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 10:22-30
낯선 목소리
임영섭 목사

1. 정호승, <별들의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진다
골목길에서 나를 부르던 당신의 목소리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자꾸 나를 부른다
얼른 뒤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길을 갈 때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나를 부르나 싶어
한참 올려다봐도
아니다
밝은 대낮에 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다
구름 몇 점 웃고 있는
푸른 하늘에 가슴을 숨기고 나를 부르는
별들의 목소리다
징검다리 곁에서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다가
그만 고무신을 떠내려 보낸
개울물 소리 같은
별들의 목소리다

2. 목자와 양

오늘 본문에는 목자와 양에 관한 말씀이 등장한다. 22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봉헌절에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유대교의 전통과 권위를 상징하는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이 메시아인지 확실하게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때 예수께서는 목자와 양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목자되신 예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고, 목자와 양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양들은 그 목자를 따른다고 말씀하신다. 마지막에는 결국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도 그렇게 목자와 양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하시면서 대화를 마치신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나 부활을 누구나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것은 일종의 원칙과 조건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목자 되신 예수를 믿고 그의 양이 되어 따를 수 있지만 실제로 예수를 목자로 믿고 따랐던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구나 양이 될 수 있었지만 모두가 양이 되지는 않았고,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었지만 모두가 영생
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의 현실 속에는 거짓 목자도 있고 거짓 양도 있으며, 양으로서 목자를 따르는 것도 어렵지만 선한 목자를 찾고 스스로 선한 양이 되는 것도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한다(요 10:1-18).

게다가 우리는 부활을 무조건 좋은 일로만 생각한다. 부활은 나쁜 것, 부활은 괴로운 것,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부활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르는 양들에게만 좋은 일이다. 예수를 목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 선한 목자가 아니라 악한 목자를 따르는 자들, 스스로 예수의 양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활은 심판을 위한 관문이다. 다시 말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 목자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활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3. 목자의 목소리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안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과 얼마나 친근한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부르는 소리는 잘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누구냐고 물어보면서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주는 것처럼, 목소리는 그 존재의 정체성, 그리고 그와의 관계를 가리킨다.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예수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 때문에 그리로 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따른다는 것은, 그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본문 앞에서, 예수께서는 목자와 양에 관한 말씀 하나를 더 들려 주신다.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가며,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따른다고 말씀하면서, 양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서 낯선사람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만약 따른다면 그 양을 기다리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경고하신다(요 10:3-4,7-18).

4. 낯선 목소리
필자는 며칠 전 독일 베를린돔교회의 부활절 셋째 주일 예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엔 대림과 성탄의 촛불처럼, 부활의 촛불을 점화하여 교회 곳곳을 새로이 밝히고 세례자에게 촛불을 나누어주는 예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예배에 참석한 우리는 그 촛불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등불을 밝히며 아기예수를 기다렸고, 예수는 빛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으나 우리는 예수가 비추던 빛을 십자가 위에서 꺼버렸고,
하나님께서는 그 빛을 다시 살리신 것이다.

그날 예배에서 공교롭게도 독일 목사가 설교한 본문이 바로 오늘 우리가 나누고 있는 요한복음서 말씀이었다.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따른다는 것, 그날 설교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지금 유럽의 현실이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 유럽은 얼마 전 일어났던 브뤼셀 공항 테러로 홍역을 앓고 있다. 작년에 있었던 파리 테러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무고한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또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던 파리 파타클랑 극장은 아직 잠겨 있고 르플뤼크 광장의 꽃과 촛불들도 아직 남이 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각종 뉴스들마다 테러 관련 소식들이 이어지면서 공항이나 주요 시설들마다 검문이 강화되고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입장하려면 외투와 가방을 맡기고 오랜 시간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

부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부활의 기쁜 함성과 부활하신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는 폭탄 소리,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음을 듣고 있다.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십자가를 향해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거짓 목자의 목소리, 우리를 세상의 잘못된 가치를 향해 가도록 유인하는 호객꾼들의 소리가 예수의 목소리를 가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요한복음서는 이 모든 소리들, 선한 목자 되신 예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소음들을 낯선 목소리라고 말씀한다.

부활의 기쁜 소식, 목자 되신 예수를 따르며 누리는 영원한 생명은, 목자의 음성을 바르게 듣고 따르는 이들에게만 허락된다. 신앙의 선조들이라고 매일 시간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세상의 소음들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낯선 소리들에 매몰될 때쯤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 데 힘을 다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거친 광야길을 갔다. 야곱도 사닥다리가 놓였던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목소리를 되새겼고, 그것은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다른 신앙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부활절 넷째 주일, 온갖 소음과 신음, 고함과 파열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낯선 소리들 너머 들리는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을 찾고 듣고 따르는 양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임영섭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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