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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明滅)하는 부활과 공자의 중도(中道)<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19> - 『논어18권』미자편
이은선(세종대) | 승인 2016.04.26 10:53

<명구>

「微子篇 8」: 逸民 伯夷․叔齊․虞仲․夷逸․朱張․柳下惠․少連.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謂柳下惠․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行中慮 其斯而已矣.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미자편 8」: 일민 백이․숙제․우중․이일․주장․유하혜․소련. 자왈 불항기지 불욕기신 백이․숙제여. 위유하혜․소련 강지욕신의 언중륜행중려. 기사이이의. 위우중․이일 은거방언 신중청 폐중권. 아즉이어시 무가무불가.

<해석> 

초야에 묻혀 사는 인물로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유하혜, 소련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백이와 숙제일 것이다. 유하혜와 소련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했지만 그 말하는 것이 도리에 맞았고 행동이 사리에 맞았으니 그들은 그렇게 살아갔을 따름이다. 우중과 이일은 숨어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았으나 몸은 깨끗이 유지했고 벼슬에서 물러나 사는 것이 권도(勸導, 時宜)에 맞았다. 나는 그들과 달라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없다.”

<성찰> 

20대 총선이 끝났다. 야권이 분열되어서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국민들의 선택으로 거대 여당의 출현을 막았고, 뜻밖에도 더민주가 제1당이 되었으며, 명실상부 국민의 당이 제3당으로 등극했다. 선거과정 속에 많은 명멸이 있었다. 어느 사람은 공천 자체를 받지 못하여 선거에 나오지 못했고, 어느 누구는 그 와중에서 무소속으로 나오거나 당적을 바꾸어 뜻을 이룬 사람도 있다. 어느 누군가는 많은 쓰라림에도 불구하고 대신으로 선택된 사람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또한 누구는 아예 처음부터 양보한 사람도 있다. 누구는 모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생각했지만 나와서 다시 당선된 사람도 있고, 억지를 써서 나왔지만 떨어진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정말 안타깝게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이렇게 오늘 한국 정치와 사회는 요동을 치고 있다. 더군다나 2년전 세월호와 같은 비인간적, 반인륜적 참사를 겪고서 특히 젊은 세대의 동요가 큰데 이번 선거에서 ‘헬조선’을 외치는 청장년 그룹들이 크게 움직였다. 오늘 우리가 읽는 <논어>의 ‘미자편’도 동아시아 춘추전국 시대의 요동치는 정국의 전환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라가 그렇게 요동을 치면 그 혼란을 피해 은자(隱者)가 많아지고, 공자 자신도 자신의 인간적 길(仁)의 제시가 계속 응답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모국 노(魯)나라를 떠난다. ‘미자편’은 이 주유의 길에서 만난 은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그들이 당시 공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공자 자신은 그 와중에서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면서 자신의 길을 갔는지 등을 보여준다. 

이편의 이름을 제공한 미자(微子)는 殷(상)나라의 사사(士師)로서 상의 폭군 주왕(紂王)을 제거 하는데 협조하였다. 이번 표제문으로 삼은 8절은 공자가 역사에서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각기 자신 시대의 어려움을 당하여 어떻게 그것을 초탈하며 살아냈는가의 세 가지 방식을 말해준다. 먼저 우리가 많이 들어온 상나라 말기의 백이와 숙제에 대해서 그들을 자신이 섬기던 나라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충성을 지킨 의인으로 “뜻을 굽히지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로 설명한다.

두 번째로 춘추시대 노나라 초기의 유하혜와 같은 사람은 비록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불의한 군주와 함께 함으로써 뜻은 굽히고 몸은 욕되게 했더라도 현실에 참여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으면서 기회가 되는 대로 바른 말과 행실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 사람을 말한다. 세번째그룹은 혼탁한 현실을 떠나서 은자가 되어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 거침없는 말로 계속 현실비판을 행한 그룹인데, 공자는 그것도 그들 시대에 "바른 선택(권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자신은 이들 모두와 달라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없는” 입장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대답의 의미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공자는 당시의 노자나 여러 은자들처럼 세상과 사람들을 피해서 칩거하는 일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이 미자편에도 당시의 사람들이 공자와 그 추종자들, 즉 유자(儒者)의 그룹을 어떤 사람들로 이해하는가가 잘 나타난다. 5절의이야기에 따르면, 바른 정치를 찾아 주유하는 가운데 만난 어떤 은자는 공자 그룹을 덕이 쇠한 시대에도 "여전히 정치를좆는 위태로운 그룹"으로 지칭한다. 또한 다른 이야기에서는 공자의 무리를 '도도하게 흐르고 변하는 천하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그 제자 자로에게 그 스승처럼 (바른 사람을 찾아서) "사람을 피하는 자(辟人之士)"를 따르기보다는 "세상 자체를 피하는 선비(辟世之士)"를 따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한다.

