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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귀태(鬼胎)인가?(1)<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 승인 2016.05.11 11:26
박정희. (사진출처: 한국일보)

어떤 정치인이 박정희를 귀태(鬼胎)라 하면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뜻이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귀태(鬼胎,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고, 그 장녀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박대통령의 행보가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는 아베신조 일본총리와 유사하다…….”

책 「가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강상중 저)에 귀태란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 태아 태(胎)자 라며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에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귀태로 박정희와 노부스케가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귀태의 후손들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박정희와 그의 딸 대통령 박근혜를 패대기쳐 버린 그는 그 말로 인해 사면에서 날아드는 비난과 압박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는 한 야당의 대변인이었던가 했는데, 그 대변인직 자리까지 내려놓아야 했다. 박정희 – 박근혜로 이어지는 현실력의 압박에 의해서 였다. 결국 그의 당도 그를 지켜주지 못한 셈이었다. 박정희(朴正熙), 그는 과연 귀태였을까?

기독교의 계약(契約)사상(思想)에 의하면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우연히 생겨나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은 없다. 창세기의 「창조」란 조형(造形)이 아니요, 창조주의 의지주입을 말한다. 천하 공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창조자의 의지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 구현을 위해 거기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의지 구현, 그것이 계약이요, 계약의 핵심이다.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절대의 자(自)격(格)을 지닌다.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주종관계」를 불허한다.
“정복하라”, “다스리라”하는 말씀을 바로 이해해야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속에 주신 그의 의지를 구현하라! 그것이 곧 정복이요, 다스림이라는 것이다. 천하의 피조물에겐 양도불가의 과제가 있다. 그 과제가 있어 그 존재가 허락된다. 그 과제! 곧, 그 의지(뜻)의 구현이 계약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용도가 있어 존재한다. 아물며 사람에서 일까?
그렇다면 박정희가 귀태일 수 없다.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니...역사는 헛소리, 헛짓을 하지 않는다. 역사야 말로 절대다. 50억년 지구의 진화, 그 속에서의 생명의 진화. 그 생명 속에서의 인류, 인간의 진화가 예외 없이 역사의 품에서 이루어진다. 역사가 어찌 태어나서는 안 될 자를 낳을 수 있겠는가?

박정희는 귀태? 아니, 그는 와야 할 사람이었다!

‘귀태’가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라면, 그 말을 박정희에게 사용한 것은 너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와야 할, 반드시 와야 할 사람이었다. 감히 말 하건데, <에큐메니안> 독자들은 한국현대사의 도상에서 ‘박정희와의 만남’을 감사해야 한다.

박정희의 모친 백남의(白南義)와 부친 박성빈(朴成彬). (사진출처: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박정희가 유년시절을 보낸 집. (사진출처: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한국 현대사에서 그 만큼 큰 깨우침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주고 간 인사가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와야 할 사람, 기어이 이 역사에 우리(?) 역사에 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가 귀태일 수 있겠는가? 그는 귀태(鬼胎), 세상에 와서는 안 될 사람이 아니요, 귀태(貴胎),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박정희(朴正熙), 그는 1917년 11월 14일 세상에 왔다. 그가 온 곳은 경상북도 선산(先山)군(郡) 구미면(龜尾面) 상모리(上毛里), 5남 2녀 중 막둥이로 왔다. 아버지는 박성빈(朴成彬), 어머니는 백남의(白南義), 어머니 백남의는 당시나이 45세로 그의 딸 귀희(貴熙)와 동시에 아이를 갖게 된다. 박정희의 어머니 백남의는 젖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 박정희로서는 천은을 입었다. 누나의 젖을 먹고 자랄 수 있어서였다. 당시 여인의 나이 마흔 다섯이면 할머니가 되는 나이였다. 가세는 더 없이 빈곤한데다 식구는 넘쳐난다. 가난을 면하려면 식구를 하나라도 덜어내야 하는 판에, 할미의 나이에 새끼를 더한다는 것은 주변의 시선은 고사하고 스스로도 못 견딜 일이었다.

백남의는 뱃속의 태아를 지우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은 죽기로 까지였다. 간장을 사발로 들이키기, 치마를 걷어 올린 맨 배를 마루 기둥에 내지르기, 때로는 맷돌을 품고 몇 차례씩 뒷마당을 뒹굴기도 했다. 뒷산 바위에 올라 굴러 떨어지기를 수차례, 백남의는 차라리 죽기로 태아 지우기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백남의는 두서너 차례 “이젠 됐구나!”하기도 했다. 태중의 아이가 전혀 기척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때가 지나면 다시 태중의 생명이 꿈틀댄다!!

남의는 두려워졌다. 가슴속에 거룩함(?)이 서려왔다. 아이를 지워버리려는 자신의 행동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신을 압박해 오는 것이었다.

“하늘이 쓰고자 보내는 생명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박정희는 이렇듯 아슬한 사경을 넘어 와야만 하는 이 땅에 왔다.

원래 박정희의 윗대는 경북성주군 월향면에서 살았다. 대단한 부농이었다.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은 부농의 아들로 부러울 것이 없었으나 할아버지 박영규가 세상을 뜨면서 가무주색에서 심취했던 나머지 그 큰 가대를 상실하고 처가를 좇아 구미의 상모리로 이주하게 된다. 1892년 박정희가 세상오기 스물 다섯해 전이었다.

