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9-17
우리들의 목자 되시는 어린양
이정우 목사(목회와신학연구소 정책연구실장)

요한계시록은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책이다. 요한계시록이 왜 정경 안에 들어와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어 왔다. 다른 한편 요한계시록은 많은 이단종파들의 포교활동에 사용되어 왔다. 요한계시록의 난해한 본문들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세상의 종말과 심판에 대해 혹세무민하는 주장들이 지금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박해를 견뎌내며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 낸 초대교회 교인들의 숭고한 신앙 승리의 기록이다. 박해 상황에서 기록된 글로서 신앙의 진리를 상징적 언어로 기록한 것이지, 문자 뒤에 어떤 신비로운 영적 진리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며 읽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가장 흔한 예는 인침을 받은 무리, 즉 구원을 받은 무리 144,000 명에 대한 오해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로 상징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큰 무리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지 (12x1,000x12=144,000), 구원받은 사람의 수가 문자 그대로144,000 명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신약개론을 배울 때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 땅에 태어나 고통가운데 살다간 무수한 사람들 그들의 깊은 한숨과 눈물과 아픔을 생각 할 때, 단지 14만 4천명만 구원받는 것이라면 그 구원의 수에 들어가려고 안달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수에 들지 못한 무수한 상처받은 생명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훌륭한 목사의 자세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씀이었다.

일견 불경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14만 4천 이라는 숫자에 매달려 마치 거기에 어떤 신비로운 뜻이 있는 것처럼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흔히 세대주의적 종말론자들이 계시록의 본문을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해 왔다고 여겨지는데, 비단 그들 뿐 아니라 많은 신앙인들이 요한 계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종말에 대한 여러 왜곡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을 볼 때, 요한 계시록 전체, 아니 성서 전체가 말하는 종말신앙에 대한 바른 확립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로마와 유대인들의 전쟁의 상처를 피하여 소아시아 지방으로 도망 온 유대인으로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을 것이다. 요즈음 유럽 사회를 달구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가 ‘난민’인데, 바로 요한이 그러한 처지였을 것이다. 더욱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박해 상황은 어딜 가나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본문은 집필 되었고, 역경과 고난 가운데 형제자매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의 희망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찬송을 부른다. 이 모습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킬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찬송하는 모습을 연상 시킨다 (레위기 23:33-).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도 떠오른다. 요한은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며 신앙을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해방자이심을 담대히 선포하고 있다. 제국의 한 복판에서 복음이 울려퍼진다! 흰 옷을 입고 어린 양 앞에 모인 무리들은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된 사람들이다. “너희들의 죄가 주홍 빛 같을지라도 흰 눈같이 될 것이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떠오른다(이사야 1.16-18). 이 무리들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은 그들의 목자가 되신다. “장막을 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처소를 마련하시는 하나님이시다(에스겔 37:27).

하나님께서는 이 무리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라”고 말한다(이사야 25:8). 어린양께서 이 무리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부활절을 맞이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고단한 삶, 눈물 마를 날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생명샘으로 인도하시며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리라는 희망의 말씀은 아직 우리에게는 약속의 말씀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우리들의 처지를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며 그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기원하고 찬양하는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압제와 멸시 가운데 살아야 했다. 그 고통스런 삶의 조건 속에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가져 오시는 구원을 찬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자세여야 한다. 부활절 찬송을 부르는 우리들은 아무런 고통과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넘어지고 깨진다. 그러나 우리들의 상처와 고통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런 꽉 막힌 어둡고 답답한 현실이 아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 앞 어린양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부활의 계절에 우리가 나누는 희망이고, 상처 많은 세상에 선사할 선물이다.

이정우 목사(목회와신학연구소 정책연구실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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