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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교주의(Neo-Confucianism)와 대동(大同)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상상들 (6)
이찬수 | 승인 2016.04.26 11:00

오늘날 아시아 각 지역은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공유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속해 있으면서 종교, 사상, 문화적으로 많은 내용을 공유해왔다. 이에 대한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전문적 연구들을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때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동아시아의 공동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려는 목적의 강좌를 개설했다. 종교, 사상,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비슷한 세계관과 공동의 가치를 의식하면서 ‘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의미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강좌다. 강좌명은 <아시아공동체론>(책임교수: 이찬수)이다. 

이 강좌에서는 강사진의 절반 이상을 중국, 일본 등 해외 학자로 구성하고 있다. 에큐메니안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이 강좌의 요지를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함으로써 동아시아적 공동 가치를 탐색하는 다양한 안목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아시아 공동체론> 여섯 번째 강의에서는 신현승 교수(한국, 상지대 교양학부, 동양철학)가 참여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구축에 관해 신유교주의(Neo-Confucianism)와 대동(大同)에 대해 모색했다. 다음은 신현승 교수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유교는 내세를 얘기하지 않는다. 천국행을 보장하지 않는다. 현세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하라고 가르친다. 특히 양명학이 그렇다. 양명학은 만물일체지인의 공동체로서 ‘지금 이 순간’의 미학을 설파한다. 다들 알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의 시대였다. 양명학의 경우는 성리학과 반대지만, 성리학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학문이기도 했다. 내가 조선시대 태어났다면 성리학자들은 나를 양명학자라는 이유로 ‘이단’이라 불렀을 것이다. 광자(狂子)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칠 광자가 처음 유행했던 것도 17세기부터다. 바로 성리학자가 양명학자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유교(Confucianism) 이후의 신유교주의(Neo-Confucianism)

유교와 신유교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신유교주의는 서기 1000년을 기준으로 등장한다. 서기 1000년의 기준이 동아시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구분이다. 서기 1000년부터 ‘성리학’과 ‘양명학’ 즉, 신유교가 태동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유교도 하나의 학파일 뿐이었다. 제자들이 공자님에게 누가 나를 괴롭힌다, 누가 싫다, 라고 이르면 공자님은 과연 성스럽게 대답하셨을까? 전혀 아니다. 공자님을 성스럽게 만든 사람은 후대의 학자들이지, 막상 공자님은 “누구는 게으르고 별로다.”, “누구는 말수가 적은 것이 마음에 들더라.”라고 편애하신다. 대인은 대인끼리 소인은 소인끼리라며 ‘끼리끼리’라는 말을 하신다. 이 때에 주자가 등장한다.

흙수저였던 주자의 등장

이후 위진남북조 혼란의 시대가 펼쳐지며 백성들은 불안해졌다. 사람이란 시대가 불안해지면 마음의 평온을 얻고 싶기 마련이다. 이 당시에는 불교와 도교가 인기를 끌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이런 까닭에 백성들의 인기를 사고, 도교 역시 혼란한 시대에 인기를 사게 된다. 이렇게 불교와 도교에 의해 유교는 탄압받게 된다. 이후에 당나라가 집권하게 된다. 지금도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당나라의 수도가 장안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뉴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유교가 다시 패권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바로 앞서 말했던 서기 1000년 ‘신유교주의’로서 말이다. 이 때 11세기에 주자가 등장하면서 송나라, 지금의 항저우에서는 양명학이 태동한다. 주자는 굉장히 가난한 ‘흙수저’였다. 또 촌사람이다 보니 출세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과거급제를 턱걸이로 합격하며 중앙정부 말단직으로 도시에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40일 만에 잘리고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책을 쓰게 된다. 이는 주자의 언어습관이 굉장히 직설적이고, 아부를 하나도 못했기 때문이다. “넌 그거 아니야”처럼 소위 직구를 날렸던 것이다. 

보통 오늘날 대학 강의에서도 사서삼경을 읽고 해석할 때 전부 주자의 것을 따른다. 몽골족이 장악한 원나라에서도 주자의 학문이 발탁된다. 사실 주자가 살아있을 적에는 주자의 학문은 굉장히 급진적이어서 금서가 되었고 주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칭기스칸의 후예들이 대륙사람들을 통치하기에 선택한 이데올로기, 글이 바로 주자의 학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제도 부활하기도 했다. 

