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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까페의 백만불 짜리 숄<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6.04.25 13:50
이옥희 선교사

북한산 한 자락에 누워있는 수유리 한신대 신대원에 가면 행복까페가 있고 길고 널찍한 홀 우측벽면 한 구석에 비전아시아 전시 코너가 있다. 비전아시아 코너는 주로 타머릭 가루나 헤나, 실크 스카프, 립밤 등 인도의 특산품과 한국 후원자님들에게 기증받은 것이나 위탁받은 것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 판매 이익금을 달릿 아동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이익금을 “샨띠홈”에 사는 에이즈고아, 하리 뿌리야의 양재클래스 장학금으로 헌금했다. 

4년 전 봄 수유리를 방문해서 모처럼 산뜻한 커피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행복커피의 주인장인 김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평범한 바리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커피와 커피샵을 복음자리, 사랑이 흐르는 자리로 만들고 싶은 커피 아티스트였고 현대식 사랑방의 방지기였다. 각종 시민운동 그룹에게 커피샵 안의 작은 공간을 주어서 그들의 운동을 자연스럽게 일반에게 알리며 크고 작은 나눔과 섬김의 기회를 사람들에게 선물하고자 했다. 그는 평범한 사교의 장인 커피샵을 새로운 차원의 가치와 문화를 창출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자기 색깔이 아닌 타인의 색깔, 사랑의 나눔이 필요한 현장의 사진과 그림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그 분의 소박하고 따스한 마음에 감동된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달릿아동 코너를 부탁하였고 그의 호의로 우리는 행복까페 안에 행운의 전시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 공간을 연 것이 아니어서 전시할 물건들이 없었다. 인도 형제들에게 선물로 받았거나 한국 교우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가져다 쌓아 두었던 것들을 다 끄집어내어서 전시를 했다. 우리의 전시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삼천 원, 오천 원이거나 일만 원이면 딱 좋았다. 그러나 전시품이 부족하여서 미조람주의 수도인 아이졸에서 십만원에 구입한 미조람 여성의 전통 치마를 전시하기로 했다. 

행복커피 김현일 대표 (사진출처 : 한겨레 휴심정)

자세한 설명 없이 수공품 10만원이라고 써놓고 한 쪽 구석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두었다.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가격만 비싼 후지고 수상한 수공품으로 보이겠지만 나의 내심은 그 치마를 팔고 싶지 않았다. 전시를 해놓고 그 사실도 잊어버리고 지내는데 어느 선배님께서 “천 쪼가리 한 개를 10만원이라고 써 부친 배짱이 좋다.”며 누구나 다 그것을 보고 미심쩍어 할 것이라는 충고를 해주셨다. 그 물건을 전시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어서 목사님께, 

“그 물건은 팔려고 내 놓은 것이 아니고 전시 공간에 물건이 너무 없어서 그냥 폼으로 내놓은 것이고요. 진짜로 그 천 쪼가리의 가격이 10만원이어서 10만원이라고 적은 것 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천을 구입한 경위를 설명해드리자 그 분이 감동적이라고 하면서 대뜸 사연을 적어서 벽에 붙여 놓으라고 하셨다. 

그 뒤로도 같은 질문을 두어 차례 받았고 내 이야기를 들은 질문자들로부터 ‘감동적인 스토리’라는 말을 들었다. 

마니푸르주에 있는 실맛신학교에 다녀오면서 항상 주변의 다른 주들을 돌아보려고 했지만 시간과 경비의 문제로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미국경제 불황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에 미얀마와 미조람 국경 사이에서 발생한 “모타 페미닌”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던 때였다. 나는 당시 구루꿀신학교에서 알게 된 미얀마 청년의 간청으로 미얀마 국경 가까이에 있는 미조람주에서 쌀을 구입하여 미얀마로 들여보냈다. 그 때 미조람에 다녀온 우리 청년들이 미조람주 수도에 토요일 오후에 도착했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았고 시장이 철시되어 꼼짝도 못했으며 일요일에는 거리가 텅 비었고 사람들이 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들에게 미조람주 주민들 100%가 크리스챤이라는 말을 들으며 언젠가는 그곳을 방문하리라 다짐한 끝에 2012년 용기를 내서 성호교회 청년 효현님과 함께 용기를 내서 출발했다. 

