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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수도자들의 깨침이 필요하다<이병두 칼럼>
이병두 | 승인 2016.04.12 10:38

필자 주) 한국 가톨릭을 오늘까지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해온 여성 수도자-수녀님들께 한 말씀 드립니다. 혹 기분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더라도, ‘우리 가톨릭 집안 사정을 잘 모르는 이웃종교인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려니…’ 하고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지난해 12월 12일, 사우디아라비아(이하에서는 사우디로 약칭)가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여성들이 투표권과 함께 피선거권을 갖게 되어 이날 열린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성의원 네 명이 당선되었다는 소식 들어 보셨습니까? 이 날이 사우디 여성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날 투표를 위해 유권자 등록을 한 여성은 남성 유권자의 10% 정도에 불과하고, 아직도 “여성의 역할은 집안 살림을 잘하는 데 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여성들에게 운전을 금하고 있어서 남편이나 집안의 남자 도움을 받지 않으면 투표소까지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진정한 남녀평등에까지 이르기에는 멀고 험한 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권자 등록을 하고 이날 투표에 참여한 여성들이 “정말 기분 좋다. 변화는 쉽지 않지만 선거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투표를 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는 언론 인터뷰 내용이 가지는 무게는 만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첫술 밥에 배부르랴? 시작이 반(半)이다”는 우리 속담을 그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외부인의 눈에는 ‘아직 멀었다’고 보이겠지만, 사우디에서 이 정도까지 오는 데에도 힘든 과정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에게 운전을 금하는 법률을 개정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20여 년 째 이어오는 이들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2011년에는 ‘운전을 했다’는 죄목으로 태형(笞刑)을 받은 여성도 나왔지만 그래도 일부러 도심지에서 차를 운전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려 ‘사회 문제화’ 하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도 울지 않는 아이에게는 젓을 제때에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데 그것을 그냥 내주는 권력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정당한 권리라 해도, 끈질긴 요구를 이어가고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지 않고서 그것을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권리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쟁취(爭取)하는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보면, 각 종교계에서 당연한 듯이 벌어지고 있는 ‘남녀 차별’에 대해서는 저는 여성 교직자들의 자각(自覺)과 용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원불교 쪽은 그래도 비교적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고 불교 쪽도 점진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포함) 쪽에서는 아직 ‘남녀평등’의 길이 아득하게 멀게 만 보입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교도권과의 대립을 무릅 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버스를 탄 수녀들(Nuns on the bus)`이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시몬, 진, 크리스 이 세 수녀의 활동을 그린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 (Radical Grace, 2015)

가톨릭에서 여성 수도자인 수녀님들은 아예 ‘성직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예수님 가르침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세계적인 신학자 수준의 실력을 갖추어도 신자들을 상대로 강론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비구들에게 강의를 하고 심지어 지도교수를 맡는다는 사실을 수녀님들 입장에서는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도 “여성 안수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워낙 강한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흔히 “성경에 ‘여자는 잠잠하라’, ‘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리지 말라’고 나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고 하지요. 심지어 여성 안수 문제를 “보수 정통 에서는 여성 안수를 반대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나 여성 안수를 허용한다”는 식으로 오도하며 보혁(保革) 대결 구도로 몰고 가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이 아닌가요?

본래 종교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서 권력을 가진 쪽은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것이 ‘옳지는 않지만 늘 그래왔던’ 권력의 속성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권력을 가진 쪽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권리를 찾아와야 할 쪽이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불교국가’라고 하고, 주민의 대다수가 부처님 제자를 자처하는 동남아시아의 상좌부(上座部, Theravada) 불교국가에서도 비구니 교단을 부정하고 있고, 미얀마나 태국 등에서는 자국에서의 수계가 불가능하여 외국에 나가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어 귀국해 포교 활동을 할 경우 심지어 투옥되는 경우까지 있지만 계속 이런 도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우디 여성들이 ‘운전을 할 권리’를 위해 20여 년 이상 싸워오고 있듯이, 동남아 불교계 여성들 중에도 투옥되는 상황까지도 피하지 않는 당당하고 의연한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상좌부 불교 국가에도 비구니 교단이 다시 일어나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물론 2000여 년 동안 사제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숙명처럼 여겨온 여성 수도자들이 “평등한 권리를 달라!”며 거리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안 됩니다. ‘여성수도자들은 사제를 위한 보조 역할에 머문다’는 조항 또는 규정을 여러분이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도에 굴종(屈從)하는 것이지 하느님에게 순종(順從)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여성수도자들은 평신도들에게 예수님 가르침을 설명하고, 미사를 집전하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사제단을 보조하는 종이 아니다. 우리도 어엿한 성직자이다”고 선언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행동하면 교단 권력이 완강하게 방해할 것이고, 그들에게 보복을 당하거나 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높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운전을 했다고 태형을 당하는 사우디 여성이나 외국에 나가서 비구니계를 받아 왔다고 해서 투옥되는 태국 ‧ 버마의 비구니들보다 더 큰 처벌을 받는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교단에서 취할지도 모르는 보복과 징계가 무서워서 지레 겁을 먹는다면, 아예 ‘평등권’ 자체를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할 것입니다. 

역사 상 희생 없이 얻어낸 권리는 없었습니다. 설사 얻어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곧바로 다시 빼앗기거나 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故)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5년 앨라바마 주의 셀마라는 작은 도시에서 이끌었던 ‘투표권 요구 행진’을 다룬 영화 <셀마>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먼저 간 이들이 말합니다. ‘더는 안 돼! 더는 안 돼!’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구걸이 아니라 요구합시다. 투표권을 달라!”

여러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 자리로 돌려놓는 일은 구걸 대상이 아닙니다. 선처를 부탁하며 매달릴 일도 아닙니다.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1965년 앨라바마 주 셀마에서 있었던 저들의 용기, 희생이 없었다면 아직도 미국 흑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 흑인의 아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꿈조차 꿀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요. 잠자고 있는 여러분의 권리를 불러 일으켜서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힘을 주세요.

출처 : 가톨릭프레스 (http://www.catholicpress.kr/)

 

   
▲ 필자 이병두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불교계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였으며, 최근 경력은 문화체육관광부 불교 담당 종무관으로 5년 근무하고 2015년 5월 말 퇴직한 뒤 현재는 자유롭게 글 쓰기와 번역으로 소일하고 있다.

역저서에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영어로 읽는 법구경』, 『북한산성과 팔도사찰』 및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공저) 등이 있다.

이병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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