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자와 속는 자의 상대적인 빈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 한도 내에서 그렇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류처럼 언어를 지닌 종에서는 새로운 책략이 점점 빈번해질수록 남으로부터 더 자주 경고를 받을 것이다. 어떤 역할이든 일부만의 전용물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를. 우리 모두는 맥락에 따라서 속이는 자도 되고 속는 자도 된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을 옮기면서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브루스 윌리스의 ‘식스 센스’. 죽었다고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실은 귀신이었다는 반전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모골이 송연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감상 수준은 높아졌다. 웬만한 반전에는 눈도 꿈쩍 않는다. 다음으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속는 자는 단 한 사람이고, 속이는 자는 이경규를 비롯해 주변 모든 사람들이다. 속는 자는 낯선 상황에 대응하느라 십 년은 늙었을 것이고, 속이는 자는 높아만 가는 시청자들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기막힌 덫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둘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의 기만성을 충실히 반영했고, 다른 점은 하나는 예술이고 하나는 예능이다. 단편소설로 습작을 할 당시 밋밋한 반전이 늘 애를 먹였다. 클라이맥스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져야 하는데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내가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술적 기교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반전의 미학 대가들은 모두 기만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통달한 사람들일까? 인간에 대한 성찰이 나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예술이든 예능이든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는 일을 하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심연보다 깊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 이야기를 늘 하고 있으니까!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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