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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명멸(明滅)한다 (2)4.16세월호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이은선 (세종대교수, 생평마당신학위원장) | 승인 2016.04.15 18:13

4. 명멸(明滅)하는 부활, 확산되는 거룩(聖/性/誠)의 영역

우리는 이미 세월호 유족들이 기성의 교회들과 더불어 가장 고통스럽게 만나는 지점이 그 교회가 세월호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며, 이제 거기서 내려오라고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안다. 많이 회자되는 예로서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가 하나님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이유가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나, 또 거기서 더 나아가서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대안 목회자로 이름을 얻고 있는 이재철 목사가 “세월호 유족들을 우상시하면 안 돼”라고 했다는 발언 등은 그렇지 않아도 사방에서 점점 더 강하게 옥죄어오는 압력과 소외와 망각에의 두려움 속에서 진실규명을 위해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유족들에게 치명타를 날리는 격이었다.

(사진 출처 : 예장 뉴스)

나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언술들이 폭압적인 정치권력이 어떻게든 세월호의 실재를 ‘과거’로 밀어버리려는 시도라고 한다면 종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그것을 ‘미래’로 넘겨버리려는 자기소외와 현실회피적 표현이라고 이해한다. 그것은 여기서 또 다시 우리 삶과 생명이, 세월호 유족들의 진실을 향한 절규와 고통이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에서 표류하며 고사(枯死)되고, 치워지고, 살아지지(生生) 못하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으로 인한 현재적 삶과 생명의 탈각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의 이유가 한국 교회의 ‘부활이해’와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한 번의 부활을 절대화하고 실체화하는 일, 또는 새로운 부활을 철저히 미래화하고, 영과 육을 단차원적으로 이분화 시키면서 부활을 사사화(私事化)하고, 공적(公的) 차원을 탈각시키고 영성화하는 일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세월호 유족들에게 남겨진 일은 이제 세월호의 진실을 더 알려고 하지 말고 미래의 ‘하나님의 뜻’에 맞기고, 빨리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죄과’를 더 자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만히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러나 세월호의 ‘보통사람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름 없던 교인들에 의해서 “생명의 하나님”을 오독하는 일이고,21) 하나님 신앙을 “‘책임을 면책’하는 ‘현실도피의 수단’”이 되게 하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지적되면서 거부되었다.22)
   
1) 부활의 실제: 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월호 유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우리가 앞에서 살핀 대로 세월호 부모들이 그렇게 하나같이 세월호 이후의 삶을 ‘앞으로 죽어서 아이들을 떳떳하게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든 “구조하지 않은 자들이 진급을 하고, 수습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고, ... 그것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협박하고,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면, 거기서의 ‘위해서’와 ‘이유’도 또한 뜻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이미 함석헌 선생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신’을 부정할 수 있지만 삶을 사는 한 ‘뜻’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인데, 뜻이란 바로 그렇게 ‘생명자체(性)’이고, 그것의 원초적 ‘의지(生意)’이며, ‘얼 자신(仁)’이기 때문이다. 뜻을 부정하는 일은 그래서 생명을 그냥 포기하는 것이고, 단지 고깃덩어리로만 사는 일이며, 어떠한 소망이나 바람도 용납하지 않는 일이 된다. 즉 모든 미래를 죽이는 일이고, 새로운 태어남(재생renaissance)을 부정하는 일이며, 그것은 곧 ‘부활’을 부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보았듯이 세월호의 가족들은, 그리고 세월호의 진실을 진정성 있게 통과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사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한다거나, 아니 이미 지금 이곳에서 때때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靈)과 혼(魂)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것을 고백한다. 또한 반드시, 심지어는 비록 ‘그들 (이)생이 다가도록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세월호의 진실이 꼭 밝혀지리라는 것을 ‘믿고’ ‘바란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자신들의 ‘믿음’을 표시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삶에 뜻이 있음과 ‘몸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님’을 말하는 부활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일에 대해서 그렇게 언표하고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진실이 밝혀지는 일을 위해서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또한 앞으로도 ‘끝까지 지속적으로(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 삶은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뜻과 부활이라는 의미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고 다시 예전의 반생명적 뜻과 부활의 의미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해의 부활, 단 한 번에 완성되거나 그것을 통해서 실체화되는 부활이 아니라 끝없이 명멸하는 부활, 지금 이생에서부터 각자의 삶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난 길을 순간 순간 걸어가면서부터 몸으로 살아내는 부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고, 만날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부활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길을 통해서 삶과 생명이 피어나고, 오늘에서 영원이 살아지고, 그것이 이생에서의 삶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게 한다고 믿는다.23)
   

