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의 필자인 박운양 전도사(감리교, 녹색살림 배움터 선임교사)는 현재 서울남부구치소에 330여일 째 수감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은 <빛과 소금> 3월호의 윤동주 시인 특집기사가 왜곡된 방향으로 쓰인 것에 대한 필자의 반박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필자는 1995년 5월 윤동주 서거 50주년을 기념하며 윤동주 시인에 관한 대표적인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던 당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마광수 교수와의 인터뷰를 서강학보에 실었다.

지난해 서거 7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됐고, 특히 이준익 감독의 <동주>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개봉되면서 윤동주는 집중 조명되고 있는 핫 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윤동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단계가 의도적으로 생략되거나 윤색되는 형태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윤동주는 당시 일제강점기말에 창시개명을 하였다. 윤동주를 성인의 반열로 세워야만 하는 의도를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넌지시 관철시키려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 사실은 절대 언급되어서는 안된다.

일종의 주례사 비평이 한국문학을 저열한 수렁에 빠진 가면무도회장을 버금케 만들어 온 맥락과 다르지 않다. 2015년 6월 신경숙의 표절이후를 지켜보면서 너무 추레해서 처연하기까지 무너져 내린 한국문학의 몰골을 직면해보았다면, 시인 윤동주를 또 다른 천박한 밥벌이의 도구로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1995년 이후 20년의 한국문학의 행보를 제물삼아 먼저 인간 윤동주의 짧은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작품을 동일성의 시선을 중첩시켜 얻어낸 효과와 실상의 신기루들이 오늘날 우리의 시선에 허물정도가 아니라 들보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윤동주 시인의 첫 번째 원고 표지.

유독 제목이 「십자가」라는 이유로 신학적 윤색인지, 문학적 윤색인지 스스로 헷갈리면서 「윤동주의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빛과소금」에 실린 김응교의 글을 돌아보자.

윤동주의 친필 <십자가>.

김응교의 이 글은 ‘~처럼’ 이라는 조사의 연결고리를 코걸리/ 귀걸이 하는 식으로 언급하면서 일제억압상황에서 신앙과 도덕의 기준을 바늘귀를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으나 윤동주는 아니 윤동주만이 가능했었다는 식으로 뻔한 동어반복을 「~처럼」의 방식으로 채워넣고, 아니 땜질하고 있다. 그의 언급을 옮겨보자.

3연에서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겠다”한다. “종소리가 들려오지 언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신사참배와 전쟁을 강요하는 1940년대 상황에서 교회는 아무런 희망의 종소리, 예언자의 종소리를 울리지 못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예언자적 종교가 해야 할 일이 많으나 교회는 행동을 했다. 많은 목사가 신사참배를 했고, 헌금을 모아 비행기를 사서 바쳤으며, 일부 개신교 지도자는 이세신궁에 참배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디서 종소리가 들려오겠는가.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시대에 참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휘파라미나 불며 서성거리자”는 것이다. 요즘 부패한 교회에 예언자적 지성을 잃은 교회에 나갈 수 없는 ‘가나안 성도’, 거꾸로 하면 교회에 ‘안 나가는 성도’를 생각하게 된다.

김응교는 「윤동주의 신앙」에 관한 글을 「십자가」라는 시를 프리즘으로 삼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 협소하고 어설픈 관점이다. 시인 윤동주의 기독교신앙은 적지 않은 동시까지 포함한다면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어져 있다.

십자가(라는 이미지)는 일제강점기에서 순교자의 이미지를 연상시켜서 호출한다. 그리고 나서 순교자의 동선이 드리운 무늬와 윤동주의 신앙이 그대로 대응될 수 있을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줄탁동시를 언급하고 가나안 성도를 호출하고 생뚱맞게도 쥬이상스(Jouissance)의 쾌감을 보여준다며 라깡의 정신분석학마저 귀걸이에서 코걸이까지 폭넓게(?) 알맞게(?) 적용하고 있다.

이것은 김응교의 의도적인 오독이거나 작정한 게으름에 다름 아니다. 다음 사진은 후쿠오카 형무소시절, 윤동주에 대한 판결문이다.

후쿠오카 형무소 시절, 판결문.

이 판결문 속에서 윤동주는 창씨개명을 한 平군東柱로 기재되어 있다. 김응교의 글 「윤동주의 신앙」과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이는 김응교가 제시하는 윤동주의 신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적지 않은 과장과 부적절한 비교가 오히려 설득력을 반감시키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창씨개명이 윤동주의 훼절을 나아가서 변절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필자의 관점에서는 억지 춘향 격으로 뒤집어씌운 애국지사 독립투사·저항시인의 이미지가 윤동주의 삶과 문학에서 조우하게 되는 진정성과 지향성 그리고 일상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스럽게 삼투하여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 지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윤동주의 죽음에 관한 차분한 시선이 요청된다.

윤동주가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정문.

