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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야 만나지<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6.05.06 10:54

동티모르로 떠나 올 때, 내 마음을 붙잡는 세 여자가 있었다.
그 세 여자는 어머니, 딸, 그리고 손녀였다.

어머니 ⓒ임정훈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외국으로 나갈 때 마다 걱정이 크셨다. 나 역시 연로하신 어머니가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동티모르는 어머니가 모르는 나라이기에 염려가 더욱 컸다.

나는 어머니에게 “엄마, 나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해주세요. 엄마 기도에 힘입어 먼 나라에서 잘 지내지요.” 라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알았다. 그렇게 할께” 하고 힘없이 대답하셨다. 나는 “엄마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내가 맘 편하게 일마치고 돌아 올 거예요”라고 말씀 드렸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 건만 목소리가 잠겼다.

어머니는 의연하게 잘 지내시다가도 문득  딸 생각이 나실 때가 있나보다.
“오늘은 종일 막내딸이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단다.” 어머니 가까이 살고 있는 큰언니가 전해 왔다. 순간 콧등이 싸해지며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머니에게 나는 애물(愛物)인지 애물(心痛)인지.
아니다.
언제나 나는 어머니에게 애물(心痛)이였다.

딸과 여행 ⓒ임정훈

딸아이가 결혼한 후 나는 태국으로 떠났다. 시집 간 딸아이에게 친정 엄마는 지금까지 부재중이다. 친정 엄마가 시집간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살뜰한 마음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김장철에도 그냥 계절을 모르는 것처럼 지나갔고, 딸아이가 기침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을 때도 나는 전화로 그저 “배즙을 다려 먹어 보면 좋을 텐데” 라고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딸아이가 보고 싶을 때는 함께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2014년 2월, 청춘열차를 타고 딸과 겨울여행을 떠났다. 가평의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션에서 우리는 건배를 하며 “로맨틱 홀리데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입춘을 무색케 하는 추위 속에서 레일바이크를 탔고 귀로만 수없이 들었던 “남이섬”도 갔다. 딸과의 여행은 영화처럼 ‘청춘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닐지라도 20년은 더 젊어진 기분으로 청춘열차에서 내려 딸과 헤어져 대부도로 돌아왔다. 지도 속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를 향해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걸어가기 위해.

엊그제, 딸과 모처럼 전화를 하였다.
“우리 베네치아 갈까.”
“베네치아 좋지,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도 보고 싶어. 세상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이 있다는데”
“호주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가 있다는데 횡단 열차를 타 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딸아이와 나는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손녀 

재인이 ⓒ임정훈

재인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완전히 짝사랑이다. 가끔 한번 씩 나타나서 열렬한 애정표정을 하는 내가 재인이는 불편하기만 한가보다. 나를 보면 울기부터 하거나 싫은 표정을 짓는다. 재인이의 차가운 반응에 나 역시 할 말은 없다. 그냥 내 마음 만은 일편단심일 뿐이다.

나는 가끔씩 재인이 보고 싶으니 동영상 찍어서 보내 달라고 아들 내외에게 말한다. 엊그제 보내 온 동영상 속에 재인이 아빠의 말소리가 들린다.
“재인아 할머니 사랑해요” 라고 하자
동영상 속에 재인이가 말했다.
“할머니 많이 사랑해요”
나는 재인이가 “많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많이”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니 즐거웠다. 

이제 막 세 돌이 지난 재인이가 동티모르에 온단다. 올 여름 휴가에 재인이네 세 식구가 홍콩, 발리를 경유해서 동티모르까지 나를 보러 오겠다며 이미 비행기 표 예매도 끝냈단다.

만남을 전제로 한 기다림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드는지.
나는 재인이가 오는 7월 마지막 주를 기다리며 5,6 월을 보낼 것이다.

친구와 자코에서 ⓒ임정훈

지난 1월 동티모르에서 2주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가 돌아가기 전 날 저녁식사 시간에 우리는 벌써부터 이별의 서운함으로 목이 메여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했다.
“헤어져야 만나지.”
“헤어져야 만나지.” 

그랬다. 친구의 말처럼 헤어져도 때가 되면 만날 수 있는 거다. 헤어지면 이렇게 만나는 것이 어쩌면 이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슬픈 것은 헤어져도 만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살아가면서 가장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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