을 부추겼으며, 거짓말에 능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디에나 계시고,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답답증이 날 때가 많았던 이유는, 그저 내가 죄 많은 여자여서 일까.

교육이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그 자발성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묻는 경우는 드물다. 얼핏 보면 그것은 ‘스스로’ 에게서 난 것 같으나, 많은 경우 ‘사랑으로 위장한 감시‘나 ‘요새로 위장한 철장’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 즉 자발성이야 말로 허구이거나 가공이다. 그 허구와 가공을 벗기고 빠개고 해체시킨 후에만 신 앞에서 온전히 ‘스스로’ 일 수 있다. 나와 ‘너무’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보기를 권한다면 이 또한 너무한 것이 될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했던 많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세상 다시없을 친절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아빠의 사랑은 너무 무서운 사랑이었어. 미안해, 우리 딸.” 
그의 마지막 사과는 책상 앞 사진보다 훨씬 따뜻했다. 

<필자 소개>

김정원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 석사 졸업.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김정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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