이 말에 대해서 공자는 "한동안 겸연쩍어 하시다가" “내가 새, 짐승과더불어 무리지어 살 수 없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의 무리와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라고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더불어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공자의 세상을 향한 깊은 우환의식이 잘 드러난다.

이런 뜻을 품고서 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군주를 찾아 주유하는 공자는 많은 오해도 받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지경까지 빠지기도 한다. 또한 그를 써줄 것 같이 하다가 내침을 당하는 경험도 여러번 한다. 제나라의 군주가 공자를 받아들일 것 같이 하다가 나중에는 그가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다고 은밀히 거절의 뜻을 보이자 공자는 지체없이 그곳을 떠난다. 또한 주색에 빠지는 군주를 보고는 미련없이 그를 떠난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떤 은자는 공자를 비판하기를 “자기 몸을 움직여서 생계도 벌지 못하면서 무슨 선생 역할을하려고 하는가?”라고 지적하는데, 오늘우리 시대에도 많이 듣는, 뜻을 찾는 일, 인간다움을 찾고자 하는 일, 참된 대학의 모습을 이루려고 하는 일 등에 대한 '실용주의'와 '공리주의', '행동주의'로부터의 거센 비판와 유사하다.

이러한 가운데서 공자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없다'는 대답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이 말이야말로 그가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과 고난, 좌절을 겪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하는 가운데 얻은 진정한 자유인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자는 오랜 동안의 지난한 삶의 여정을 통해서 '뜻(道)'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 꼭 자신에게만 달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통찰했다. 그의 '천명(天命)'에 대한 깨달음이 그것이라고 하겠는데, 그러나 동시에 그 천명은 이곳에서의 우리와 자신과 뜻을 품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수행되고, 찾아지며, 또한 그래야 되는 일임을 안 것이다. 

나는 공자의 이 언어를 '명멸하는 부활'이라는 기독교적 언어로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 교회의 고정화된 부활 이해처럼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어느 한번의 성취와 실행으로 완성되고 결정된 의미의 부활과 뜻 이해가 아니라 계속해서 찾아지고, 우리 각자의 생애에서 각각이 고유하게 이루고 성취해내야 하는 부활과 구원 이해, 매 순간과 현재의 기회와 선택 앞에서 우리가 새롭게 용기있는 행위와 믿음으로 실현해내는 구원과 뜻, 이것을 나는 '명멸하는 부활'로 이해하고,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중도(中道)의 역(易)의 길도 그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자는 자신의 나이 60세에 '이순(耳順)'을 말했다.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쉽게 화내거나 절망하거나 또는 과도하게 희망에 들뜨지도 않고, 그의 신실한 제자 자로(子路, B.C.542-480)가 잘 지적한 대로, 사람의 삶이 지속되는 한 그 공동 삶이 바르게(의롭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은 놓아버릴 수 없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 일을 맡고 관여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하는 의로운 일이니, 의(義)와 도가 쉽게 행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갈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 박근혜 정부 시대에도 문재인이나 김종인 같은 사람도 있고, 정청래와 같은 사람도 있으며, 김무성이나 유승민, 김부겸이나 은수미, 유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또한 현실 정치에서 아주 떠나서 은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오늘 이들에게 공자의 중도와 명멸하는 부활의 의미가 주는 지혜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만 달려있다는 아집과 자만을 버리고, 과거에 이미 이룬 것에 집착하지 말고,  또한 한꺼번에 모두 이루려고 하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러다가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계속하라는 것, 자신에게의 집착을 버릴 때 쉽게 사람들을 양분하고 편 가르고 정죄하는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혜는 단지 정치의 세계에만 적용되지 않고, 오늘 우리 교회와 대학, 우리 자신의 일상과 생애의 삶에도 모두 해당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은선(세종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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