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20-26
하나가 되게 하소서!
정원진 목사 (서울제일교회)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셨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마도 잘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믿어지지 않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의 본문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18-19장) 직전에 예수님의 ‘고별사’(13-16장)와 ‘고별기도’(17장)를 싣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 고별기도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남기신 유언 가운데 마지막 말씀이요, 결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20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이란 “예수님 제자들의 제자들, 즉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입니까?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 아닙니까?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에, 가장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다름 아닌 ‘우리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를 위해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17:1)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니요! 감격스럽고, 또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유언을 지켰는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께 뭐라고 간구하셨습니까? 능력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믿음이 성장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21절). “사랑 안에서의 일치,”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 뒷일을 부탁하며 남기는 말인 유언(遺言)은 다른 어떤 말보다 무게가 있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앞에 두고는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말은 몰라도 유언만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우리가 성실히 지키고 있는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유언대로 우리는 지금 모두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교회는 모두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마크 트웨인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 안에 넣어 보았다. 뜻밖에도 그들은 기대를 뛰어넘어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 안에 집어넣어 보았다. 그들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그들도 더불어 잘 어울릴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장로교인과 감리교인과 침례교인을 한 우리 안에 집어넣어 보았다. 그들은 결코 잘 지낼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이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불행하게도 교회의 역사는 교회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숱한 종파가 등장하면서 마치 세포가 분열하듯이 교회는 이리 찢기고 저리 갈라졌습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은 분열의 위기에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고 호소했겠습니까?

항상 겉으로 드러난 분열의 명분은 하나님의 뜻이요 성경 말씀을 근거로 자기가 정통이라고 주장했지만, 지금 와서 지난 역사를 정직하게 되돌아보면 참된 분열의 요인은 인간의 부족함 때문이었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엡 4:5-6)이시지만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위로를 받을 때도 많지만, 실망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특히 교회가 내분으로 분열되는 현장을 경험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교회가 어떻게 시대적 구원의 표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갖게 됩니다.

왜 교회는 하나 되라는 예수님의 유언을 받들지 못하고 갈라지고 찢어졌을까요? 서로에게 들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분열의 이유는 언제나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입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유대교가 기독교를 배척하여 하는 수 없이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기독교가 갈라져 나왔습니다. 가톨릭이 개신교를 이단시하여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개신교가 독립했습니다. 이후 개신교회는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교회 등등 수많은 교파로 갈라졌습니다. 그 분열의 이유는 내 교리는 옳고 네 교리는 그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나는 맞고 너는 틀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입장에서 맞고 누구의 입장에서 틀렸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입장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판결하셨습니까? 아니면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판결하셨다고 우겼습니까? 정말로 내 잘못은 하나도 없고, 남만 잘못했습니까? 아니면 남도 잘못했지만, 나도 역시 잘못했습니까?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유언 기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정직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 있다면, 현재의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오랜 전에 미국이 남북전쟁을 했을 때, 지금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Washington D.C.)시를 흐르는 포토맥(Potomac)강을 사이에 두고 북군과 남군이 대치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날이 밝아 아침이 되면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그런 밤이었습니다. 달빛이 흐르는 조용한 시간에 군사들은 내일 벌어질 전투를 생각하며 불안에 떨면서 긴긴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남군이 군가를 부르면 북군이 다른 군가가 불렀습니다. 북군이 애국가를 부르면 남군은 자기네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군인 하나가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여러분도 잘 아는 이 노래를 어느 군인이 조용하게 불렀더니 옆에 있던 군인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노랫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드디어는 강 건너편에서도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적군들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제 포토맥강 양쪽이 노래로 가득 찼습니다. 저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음날 전쟁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싸워야 되는가? 즐거운 곳에서는 나를 오라고 하는데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형제를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싸움과 분열을 멈출 수 있습니다.

교회 분열을 멈추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기독교의 근본으로 돌아가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쏟으시며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다른 형제와 자매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용납하고 받아들이셨듯이, 저들도 용납하고 자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잘나고 흠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나는 턱없이 부족하고 죄인이지만 내 죄를 묻지 않으시고, 내 허물을 따지지 않으시고 무조건 크신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싫어하고 미워하기까지 하는 저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 저들을 내가 어떻게 정죄하고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들을 용서하고 용납하셨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저들을 정죄하고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은 내가, 감히 어떻게 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희생하셨는데, 그 보혈의 공로 덕분에 오늘의 나 된 내가 어찌 저들을 사랑하지 않고, 저들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교회가 다르고, 교파가 다른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 모두는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사는 한 형제 한 자매이고,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은총을 나누어 받은 사람인데 하나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니 소망도 하나이다!

다행히 20세기 중반부터 교회들은 분열의 아픔을 느끼면서 다시 하나가 되고픈 열망에 눈떴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그리고 개신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창립을 통해서 소위 에큐메니컬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교회일치운동”이라고 번역되는 에큐메니컬운동은 ‘교파통합운동’이 아닙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여럿’으로 나뉜 교회를 ‘하나’의 제도나 틀로 묶자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다양성은 유지한 채 하나님의 선교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자신과 다른 종파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무시하고 깎아 내리고 심지어는 말살하려고까지 애썼는데, 지금부터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협력하고 일치하자는 얘깁니다. 다시 말해 ‘틀’이 아니라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즉,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일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에 방해받지 않고 모든 일을 선으로 이끌어 나가는 분이십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교회 분열을 통해서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우리 지역만 보아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록 교회 분열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분열을 통해 여러 교회가 생긴 지금 한 교회만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고, 각 교회가 다양한 예배 프로그램과 선교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각자

자기에게 맡는 교회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이렇듯 전진합니다. 그 어떠한 악조건, 우발적 사건도 역이용하면서 전진합니다. 인간의 생각을 넘어, 인간의 길을 넘어 전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장의온전한 유리가 깨지면 그 유리조각들을 이용해서 스테인드글라스 만드시는 분입니다. 여러 색깔과 모양이 조화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오히려 한 색깔의 통 유리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듯이 우리를 이 지역 사회에 보내십니다. 비록 교회는 여럿이지만 복음전파라는 한 목적을 가지고 각 교회마다 고유한 빛깔을 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니, 소망도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협력하고 일치해 보십시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해 보십시다. 지역 교회들이 힘을 모아 새 역사를 시작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에 이제부터 우리 교회가 앞장서 나아가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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