2) 몸과 부활: 세월호의 유족들은 죽음이나 고통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야기하는 일을 못견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자식의 죽음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큰 전환과 깨달음이 되었음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즉 그 어떤 혐오와 거부에도 불구하고 부활에는 죽음과 희생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고, 새로운 탄생은 그렇게 삶과의 “불화(不和)”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는 것이다.24) 그것이 삶의 원리이고, 열매의 속성임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부활은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인데, 전통적 인습의 부활이 죽음과 희생의 차원을 거부하고 부활의 영광만을 말한다거나, 또는 몸과 영, 이생과 저생, 물질과 정신을 둘로 나누어서 그것들을 서로 상관이 없는 별개의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 등이 맞지 않는 이야기이고, 억견이고 단견임을 지시해 준다. 전래의 유교적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리기불이(理氣不二)’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그러므로 ‘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여겨서 이생에서의 악과 진실을 어떻게든 여기서 덮고 가리면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또는 그 악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활을 단지 저생 어느 때인가의 일로 여겨서 지금 여기에서의 진실의 행위를 소홀히 하는 것 등은 더 이상 견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25)

부활은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통과해야 하고, 세월호의 유족들이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며, 우리에게도 세월호가 그 계기로 오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지만 지금까지 무지했고, 깨닫지 못했고, 종처럼 매여 있거나 외부적인 중보자에 타율적으로 매달려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서 이미 예수가 우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며 하늘 부모님의 일을 모두 가르쳐주었다고 한 의미가 드러난다. 또한 한국의 역사에서 볼 때 민중의 해방을 참으로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형태에서 가능하게 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가 그 글을 배우는 사람이 ‘스승 없이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不師而自悟)’ 경지를 얻게 되는 것을 소망한 것처럼,26) 오늘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제 대속(代贖)의 중보자 없이 ‘스스로 자기 존재의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람’, 즉 ‘자유(自由)인’이 된다는 의미라고 여긴다.27)

“승묵이 때문이잖아요. 솔직하게. 사고가 안 일어나고 승묵이를 잃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파고들지 않고 그냥 전에 살듯이 평범하게 살았을 거예요. 근데 승묵이를 잃고 난 다음에 제가 조금씩 더 앞으로 나가고 하나씩 알게 되다 보니까, 엄마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우리가 안 해놓으면 그것을 진실을 못 밝히고 이대로 묻혀버리면 어떨까 어떻게 해야 될까 ... 몸을 아끼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28)
   
이렇게 부활은 몸을 통한 일이기 때문에, 몸과 영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몸의 부재를 견뎌야 하는 아홉 명 미수습자 가족들이 얼마나 더 극심한 고통에 처해있을 거라는 것은 잘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가운데서 단원고 희생자 교실을 그렇게 빠른 시간에 치워버리고, 그 몸의 흔적들을 소중히 하지 않는 일은 단지 그 가족들에게만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서도 다시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몸으로 일깨우는 직접적인 대상을 치워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6.25의 동족상잔을 겪고 나온 오래된 시(1954년)이지만 다음과 같은 시는 부활과 죽음, 몸을 통한 부활, 우리 몸과 우주와 미래 등을 잘 지시해 준다. 

<목숨>
                                     신동집(申瞳集)

목숨은 때 묻었나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表情(표정)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億萬光年(억만광년)의 玄暗(현암)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砲煙(포연)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體溫(체온)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者(자)는 죽은 者(자)를 證言(증언)하라
죽은 者(자)는 살은 者(자)를 告發(고발)하라
목숨의 條件(조건)은 孤獨(고독)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 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 많은 時空(시공)이 지나
모양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白鳥(백조)는 살아서 돌아오라29)

