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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자는 고문인, 유괴인, 억압자<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작가 | 승인 2016.04.26 10:25

인쇄는 말의 사적인 소유라는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냈다. 일차적인 구술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시에 대한 소유권의 감각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은 드물며, 보통은 누구나가 꺼내서 말하는 전승이나 정형구나 이야기의 주제가 공유되기 때문에, 그러한 감각은 약해지고 만다. 그러나 쓰기와 더불어 표절에 대한 분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대의 라틴 시인 마르티알(Martial)은 고문인, 유괴인, 억압자를 의미하는 ‘plagiarius'라는 단어를 타인의 저작을 자기의 저작으로 해버리는 사람을 의미하려고 사용했다. 그러나 표절자(plagiarist)라든가 표절(plagiarism)만을 전적으로 의미하는 특별한 라틴어가 없었던 탓도 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오늘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독서토론 모임이 오전에 있는데, 뒷부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덮고는 잠시 쉴까 하다가 습관처럼 ‘3분 글쓰기 교실’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위의 글을 옮겨 적었다. 적다 보니 문자문화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는 멋져 보였다. 가진 것 없는 집안의 자식에게 “자본주의 체제의 모든 악의 근원은 사적인 소유에 있다”는 말은 희망의 언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는데, 위의 글에서 오랜만에 ‘사적인 소유’라는 말을 보니 뜨끔거린다. 나는 아직도 나의 책으로 사적인 소유를 늘리고픈 생존의 욕구를 높은 곳에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좌절이 마음 깊은 곳에서 심각하지만,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살아낸다. 살라고 외치는 자들이 쓴 책이 용기를 준다. 그 책을 보며 나는 또 사적인 소유의 확대를 꿈꾼다. 그 경계에서 도덕성을 잃으면 표절이 나온다. 문자문화가 준 폐해이다. 칼 세이건은 “못된 습성과 좋은 천성 중에서 어느 쪽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이 인식의 힘은 문자가 주었다고 칼 세이건은 말한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안개 같은 아침이지만, 하늘은 파랗기만 하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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