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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은 환경 탓이 아니다<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작가 | 승인 2016.04.25 10:30

인쇄는 또 근대 사회를 특징짓는 개인 프라이버시 감각을 발달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인자였다. 인쇄는 필사문화에서 보통 보는 것보다 작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책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본다면 조용한 한쪽 구석에서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필사문화와 초기의 인쇄문화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 한 사람의 인간이 집단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서 들려준다고 하는 사회적인 활동이었다. 스타이너가 말한 바와 같이 사적인 독서에는 개인이 혼자 조용히 처박혀 있을 만한 넓이의 집이 필요하다.(오늘날 빈곤 지역 어린이들의 교사는 어린이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주된 이유가 흔히 수많은 가족들이 비좁게 살아서 소년들 또는 소녀들이 능률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장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통렬하게 느낀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이 말을 끌어들이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여여(如如)’가 실제로 우리 삶에 있는지 심히 의구심이 드는 아침이다. 여여한 삶에 도달하려면 시공간이 멈춘 진공(眞空) 상태에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해 가는데, 진공 상태는 어느 찰나에 있다는 말인가?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는 게 나을 것 같다. 욕먹기 딱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의 심사가 뒤틀려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 컴퓨터로 아침마다 3분 글쓰기를 올리는데, 아침에 생각해보니 아들 컴퓨터는 수리점에 가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 컴퓨터를 켜보니 마주하기가 싫다. 오래된 버전인지 페이스북 접속이 느려터진다. 그렇다고 이 정도의 원고를 휴대폰으로 할 수도 없고. 10년도 안 된 사이에 바뀐 기계의 발전 속도 때문에 내 마음이 아침에 수천 번 왔다갔다한다. 기가 막힌다. 필사문화, 인쇄문화, 구술문화, 문자문화. 이제 이런 구분도 낡은 패러다임이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버전1.0, 2.0, 3.0…. 이런 시대가 된 지 오래인데 나는 여태 그것을 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내 분신처럼 아꼈던 나의 컴퓨터가 오늘 이처럼 내 마음에 균열을 내다니. 역시 다 내 탓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여여한 상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요즘과는 다른 시공간 느낌을 갖고 있었을 테니까. 컴퓨터 환경이 바뀌었다고 횡설수설하는 아침이다. 한마디로 내가 참 한심스럽다.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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