3) 공적(公的) 부활: 이번 416 세월호의 진실을 통과하면서 드러난 부활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매우 ‘공동체적(communal)’이라는 것이다. 부활은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일이거나 어느 특정한 한 주체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명멸하면서 특히 공동체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임을 드러낸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했고, 말을 잃었고, 방밖이나 집밖으로 나오려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던 직장이나 교회, 친구들을 떠났고, 거기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지금은 그에 더해서 오히려 폭력을 당하고, 구금되고, 협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또 많은 고백이 나오기를, 자신들이 바로 그러한 지경에 있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함을 통해서, 자기 속에서 나와서 같이 싸우며, 같이 울고 이야기를 나눌 때 뜻하지 않던 치유와 새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엄마들의 공방’에 나가서 거기서 울고 싶을 때까지 실컷 울게 놔두는 엄마들 속에서 서서히 기운을 차리게 되었고, 아빠들의 ‘축구모임’이 그러한 역할을 했으며, 함께 진실을 알리는 간담회를 열러 다니면서 한 단계씩의 회복을 경험했다고 한다. 기존 교회로부터 나와서 안산 분양소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고 목요기도회를 가지면서 서서히 용기를 얻게 되었고, 또한 자신들이 진실규명을 위해서 온갖 곳으로 다닐 때 남은 아이들을 돌봐준 그 친구와 가족들, 자신들도 아직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5.18유족이나 대구참사, 밀양 원전투쟁의 할머니들, 용산참사의 피해자, 멀리 미국 911참사의 유족들 등의 함께 함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 팽목항이나 안산, 광화문 등의 416의 현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일을 바로 자신들의 일로 삼아서 같이 해준 수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요즈음 이들에게는 진도 앞바다의 ‘동거차도’가 비록 거기에는 움막밖에는 없지만 그들이 마음껏 함께 울고 웃으면서 속에 있는 말을 하나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곳, 그래서 그곳이 유일하게 “진실이 작동되는 곳”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바로 이러한 다중의 사람들과 공동체가 다름 아닌 부활의 수행자, 그래서 ‘다중그리스도(mutiple christ)’가 됨을 말하고자 한다.30) 부활은 전통의 교회가 강조하듯이 예수 한 사람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고, 또한 그를 통해서만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그의 여러 제자들과 그 이후의 교회공동체가 거기에 함께 있었으며, 오늘날 세월호의 진실에서는 앞에서 들었던 많은 ‘함께 함’들이 부활의 공동 수행자들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끝없이 명멸하는 부활의 일을 통해서 세월호의 진실을 통과하며 이 세상을, 한국사회를 지속적으로 ‘거룩(聖)’의 영역으로 화하게 하는 부활의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세월호 부활의 한 젊은 주역의 글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희망을 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힘든 당신께>31)

                                                       최윤아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지만....
무엇이든 해봤지만 아무것도 해결 된 게 없는 상황에 힘들어 하는 그 마음...
저도 알아요.

힘들고, 때론 원망스럽고, 때론 끝없는 무기력감에 빠지겠죠.
포기하고 싶겠죠.

근데요...

우리는 분명 변화시키고 있어요.
가장 단시간에 우린 기록에 남을 서명을 받았고요,
최초로 우린 국회를 점령했었고요,
최초로 대형참사 피해자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어요.
아주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지금 아픈 시간에, 그
시간들을 기록하고 왜치며 바꾸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2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노란리본이 사라지지 않고 있잖아요?

우린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게 아니에요.
지구가 움직이듯 우리가 하는 일은 너무나도 큰 일이라 당장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우린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어요.

그러니 힘들어하지도 절망하지도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얼마 전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그 태동과 정착을 위해 애쓰면서 써놓았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일지’를 부록으로 읽게 되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일제 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사람들에게, 특히 역사학자나 등의 지식인이라면 그가 살던 상황에서의 제일의 현안은 나라를 잃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 회복과 독립을 위한 노력이 제일의 관건이었을 터인데, 어떻게 그 당시의 그들이 그 문제는 제쳐놓고 돌아보지 않으면서, 대신 고대의 역사 등에만 관심하면서 지낼 수 있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후대 사람들이 보면, 오늘 21세기의 우리가 보면 누구든지 그렇게 나라가 독립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관여하지 않은 것은 비겁한 일이고 잘못된 일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판단이 7-80년대 한국 현대 군부독재시절이나, 특히 오늘의 분단시대에 분단과 통일의 문제와 관련시켜 볼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지적하는데, 즉 나중에 우리의 후대와 후손들이 어떻게 우리 조상은, 우리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당시 그 현안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도 않을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고 실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노교수의 마음에는 특히 오늘의 분단시대에 통일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오늘의 통일문제와 평화문제에 관심가질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 그렇게 지적한 것이다.32)