그리고 같은 해(1917) 태어나서 같은 해 유아세례를 받고, 명동소학교에서 일본유학까지 함께하며 1943년 7월 14일 독립운동 혐의로 나흘의 격차로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끝까지 함께했었던 송몽규에 관한 전 이해가 반드시 요청된다.

명동소학교에서의 세 사람을 회고했던 늦봄 문익환은 이렇게 표현했다. 문익환 자신은 ‘윤동주의 탁월함을 감지하고 열등감을 느꼈으며 마찬가지로 윤동주는 송몽규가 매사에 한 발 앞서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부문에 <숟가락>이라는 작품을 응모하여 당선하게 된다. 이는 윤동주에게 강력한 자극이 되어 몽규를 향해서는 ‘대기는 만성이다’라고 하며 문학수업에 집중하게 한다. 이때가 1935년 18세였을 때였다.

릿쿄대학시절 첫 여름(42.8.4) 뒷줄 우측 윤동주, 가운데 송몽규.

송몽규는 대중을 상대로 한 웅변·연설을 잘했으며,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인정받아서 촉망받는 독립군으로 정해져 있었다. 조선독립군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김구가 설립한 남경에 있는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에 입학한다. 1년 간 교육을 받은 송몽규는 1936년 4월, 체포 후 모진고문을 당하고 석방된다.

이제 송몽구는 일제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리스트에 오르게 되고 이 리스트는 확장하기 시작한다.

문익환 평전에 의하면, “송몽규는 1935년 조선독립운동 단체에서 교육을 받고 제남에서 활동하다가 1936년 귀국, 자수했는데 끝가지 ‘불령 사상을 포기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윤동주와 의논하며 연희전문을 거쳐 일본에서까지 ‘조선독립의 궁극적 목적으로 세계역사 및 문학을 연구함과 동시에 민족문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1944년 1월 20일에 발행된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 「특고월보」 ’치안유지법 위반 조선인 취조 상황‘에 실려있음을 밝히고 있다.

위 기록을 윤동주를 치안유지법 5조 위반의 사상범으로 판정하여 실형을 선고한 교토재판소의 판결문과 비교해보자.

“(윤동주는) 우리(일본)의 조선통치의 방침을 보고 조선 고유의 민족문화를 절멸하고 조선 민족의 멸망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여긴 결과, 이에 조선 민족을 해방하고 그 번영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조선으로 하여금 일본제국 통치권의 지배로부터 이탈시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수  밖에 없으며….”

1943년 7월 10일 송몽규가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된다. 나흘 후 7월 14일 윤동주가 송몽규와 같은 혐의로 체포된다. 윤동주의 원고 때문에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다고 하나, 송몽규의 전력이 시빗거리가 된 것임에 틀림없다. 역으로 논하면 송몽규가 체포되지 않았다면 윤동주의 체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와 송몽규.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의 학적부와 성적표.

한국 근현대 변혁운동사에서 분수령을 이루었던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과 체류탄의 발포로 목숨을 잃었던 이한열을 떠올려보자.

윤동주는 탁월한 혁명가적 자질을 가지고 있는 벗, 송몽규를 돕고 그를 존중하며 같은 해 태어나고, 같은 해 세례를 받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일 격차로 함께 절명한다.

그러난 그 우정을 다윗과 요나단으로 비유하자면 섬세하고 따뜻한 요나단에 가깝다. 고 박종철 열사와 고 이한열 열사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영웅적인 이미지보다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의 따스함과 소중함으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윤동주 시인의 삶과 문학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따뜻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명징하게 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의 이런 됨됨이레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는 강직했지만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늘 회의하고 고민했지만 맑은 인품의 사람이었다.

윤동주의 장례식.

연희전문시걸 후배 정병욱과 함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내기도 했던 정병욱은 윤동주가 연희전문시절 가장 아끼던 후배로 윤동주 시인의 유골을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23에 보존했다. 문학사적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등록문화재 341호)

그는 시인으로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단오 무렵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서둘러 묘비를 ‘시인윤동주지묘’라고 크게 해 세웠다. …”(윤일주, 「윤동주의 생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마지막 떠나는 길의 아들이자 손자를 처음으로 ‘시인’이라고 불렀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원고를 연희전문지기이자 당시 「경향신문」기자였던 강처중을 거쳐서 주필이던 시인 정지용을 통해서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동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10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고 소개 글을 쓰도록 이끌어낸다.

용정중학교. (사진출처: 중부매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려 하기에 필자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윤동주의 작품 중 반 이상은 동시로 분류되고, 특히 용정중학교 시절 학교와 마을의 따뜻하고 친근했던 동무와 오라버니 그리고 형으로서의 윤동주의 모습이 그 동시들에 오롯하게 담겨있다.

이제 윤동주에 관한 1995년 5월 이후 21년만의 글을 갈무리하면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 윤동주를 영웅이나 성인의 이미지를 쳐발라서 하나님 앞에서, 민족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벗들 앞에서, 수줍어하며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주저하며 회의에 빠져 고통스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에서, 청년을 거세하고 함부로 「시인」이라 관성적으로 떠벌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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