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눈물(마가 10:13~16)

*이번주일은 목사수련과정에 있는 주민교회 전도사가 대예배 설교를 하여 이훈삼 목사는 설교를 쉬기에 2014년 5월 첫 주 어린이주일에 주민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올립니다.

*영상설교: https://www.youtube.com/watch?v=mMvdt_am75Q&feature=youtu.be

1. 어린아이를 사랑하신 예수님

1)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무척 바쁘고 격무에 시달리셨다. 말씀 증언, 치유, 상담, 논쟁, 기도, 고뇌 등으로 예수님은 많이 지치셨다. 십자가를 향하는 삶 자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담과 갈등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현재의 고통을 이기려면 누구나 지금보다 더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오늘을 지탱하고 의욕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힘겹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업무들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예수님의 삶은 늘 긴장과 과로로 힘겨웠다. 목회자도 편해 보이지만 그리 편하지는 않다. 서구에는 여성 목회자가 많다. 물론 양성 평등이 이루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은 힘든 반면 대우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목회 직을 남성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 목회자들이 많은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서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일들이 무척 많다. 예수님의 삶도 성경에 다 기록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2)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주님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1877년, 유리화/ 생 세브랭성당, 파리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이 사랑해주기를 바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간다. 그 때 예수님을 위하는 제자들이 그들을 가로 막는다. 제자들이 정중히 안내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는 꾸짖었다라고 표현한다. 심하게 말하면 막 성질부리고 욕하고 밀쳐버려서 예수님께 접근을 막았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당황했을 것이고, 거절당한 어린아이들은 울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3) 사랑의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에 화를 내시면서 어린아이들을 영접하신다. 그들의 바람을 귀히 여기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린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엄명하시고, 아이들을 축복해주신다. 어른들은 안도하며 환호했을 것이고, 어린아이들은 눈물을 닦고, 상처받은 마음에 다시 위로를 받고, 그들의 삶 속에서 영원히 예수님의 영접과 축복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2. 삶은 희극(Comedy)인가?

1) 세월호 침몰 사고로 사회 전체가 슬픔과 애도에 잠겨서 예능 프로그램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요즘은 가히 코미디의 전성시대다.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미디 빅 리그, 무한도전, 1박 2일, 런닝맨 등등 모두 시청자를 웃기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재밌고 신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조건이라고 한다.

2) 고대 그리스에서는 비극(Tragedy)이 발달했다.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야말로 최고의 문학 장르라고 격찬했다. 비극에서는 가벼운 언어를 쓸 수가 없고, 운명, 죽음, 이별 등 인생의 고귀한 주제를 고상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비극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왕이나 프로메테우스 등은 인간의 가혹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대형 극장에서 비극적인 연극을 상영했고, 그리스 비극은 시대의 문화 중심이었다.

실제로 비극이 인생의 깊이를 보다 잘 표현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웃음이 중요해도 웃음으로는 인생과 역사의 깊이를 표현하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

3) TV 시트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은 ‘하이킥’ 시리즈였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2006~7년).

시트콤은 장르상 웃음을 주는 코미디이다. 코미디는 언어, 인물 설정, 표현을 과장한다. 그런데 ‘하이킥’ 시리즈는 이런 일반적인 웃음 방식을 따르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계급이 사랑을 결정하며, 뛰어난 능력을 갖지 못한 이들의 소외 등 우리 현실의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그려냄으로써 막 웃다가 어느 새 눈물을 흘리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많은 시청자들은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현실 묘사에 공감을 느껴 빠져든 것 같다.

4) 인생과 역사는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직조하는 옷감과 같다.

태피스트리.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태피스트리라는 작품들이 있었다. 가로와 세로로 색깔 있는 실을 모양에 따라 짜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역사는 지나고 나면 하나의 작품이 남는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서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것!

3. 김제동의 하바드 대 강연

1) 몇 년 전 방송인 김제동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에서 사회를 보았다는 이유로 소위 좌파 방송인으로 찍혀 진행하던 방송사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온 그는 하버드 대학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게 된 것이다.

강연 도중 그는 한 유치원생과의 대화를 소개했다. 유치원 어린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제발 그런 거 그만 좀 물어보라”는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진지하게 소통하겠다는 생각 없이 던진 “너 몇 살이니” 하는 질문에 그 아이는 식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씨가 그 아이를 웃게 만든 뒤 “너 요즘 고민이 뭐니”라고 묻자 다섯 살짜리 어린애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아침마다 나한테 묻지도 않고 밥을 국에 말아줘요.”

2) 이 아이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아침밥을 국에 말아주는 것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냥 어른들이 먹을 것 주고 어른들의 방식으로 결정한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보통 어른들은 생각한다. 이것에 항의하면 어린 것이 신경질 낸다, 부모가 알아서 해주면 감사하다고 해야지 못돼먹었다, 부모가 아무려면 나쁘게 해 주겠니 등 어린아이의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은 너무나 넓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은 이보다 몇 배는 넓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좀 후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오랜만에 방문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작을 수가! 어렸을 때는 어른의 눈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어른이 볼 때 사소한 문제라 무심히 지나치는 것도 어린아이들은 상심하고 상처받는다.

