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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더 큰 거짓을 낳는다<이병두 칼럼>
이병두 | 승인 2016.04.05 16:24
쿠르트 발트하임

쿠르트 발트하임, 1968~70년 오스트리아 외무부 장관을 거쳐 1972~81년 UN사무총장(再選)을 마치고 1986년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되어 6년 동안 재임했다.

그의 경력과 이력만 얼핏 보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의 뒤에는 역대 UN 사무총장 중에서 ‘가장 무능력했다’는 평가가 따라다녔고, UN 사무총장 재선이라는 ‘화려한 명함’을 갖고 조국의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나치 정권에 대한 협력자 수준을 넘어 나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범죄자’였던 것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이 된 뒤로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초청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입국을 거절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가 더욱 나빴던 것은, 나치 전력에 대한 소문을 확인하려는 젊은 기자 후베르투스 체르닌이 먼지 쌓인 서류들을 뒤져서 명백한 증거를 찾아서 ‘정확한 사실 보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니다”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우먼 인 골드The Lady in Gold》(앤 마리 오코너 지음/ 조한나 ‧ 이수진 옮김/ 영림카디널)에서 전하는 ‘발트하임의 나치 전력과 거짓말’ 역사이다. 

1986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젊은 기자 후베르투스 체르닌(Hubertus Czernin)은 ‘대통령 후보인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이 자신의 전쟁 기록을 은폐했다’는 소문을 접했다. 

그가 기자로 근무하던 <프로필>의 편집장은 그 이야기를 계속 조사해 보라고 고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먼지 쌓인 기록 보관소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스치듯 언급되거나 수군거리기는 했으나 자신의 가족 내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의논된 적이 없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노란색 서류철 속에 유대인 대학살에 관련한 오스트리아의 공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발트하임이 출마하기 1년 전, 후베르투스는 발트하임이 자서전에서 “1941년에 독일군에 징집 당했고, 12월에 동부전선에서 부상을 당했으며, 전쟁의 나머지 기간 동안 법학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나치 국가사회주의의 열렬한 반대자이자, 반(反)나치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청소년’으로 묘사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 속 발트하임은 유대인 교회당인 시너고그에 불을 지르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수정의 밤’ 사건 일주일 후에 나치 돌격대에 입대했다. 그 부대에 있는 동안 발트하임은 알렉산데르 로르(Alexander Lohr) 장군의 통역관으로 발칸 반도에서 일했다. 이 장군은 에르노 구트만이 살해된 야세노바츠 살인수용소와 같은 곳으로 유대인 강제추방을 감독하는 인물이었는데 그의 부대는 크로아티아로 가는 나치 군대와 동행했으며, 나치의 꼭두각시 지도자인 안테 파벨리크(Ante Pavelic)는 발트하임에게 훈장을 수여하였다.

1948년도 전쟁범죄위원회 서류는 발트하임을 ‘살인, 인질 살해’ 등의 전쟁 범죄로 기소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영화 <우먼 인 골드>에서 후베르투스 체르닌으로 나온 배우 다니엘 브륄(Daniel Bruhl)

발트하임은 후베르투스가 자신에 관한 기사를 우호적으로 써줄 것이라고 믿었다. 후베르투스의 가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베르투스는 ‘마치 폭탄을 투척하듯’ 발트하임의 전력을 폭로했다.

이에 대해 발트하임은 처음에는 자기가 찍힌 사진까지도 “내가 아니다”며 부인했다. “전쟁에 참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었다. 그러다가 “알고 있었지만 참여한 적은 없다”며 주장을 번복했고, “학살을 막을 힘이 없었다”고 변명하며 상황 논리로 피해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오스트리아의 끔찍한 역사적 난제가 만방에 드러났다. 만일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면 히틀러 점령군에서 근무하는 것이 어떻게 애국적 의무로 해석될 수 있단 말인가? 협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했고, 반역죄로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몇 달 뒤, 오스트리아는 어쨌거나 발트하임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를 전범용의자 목록에 올리고 입국을 거부했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 발트하임은 집안끼리 오랜 친분을 맺어온 후베르투스가 자기를 봐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실제로 후베르투스 집안에서 압력도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어느 숙부는 그에게 “앞으로 다시는 너를 공(公)이라 부르지 않겠다”며 후베르투스를 귀족으로 예우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하였다.(후베르투스는 오랜 전통을 간직한 귀족 집안 출신이었고, 그의 증조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무부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웃들 중에서는 길에서 그를 만나면 일부러 그를 피해서 멀리 돌아가는 이도 있었고, 아내에게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며 비난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후베르투스는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했기 때문이고, 자기 할아버지, 그리고 ‘친절하고 자상한 분’으로만 알고 있던 아버지의 나치 전력을 알게 된 뒤 조상의 죄에 대한 ‘의식’을 하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 죄를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발트하임과 같은 ‘비열한’ 위선자들의 죄상을 세상에 드러내고 나치가 약탈했던 유대인들의 예술품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에도 나섰다.

지금 우리 사회에 조상의 죄를 감추고, 그들이 저질렀던 ‘악(惡)’을 ‘선(善)’이라고 역사까지 왜곡하며 거짓을 확대하고 있는 이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종교계에서까지도 일제에 적극 협력하여 숱한 동포들을 중국, 버마 ‧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전장에서 죽어가게 몰아댄 교단 지도자들을 ‘훌륭한 분’이라고 추켜세우거나, “일신의 안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위였으므로 우리가 그분들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억지를 부리고, 그들의 친일 언행을 ‘위장 친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감싸주는 이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거짓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를 정토세계 ‧ 하느님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원력(願力)과 의지를 가슴에 담았던 독지가가 출연한 재산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의 책임자가 그것을 사유화해서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이런저런 비리를 저지르고서도 짐짓 ‘깨끗한 지성인’인 척, 늘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올바른 종교인’인 척 한다. 잘못의 꼬리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거짓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 거짓을 믿으라고 강요한다.

거짓은 거짓을, 아니 훨씬 더 큰 거짓을 낳는다. 언젠가 모든 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본래 저지른 죄에 이 ‘거짓말’에 대한 죄까지 더해져서, 염라대왕이 재판할 때에 죄의 무게가 훨씬 더 무겁게 될 것인데 그래도 계속해서 그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게 되고, 악한 행위를 저지르면 그에 따른 죄의 과보를 받게 된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를 믿지 않아서인가. 그러면 종교인이 아닌데 …….

출처 : 가톨릭프레스 (http://www.catholicpress.kr/)

 

   
▲ 필자 이병두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불교계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였으며, 최근 경력은 문화체육관광부 불교 담당 종무관으로 5년 근무하고 2015년 5월 말 퇴직한 뒤 현재는 자유롭게 글 쓰기와 번역으로 소일하고 있다.

역저서에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영어로 읽는 법구경』, 『북한산성과 팔도사찰』 및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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