아이졸 공항으로 마중 나온 독립교단의 교우이신 룽굴님께 거두절미하고 “당신이 알고 있는  부잣집과 가난한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고 특별 부탁을 드렸다. 우리는 그 분의 안내를 따라 우선 미조람 이민국에 가서 입국신고를 하며 허가증을 기다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거침없이 자기를 부자라고 소개했다. 자기는 인도 내 소수민족인 고산족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국가 공무원이 되어서 중앙 정부의 노동부 국장의 지위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미조람주의 노동부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은퇴하면 교회를 섬기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 계획이고 자기는 경제적으로는 조금 여유 있게 사는 정도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부자라고 했다. 자기네 온 가족이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사는 것이 기쁘고 특히 둘째 딸이 뉴델리대학교를 나오고 외국에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고 왔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 자원을 해서 훈련을 받고 중국에 가서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것이 가장 즐겁고 복된 일이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을 받기 때문에 “부자”라는 그의 말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쓰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면서도 그러므로 내가 “부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13억 인구 중에 이십여 만 명의 교우도 되지 않는 인도독립교단이 참으로 위대하게 보였다. 

한신대 신대원 행복커피 내부 모습 (사진출처 : 이미지속에)
한신대 신대원 행복커피 내부 모습 (사진출처 : 이미지속에)

마루 거실 한 쪽에 여자 분이 힘없이 누워계셨고 한 분은 베틀에서 천을 걷어내고 있었다. 작년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주인아주머니는 2남 4녀를 위해 밤낮으로 베를 짜다가 두 달 전에 과로로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시다가 이제 겨우 회복되었으며, 천을 걷어내고 있는 분은 이웃 아주머니인데 병문안을 올 때마다 주인아주머니가 짜다가 중단한 베를 조금씩 짜서 오늘 두 개를 동시에 완성해서 정리를 해주는 것이라고 가이드를 해주시는 분이 설명을 해주었다. 입국허가증을 받았을 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서 룽굴님은 퇴근 전에 사무실에 가야한다며 돌아 가셨고 대신에 어느 여자 분이 오셔서 우리를 산비탈 급경사면에 지어진 작은 집으로 인도했다. 골짜기를 따라 걸어가는데 대소변의 악취가 코를 찔러서 골치가 아프고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 부근에서 막다른 길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막상 집을 방문하였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멈칫거리고 있는데 마침 주인아주머니의 맏딸이 20세로 복음성가 가수라고 하여서 우리는 그의 찬송을 청해들었다. 그리고 함께 박수를 치며 허밍으로 찬송을 불렀다. 그들이 먼저 미조람어로 찬송을 부르고 나면 뒤를 이어서 나와 효현 선생님이 한국 찬송가를 신나게 불렀다. 교대로 찬송하며 우리 마음이 편안해졌고 형제자매 된 친밀감을 맛보게 되었다. 병색이 완연했던 아주머니도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이웃 아주머니도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찬송을 실컷 부른 뒤에 우리는 제목을 내놓고 함께 눈물 콧물을 쏟으며 통성 기도를 하였고 서로 축복하며 얼싸안았다. 

그 분들이 베틀에서 갓 떼어낸 숄을 시장에 내다팔아야 한다며 보자기에 쌌다. 나는 그 분들에게 숄을 소매로 최고 비싸게 팔 경우 얼마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옥색 숄은 10만원, 청색 숄은 8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옥색 숄을 효현 선생님은 청색 숄을 사가지고 나오면서 그 두 분을 몇 차례 포옹하며 축복해 주었다. 

다음 날 아이졸에 있는 독립교단 교회를 방문했다.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자기 교회 여신도회원이 두 달 만에 아침 기도회에 나와서 한 간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제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천사를 보내주었습니다. 낯선 두 여자 분이 들어와서 찬송을 부르는데 제 가슴이 뜨거워 졌고 답답함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나에게 하늘의 평화가 임했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염려도 양식에 대한 걱정도 다 사라졌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천사들이 떠나기 전에 베틀에서 막 걷어낸 숄 두 개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분들이 주고 간 금액은 제가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베를 짜야만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부의 처지를 아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회복시켜 주셨고 필요한 물질도 공급해 주셨습니다.”

며칠 전에 아이졸 여행에 동행했던 효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그 숄은 천 쪼가리가 아니고 아이졸의 한 과부를 사랑하시는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고 증거물이다. 사람들 눈에 촌스러운 옥색 숄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그 숄은 나를 사랑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눈에 보이는 음성이다.  

“선생님, 아직도 그 숄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럼요. 우리 자식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거예요.” 
그 날을 회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천사로 쓰임을 받았던 우리는 마냥 행복하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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