나는 이러한 관점이 오늘 세월호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일반민족 행위의 진상규명이 그렇게 지연되었지만, 그러나 참으로 기적처럼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지나서 2005년에 시작될 수 있었고, 그렇지만 여전히 방해와 태만, 왜곡 등이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가 그러한 과정들을 일지에 낱낱이 적어놓은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과 일에 대해서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서 진실이 드러나는 일이 있을 것이며, 진실이란 아주 작은 디테일들 속에서라도 그 냄새를 풍길 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소소한 디테일들도, 전혀 예기치 못한 언술과 맥락, 정황들도 누군가에 의해서 기억될 수 있고, 기록될 수 있으며, 그것들이 드러나는 때가 있으면서 진실을 밝히는 작은 지시자가 될 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부활은 결코 누군가 한 사람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한 오히려 우리의 부활은 스스로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타인’에 의해서, ‘관객’에 의해서, 무심한 ‘관찰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33)  

진심을 가지고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영원으로 다가오는 그때그때의 현재를 놓치지 않고 잘 살아내었는지, 그 당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또한 왜곡될 수도 있고 아주 미약해서 잘 보이지 않고 외면되고 삭제되기도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여기서는 강만길 교수라는 한 역사학자에 의해서 다시 기록되고 알려지고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 큰 떨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친일 반민족 행위의 일들을 밝히기 위해서 <과거청산특별법>이 만들어져서 국회에서 예산이 편성되고, 별정직 공무원으로 직원들이 모집되고, 전문가 집단이 고용되어서 그 일들이 조사되고, 기록되고, 편찬되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읽으면서 이번 <세월호 특별법>에 의한 특조위의 활동들도 잘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온 것도 큰 성과이고, 지금 부족하고 미진해도 다시 드러날 날이 있을 것이며, 거기서 이번 4.16의 진실을 통과하면서 누구 진실했는지, 누가 진정으로 부활의 수행자들이었는지, 무엇이 거짓이고, 누가 어떻게 거짓으로 참여했으며, 지금 잘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어느 일이 참으로 귀한 부활과 생명살림의 일이었는가가 밝혀질 날이 있을 것임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것은 그렇게 우리 삶에서 오늘에서 영원의 침노를 보지 못하고 거기에 함께 참여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 될 것인가를 더욱 생각했다. 그래서 ‘구이경지(久而敬之), 큰 떨림과 두려움, 공경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현재를 살아가기,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난 협소한 길을 실족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밟아 다져가는 일,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이고, 부활이고, 세월호의 진실을 통과하면서 우리가 더욱 배워가야 하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모여 사는 일을 멈출 수 없다면, 국가와 정치의 일을 포기할 수 없다면, 거기서의 모여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초월과 구체가 관계하는지, 진실과 미래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를 잘 숙고하면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영역은 인간이 의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해서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이 영역의 경계선을 존중할 때에만 자신의 고결성을 지키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개념상으로 ‘진리(진실)’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그 진리는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자 우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다.”34)

5. 짧은 마무리 - “세월호는 우리 삶입니다”

이번에 특히 세월호의 세밀한 목소리들을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도 했다: 지금 내가 설사 아무리 어떤 ‘거창한’ 미래의 일이나 머리의 일을 한다 해도 지금 바로 여기에 구체적 몸으로 다가오는 생명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아파 누워계신 부모님, 지금 같이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아이, 함께 산책 나가자고 계속 애처럽게 눈짓을 보내는 우리집 진돗개 백호, 전화와 소식을 기다리시는 시골의 고모님 등, 그런 맥락에서 특히 조효제 교수가 “고독이라는 이름의 고문”이라는 제목으로 교도소에서의 독방 구금의 비인간성과 인권침해를 다루면서 했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이 더욱 다가왔다;

“교도소 내의 독방 구금이 인권유린이라면, 일반 사회 내에서 강요된 고립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일자리를 잃어, 노숙인으로 전락하여, 쪽방에 거주하게 되어, 독거노인의 처지에 빠져, 경쟁사회로부터 배제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불평등에다 흙수저로서 자포자기하여 사실상 분리되고 배제된 사람들 역시 ‘사회적 고문’을 받고 있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으로부터 사회적 탯줄을 제거하면 그에겐 고통을 느끼는 육신만 남게 된다. 모든 인간은 고문 없는 세상에 살 권리가 있다.”35)

또한 세월호 유족들과 연결해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도 했다; 세월호의 가족들은 어떻게 그처럼 하나같이 이미 사고가 나기 전에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씨와 애틋한 가족애, 살아있고 활동적인 일상성과 몸적 건강함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래서 그러한 고통의 나락에까지 떨어졌어도 놀라운 집중력과 실천력, 단순함과 지속력으로 다시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또한 이런 생각도 했다. 왜 항상 꾸준히 우리 역사에서는 변방에서, 민중 속에서, 단순함과 순수, 무구의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탄생되는지에 대한 상상이다. 갈릴리의 예수가 그랬고, 전태일이 그랬으며, 오늘날은 바로 안산에서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상상이다.