4. 고야, 깨져버린 물주전자, 카프리초스(변덕)의 일부, 1799

'깨져버린 물주전자'(고야, 1799년).

스페인이 자랑하는 화가 고야!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 광기, 악습, 부패 등을 동판화 82점에 담았다(Caprichos/카프리초스/변덕). 고야는 시대의 어둠과 광기를 읽는 명작을 많이 남겼지만 나는 이 그림이 좋다.

가난한 집에서 허름한 차림새의 엄마가 아이의 궁둥이 맨살을 신발짝으로 때리는 장면이다. 아마도 화가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실제로 이 모습을 보고 그렸을 것이다. 사실적이고 개연성 높은 장면이다. 빨래 등 노동에 지친 젊지 않은 엄마 곁에서 아이가 장난을 친다. 빨랫줄에 걸린 낡은 옷이나 나이보다 훨씬 늙고 거친 여인의 모습에 인생의 고단과 가난이 짙게 배어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는 가난한 집이니 물동이 같은 살림살이가 장난감이다.

엄마는 몇 번이나 짓궂은 사내아이에게 장난치면 깨진다고 경고했을 것이다. 그걸 무시하고 놀던 아이가 결국은 물주전자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드디어 엄마가 아이를 징벌한다. 호되게 때리기 위해 이빨로 아이 옷을 물고 바지를 내려서 신발로 맨살을 세차게 내리친다. 엄마가 약이 바짝 올라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는 자지러지고…. 정말 이문세가 ‘옛사랑’에서 노래하듯이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신세대는 구세대가 간직하고 있는 관념과 문화를 깨트리려 한다. 이것이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다. 만약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딪치지 않는다면 새로운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를 부정하면서 극복하는 것이 역사의 운명이다. 이것을 서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지혜다. 괘씸하고 서운해 하기만 하면 그 관계는 파탄으로 끝난다.

사춘기란 평생 부모 품속에서 살던 아이들이 이제는 주체적인 인격으로 독립하기 위한 훈련이고 투쟁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도 상처를 받지만 아이들도 아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이 내용을 어른들만큼 직접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에 서툴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모든 다음 세대는 현 세대를 극복해야 한다. 새는 알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 성숙한 세대는 다음 세대에 의해 기꺼이 깨져야 한다. 깨고 깨지는 과정에서 모두가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만 이 아픔을 운명적으로 수용하는 곳에 성숙한 발전이 기다리고 있다.

5. 서경식의 글 “소년의 눈물” 중

동경경제대학 법학부 교수이면서 서양미술 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서경식은 자신의 책 ‘소년의 눈물’에서 나찌 치하 독일 문학가 에리히 캐스트너의 말을 인용한다.

“ 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일들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도 때로는 지극히 애처로운, 가엾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 … 아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는 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서경식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모두들 ‘어린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같은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되짚어보면, 그리움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나름의 슬픔과 괴로움이 마음속 저편에서 되살아온다.”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6. 크리스마스와 아이

2013년 12월, 서울 롯데호텔 앞.

연말에 크리스마스를 맞으면 도시는 화려해진다. 갖가지 상품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도시를 장식한다. 이런 때는 그냥 도시를 한번 걸어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어머니가 다섯 살 아이를 데리고 성탄절에 거리로 나섰다. 성탄절의 들뜬 기분과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고, 아이에게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함께 거리를 거닐면서 쇼우 윈도우도 보고, 성탄 트리도 보고, 길거리 연주도 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거리는 화려했으며, 이 기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길거리는 붐볐다. 엄마는 기분이 좋았고, 들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도 기분이 좋고 신났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를 보니 아이는 울고 있었다. 얘가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 보여주는 데 왜 울지? 그러다가 엄마는 자기 신발 끈이 풀린 것을 보고 무릎을 굽혀 신발 끈을 매고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서서 보았을 때 휘황찬란했던 세상은 오간데 없고, 온통 어른들 엉덩이만 보였다. 엄마 눈높이에서는 신나는 구경거리였지만, 아이 눈높이에서는 답답하고 지겨운 성탄절 거리 나들이였던 것이다.

7. 참된 그리스도인 어른들

니콜라스 마스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예수님' (1653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인생과 역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모두 선인가? 반대로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모두 아름다운가? 어른이 어린아이를 볼 때 해맑다, 웃는다, 희망적이다 라는 일반적인 느낌은 옳은 것인가? 옛날에 비하면 먹는 것, 입는 것, 방, 공부 지원 등 거의 모든 것을 부모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원해 주는데 당연히 지금 어린이들은 행복하지라고 단정 짓지는 않는가? 그래서 우울한 어린아이, 슬픔을 간직한 어린아이, 상처를 안고 고민하고 아파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어른들의 사고에서 제거함으로써 어느새 우리는 어린아이는 별로 상처받지 않으며 아파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신화를 간직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다. 그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셨고, 그들을 안아 축복해주셨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것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슬픔과 눈물이 없을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깨고, 아이들의 상처와 눈물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세상 걱정 없이 해맑고 신나고 즐겁게만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눈에서 그 시기 나름대로의 커다란 눈물을 발견하는 사람 -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이훈삼 목사(성남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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