뜨거운 가슴을 키우는 양명학

송나라 왕양명이 만든 양명학에서는 심즉리와 지행합일을 주장한다. 앎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성리학이라며 성리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왕양명은 나에게 앎이 있다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는 실천주의, 혹은 현장주의라고도 불린다. 

세상에는 왜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 주자는 후천적으로 습관에 의해 나빠졌다고 한다. 다시 선하게 되는 방법으로 나부터 반성해야한다고 한다. 여기서 유명한 ‘수신제가 평천하’가 나온다. 이를 통해야 성인이 많아진다고 했다.

한국의 지식위주의 학원문화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국의 경우, 지도자들을 뽑을 때를 보면 금수저가 없다. 대부분이 흙수저 출신이다. 그에 반해 한국은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수저들이다. 성리학의 성인관은 ‘서울대 졸업을 못 하면 군자가 아니다’라는 식이다. 격물치지, 즉 사물을 알기 위해서는 지식을 습득한 뒤에 뭘 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학원문화를 만들었다. 

그에 비해 양명학은 평등과 자연세계에 기초해 친환경주의를 주장한다. 그리고 세상에 성인들이 많아져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성인은 기존 유교에서는 도달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바로 ‘가슴이 뜨겁고 성실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양명학’이다. 실제로 이후에 가장 양명학의 심즉리를 좋아했던 집단은 바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다. 그래서 양명학을 수용한 일본에서는 쇼군에 대한 충성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다. 할복문화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 제자들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도 있으며, 그는 양명학자였다. 

대동(大同)은 같은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의 만남

대동은 화합하고 조화롭게 하되 ‘같이 하자’는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똑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배척하지 말자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는 갈등과 대립도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거기서는 모순도 있을 것이다. 단지 그런 것들을 최소화하자는 것 뿐이다. 

유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유토피아다. 인에 대해서 『논어』에서는 수없이 말한다. 무릇 인이라는 것은 자기자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서게 하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다면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려의 마음이다. 

대동도 거대학문이다. 동아시아 역사발전의 각 단계에서 유교의 영향력은 지대하였고, 유교에서 그리는 최고의 이상사회가 대동사회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오늘날 ‘대동’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의미야말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수강생들의 Q&A

김윤섭 : 교수님께서 성리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셨는데요. 한국의 경우에는 성리학의 문화나 이념이 아직까지도 잔존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아직 양명학이 잔존해 있는 지 궁금합니다.

신현승 교수 : 일본 같은 경우는 다르다. 일본에는 서양 문물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또한 일본 고유의 전통 문화가 있었으며, 그것들이 사회를 더 장악하고 있다. 어쩌면 정치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양명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 같다. 왜냐면 일본 정치인들의 가까운 조상들에는 하급 사무라이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도 하급사무라이들의 상급사무라이들에 대한 반란이었다. 하급 사무라이들은 양명학을 좋아했다. 

어떤 학생 :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교수님께서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시는데요, 저도 다른 언어를 잘 배우고 싶습니다. 교수님께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신현승 교수 : 이를 위해 당장 실천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기초 중국어 회화든 일본어 회화든 무엇이든 기초회화 책을 사라. 그리고 ‘하루에 한 장만 하겠다’라고 하면, 그 한 장만 하루에 열 번 이십 번 반복하라. 친구에게 무작정 만나서 연습하라. 혼자 소리 없이 도서관에 암기하고 문법하는 식으로 하면 언어 공부에 실패한다. 그러니 텍스트와 함께 행동으로 옮겨라. 양명학에서의 지행합일처럼 말이다. 항상 외국어로 말하는 습관을 가져라. 일본어도 마찬가지. 지금 집에서도 나는 NHK나 CCTV를 그냥 틀어두고 따라한다. 그것이 즐겁게 공부하는 방법이다. 

(정리: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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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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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섭 2016-04-26 19:43:16

    군자는 군자끼리 어울릴 수 있다고 보시는 공자님의 말씀처럼 아시아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찬성을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충분히 아시아도 대동사회로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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