박정희가 「구미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은 1926년, 그가 아홉 살 되는 해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왕복 40리 거리였다. 그는 이 길을 멀다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의소년시절」에서 이때의 등하굣길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상모동에서 구미읍까지는 약 8km로 20리길이라 했다. 오전에 4시간 수업을 했으니까 학교 수업시작이 8시였다고 기억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20리 길을 8시까지 지각하지 않고 시간에 닿기는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늦다고 생각되면 20리 길을 거의 뛰어야 했다.”

보통학교의 성적은 대단히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점 만점에 평점이 9점 이상이었다. 역경을 견디어 내는 데는 특이했다. 경쟁욕 또한 이상스러우리만큼 박정희는 형들에 비해 외모가 왜소했다. 동희, 무희, 상희형이 하나 같이 외모가 우람했는데, 박정희는 유달리 처진 체형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박정희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듦성이 강했다. 하굣길에서 벌어지는 씨름판의 사건에서 더욱 그랬다. 거의 날마다 씨름판을 벌리는데 상대는 언제나 저보다는 큰놈이었다. 이길 수가 없는 싸움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결국은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지면 다시 일어나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붙는다. 너무 지루한 싸움, 상대는 싸우기를 포기하게 되는데, 박정희는 그럴 때마다 기고만장해했다.

박정희의 뇌리 속에 신격화(神格化)된 군인(軍人)

“함석헌의 전도사가 되려한다”는 철학자가 있다. 전남대학교의 김상봉 교수가 그 사람이다. 그는 2010년 10월호 「씨알의 소리」에 ‘함석헌과 박정희’를 썼다. 그 부제(副題)가 ‘힘의 사람, 뜻의 사람’이었다. 김상봉은 이 글에서 박정희를 ‘힘의 사람’으로 단언하고 있다. 박정희가 힘의 사람이라는 그의 주창은 조우석의 함석헌과 장준하의 박정희 동화론을 반박하면서다. 조우석(KBS 이사회 이사, 전 중앙일보 문화부 문화전문기자)은 2009년 그가 발행한 「박정희 한국의 탄생」에서 함석헌과 장준하를 다음과 같이 박정희와 동화시키고 있다.

어린시절의 박정희. (사진출처: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함석헌, 장준하는 또 한명의 박정희 이고, 박정희는 실제로 역사를 창조했던 또 한명의 함석헌, 장준하라는 것” 으로 그의 삼자(三者)동화(同化)론은 이렇게 계속된다.

“함석헌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다. 엄격하게 말해 비판적 자유주의자로 규정된다. 신의주 학생의거이후 남쪽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담긴 역사 인식은 박정희와 너무나도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 쪽이 더욱더 지독했다는 점이다. 함석헌이 관념이라면, 박정희는 현실의 울분이자 구체적인 사회개조의 프로젝트였다.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한국사를 다시는 가난하지 아니하고 다시는 약하지 아니한 조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었다. 함석헌이 우리 역사를 ‘거지처녀, 거렁뱅이 처녀’로 비유한 것과 다를 게 없지만 끝내 낙제대신 한국의 모더니즘을 구현하면서 극적인 급제를 한 것도 박정희의 힘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박정희와, 지금 장준하, 함석헌의 후예로서 진보적인사들 사이의 이념적 지향은 생각만큼 멀지 않다. 양자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었고, 현실정치의 키를 쥐고 있었느냐, 밖에서 담론 투쟁을 벌였느냐의 차이였다.”

그러면서 조우석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둘 사이의 역사의 화해란 바로 지금 우리 손으로 이뤄야 하지 않을까?”라고.
김상봉은 「함석헌,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를 동일한 역사의 도상을 가는 자라는 이 같은 조우석의 논지에 아찔할 만큼 반론의 칼을 댄다.

“조우석의 생각에 따르면 박정희와 함석헌이 공동으로 품었던 꿈은 다시는 가난하지 아니하고 다시는 약하지 아니한 조국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함석헌이 가난한 조국이나 약한 조국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누군들 그런 조국을 원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석헌이 꿈꾸었던 궁극적 목표가 박정희와 다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선량한 상인도 가난하지 않고 부유한 삶을 바라고 그들을 등쳐먹고 사는 폭력배들도 마찬가지로 부유한 삶을 바란다고 해서 그들이 지향하는 바가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논리적인 오류추론일 뿐이다.” 그러면서 김상봉은 함석헌과 박정희의 다른 점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함석헌 바랐던 것이 박정희와 같지 않았다면 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둘의 차이는 박정희가 힘을 추구한 사람이었던데 반해, 함석헌은 뜻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데 있다. 박정희의 숭배자들은 세상의 모든 가치의 본질이 힘이라고 생각한다.
힘의 사람 박정희! 김상봉의 주장은 선언에 가깝다.

필자는 박정희의 뇌리 속엔 한 군상(群像)이 신격화 되어있었다고 했다. 바로 이 글의 주제가 그렇다. 좋던 싫던 박정희를 아는 모든 사람의 뇌리 속에 있는 박정희 상(像) 역시 그렇다. 오직 힘을 추구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힘이 있어야 하는 사람, 오기로라도 기어이 이겨야(?) 하는 사람, 박정희 성정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것은 아이 정희에겐 더할 수 없는 불행이었다. 그 아기 정희가 정말 불행하게도 힘의 실체로 일본을 만났고, 그 일본의 표상으로 ‘긴 칼’찬 일본(日本)군(軍)을 만나게 된다.

그 ‘긴 칼 찬 일본군’은 아이 정희의 가슴에 거부할 수 없는 신상(神像)으로 자리한다. 만고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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