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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궁금증은 가짜 궁금증?<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작가 | 승인 2016.04.28 10:27

구술성과 문자성의 상호작용은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과 원망과도 관련성을 가진다. 인류의 모든 종교적 전통은 구술문화에 뿌리박은 과거 언어(spoken word)를 대단히 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의 주요한 종교들은 성스런 텍스트(베다, 성서, 코란)의 발전에 의해서도 내면화해왔다. 그리스도교의 교의는 구술성과 문자성의 양극성이 특히 첨예화해 있다. 아마 다른 어떠한 종교적 전통보다도 (심지어 유대교와 비교해보아도) 첨예화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교의에서는 유일신의 제2위격이, 즉 인류의 죄를 대신하는 이 제2위격이 ‘신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뿐 아니라 ‘신의 말’이라고도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글을 옮기니 어질어질하다. 말과 글의 속성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도 알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궁극적인 관심’ 때문일까? 그냥 척하는 것은 아닐까? 에니어그램 첫 설문에서 나는 5번 유형, 즉 관찰형이 되었다. 관찰형은 질문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7번과 달리 관찰형의 질문은 빈 것을 견디지 못해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질문이란다. 맞는 것 같다. 진짜 궁금한 것이 아니라 채워서 생존 욕구를 이어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 나의 글쓰기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나 마호메트나 부처나 다 말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갔는데, 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글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원망스럽다. 그래도 관찰형답게 궁금증은 솟는다. 그리스도의 신은 왜 바로 경전을 내리지 않고 인간의 말로 자신의 존재를 전했을까? 당시 문맹률이 높아서였을까? 아니다. 오래전 찰톤 헤스톤 주연의 <십계>를 보면 하늘에서 번개가 쳐 십계명이 돌판에 새겨졌던 것 같고. 궁금증은 늘어만 가고,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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