그 등장의 장면에 반대쪽에 서 있는 얼굴들, 대통령을 비롯해서 수많은 이름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관료들과 경찰들, 국회의원, 목사, 교수, 생각 없는 대중, 끝없는 욕망과 욕심으로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자와 기득권의 사람들, 이 사람들을 향해서 지금까지 이름 없이 변방에서 몸으로 살아왔던 민중의 소리가 다음과 같이 외친다. 그것은 세월호의 진실을 향한 외침이고, 바로 세상을 구하는 소리이며, 그 소리는 십자가 몸의 고통을 통해서, 깊은 바닷속에서 울려나오는 부활을 향한 절실한  목소리이다:

“이 세월호 문제는 세월호가 아니라 우리 삶입니다. 우리 삶. 우리 안전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제발 생각 좀, 그 하기 싫은 생각 조금만 해달라고, 이 말을 하고 싶어요.”36)

<각주 설명>

21) “2016.3.24 세월호 광장신학 대담 중, 박은희 전도사”,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한 한국교회의 반성과 전망>, 2016.3.31, 광화문 세월호광장, 작성자: 고영근 목민연구소, 광장신학 기획실, 2쪽. 
22) “창현어머니 인터뷰 중에서”, 같은 글. 
23) 이은선, 「세월호, 고통 속의 빛-영생에 대하여」, NCCK 세월호참사대책위원회, 『남겨진 자들의 신학-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그 이후』, 동연, 2015, 354쪽 이하.
24) 이성복 시론, 『불화하는 말들』, 문학과지성사, 2015, 20쪽.
25) 이은선, 「세월호, 고통 속의 빛-영생에 대하여」, 355쪽.
26) 노마 히데키, 『한글의 탄생』, 김진아 외 옮김, 돌베개, 2011, 265쪽.
27)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28) 팟방 416의 목소리 4화-“고마워 다음 주에 보자”, 2학년4반 강승묵 군의 어머니 은인숙 님. 
29) 노마 히데키, 같은 책, 343쪽에서 재인용.
30) 이은선,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종교/여성/정치의 한몸짜기』,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1, 332쪽.
31) 최윤아, 2016.3.21 오후 12:18 facebook 게시물.
32)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 창비, 2010, 189쪽 이하.
33)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A Harvest Book, One -volume Edition, p.92ff. 
34) 한나 아렌트, 『과거와 미래사이』, 353쪽.
35)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고독이라는 이름의 고문”, <한겨레신문> 2016.3.9.
36) 팟방 416의 목소리 8화-“내가 미친 건가요?” 민간 잠수사 김관홍 님.

 

<간추린 참고문헌>


팟방 <416의 목소리>
<4.16세월호참사의 교훈과 앞으로 가야할 길>, 2016.03.17(목), 〔4.16세월호참사 2주기 전문가 토론회〕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한 한국교회의 반성과 전망>, 2016.3.31, 광화문 세월호광장, 작성자: 고영근 목민연구소, 광장신학 기획실. 
<세월호 가족들, 신앙고백에 눈물 흘린 목회자들(뉴스앤조이)>, 이은혜기자, 2016.03.08.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 자료집, 2016.03.28-03.29, 서울특별시청>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 창비, 2010.
노마 히데키, 『한글의 탄생』, 김진아 외 옮김, 돌베개, 2011.
세월호 기록팀 진실의 힘,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2016.
이은선/이정배, 『묻는다, 이것이 공동체인가』, 동연, 2015.
이은선, 「세월호, 고통 속의 빛-영생에 대하여」, NCCK 세월호참사대책위원회, 『남겨진 자들의 신학-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그 이후』, 동연, 2015.
이은선,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종교/여성/정치의 한몸짜기』,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1.
이성복 시론, 『불화하는 말들』, 문학과지성사, 2015.
이충진, 『가만히 있는 자들의 비극-세월호에 비친 한국 사회』, 컵앤컵, 2016.
조효제, 『인권의 지평』, 후마니타스, 2016.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고독이라는 이름의 고문”, <한겨레신문> 2016.3.9.
한나 아렌트, 「진리와 정치」, 『과거와 미래사이』, 서유경 옮김, 푸른 숲, 2005.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A Harvest Book, One -volume Edition.

이은선 (세종대교수, 생평마당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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