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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카스트, 카스트, 카스트<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 승인 2016.05.23 13:05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권 탄압과 인종 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거세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인도사회의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 제도를 인도 종교와 문화의 유산으로 인식하며 인권의 문제가 아닌 인도인들의 종교와 종교성의 문제로 치부하려 든다. 어떤 이들은 카스트 제도가 인도사회 구성원들에게 어필할 만한 적합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인권의 세기인 20세기에 조차도 살아남은 인도만의 독특한 제도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카스트제도를 인도인의 인도인에 의한 인도인을 위한 인도적인 제도로 보는 것이다.

아시아 인구의 7퍼센트에 해당하는 2억 5천만 명의 달릿을 비인간화시키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카스트 제도가 아직까지 맹위를 떨치는 것은 인도인들 모두가 인도사회에 그 제도적 장치의 필요와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인가? 과연 카스트제도가 인권 차별과 학대가 아니고 종교적인 관습과 신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인가?

나는 인도 농촌지역을 순회하며 카스트라는 무덤에 갇혀서 신음하는 달릿들의 피울음 소리를 듣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브라만에 의해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 분류되어 ‘전생의 죄 값을 치룬다’는 명목으로 세상이 주는 불평등과 고난을 운명적으로 감수하는 달릿들의 한과 탄식이 인도 하늘 아래 가득 차 있음을 본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계심을 믿으며 달릿들의 구원과 해방의 날을 기다린다. 1994년 인도를 접한 이래 지금까지 내 자신의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한 카스트가 무엇이며 카스트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1994년 8월 초, 뉴델리에서 아그라로 가면서 폭우로 인하여 물에 잠긴 집들을 몇 차례 목격했다. 아무도 돕는 이 없고 수해를 당한 사람들만 넋을 잃은 모습으로 집을 바라보는 광경이 너무 마음 아팠고, 한 편으로는 너무 생소해서 동행하는 인도 청년에게 ‘수해민을 도와주지 않는 까닭’에 대해 질문을 했다. 청년의 답변은 그들이 ‘언터처블’(untouchable)이며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전생의 죄 값을 치루는 것’이며, ‘만약에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면 죄 값을 제대로 치루지 못하게 되어서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때 더 나쁘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아무런 고뇌 없이 업과 윤회로 설명하는 청년의 대답을 들으면서 내 영혼은 분노했다. 결국 이상적인 ‘종교의 나라’라는 인도에 대한 나의 선입관과 환상은 이런 경험들로 인하여 산산조각이 났다.

책을 통해 카스트 제도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카스트 제도가 주는 고통과 절망의 의미는 현장에서 달릿들과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이 출생하기도 전에 직업과 배우자, 서열과 교제의 범위가 카스트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인간의 노력과 의지, 꿈과 희망,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무참하고 비참하게 만드는가! 카스트는 포르투갈어로 ‘종족’, ‘혈통’, ‘가문’을 의미하지만 인도인들은 ‘빛깔’을 의미하는 ‘바르나’라고 부른다. 바르나는 흔히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를 의미하는 신분제도이다. 이는 후발로 기원전 1500년경에 인더스 강변에 들어온 하얀 피부의 아리아인들이 1,000여년에 걸쳐 인도 내륙을 정복하면서 검은 피부의 선주민들을 노동력을 공급하는 집단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기득권을 보전․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교묘한 사회제도로 힌두교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가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바르나가 세분화되어 3-5천 개의 작은 ‘자티’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자티는 일정한 지역에서 유사 직종에 종사하며 그 범위 안에서만 혼인하고 사회적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폐쇄적인 집단으로 오늘날에는 바르나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지위를 제시해 주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카스트 제도’는 바르나라는 사성(四姓)계급제도와 그 틀의 내외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자티 집단을 포함하는 제도 전체를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본 카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직업 세습이다. 

(사진 출처 : 하우아시아 넷)

출생 신분과 직업이 결합되어 있어서 사제의 아들은 사제가 되고 청소부의 아들은 청소부가 되고 빨래꾼의 아들은 빨래꾼이 된다. 양치기의 아들이 양치기가 되고 그 후손은 대대로 양치기가 되는 카스트에 따른 직업의 독점과 세습이 얼마나 많은 청년들을 사회적․신분적 제약 앞에서 좌절하게 만들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사회의 불의한 제도와 구조에 의해 일그러진 삶을 운명으로 알고 살았을 것인가? 또한 상위 카스트에 속해서 기득권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노력 없이 주어진 그 혜택과 이익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안일하고 기만적이며 병들고 거짓된 삶을 살았겠는가? 

나와 함께 동행 하고 있는 달릿 출신의 인도목사는 자기의 조상이 대대로 청소부였다고 말한다. 카다파 근교의 시골 마을인 타디 가틀레교회의 교우들도 조상이 대대로 청소부였으며 그 이웃에 살고 있는 마디가족들의 조상들은 신발 제조업자들이었다. 난디 꾸뜨꾸르의 부근의 한 시골 사람들은 조상이 대대로 사냥꾼이었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 인도의 경제 체계가 현대화되면서 카스트와 직업의 결합이 느슨해졌으며 아예 사라진 직업도 있고 신종 직업도 생겨났지만 인도인들은 고유의 직업을 떠났다 해도 카스트 자체에서 이탈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소속의식이 여전히 강하다. 오늘날 인도 헌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직업을 모든 인도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나 문맹이고 자본이 없고 가진 기술과 기능이 없고 여전히 상위계급으로부터 부정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우리 달릿들의 대부분의 직업은 1일 농업 노동내지는 1일 건축 노동이요, 짐 나르는 일, 또는 화목 채취나 돌을 깨고 뜨는 일이다.

카스트의 두 번째 특징은 동일 카스트 내의 친족혼이다.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목회자들과 교우들 대부분이 고모나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딸과 결혼한 경우도 있었고 외삼촌과 결혼한 여성도 있었다. 우리 차의 운전사였던 씨가마니는 나이 차이가 16살이나 되는 이모의 딸과 결혼했다. 이런 내혼, 친족혼의 이유를 달릿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혈통과 재산을 유지하려는 높은 계급 카스트들의 낮은 카스트에 대한 배타와 폐쇄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도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같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과 결혼할 의무가 있으며 이로서 자신의 카스트를 이탈하지 않으며 순수 혈통을 지킴으로 카스트 전체를 보호하고 내부 결속을 도모한다. 이런 결혼 원칙은 직업 카스트만큼이나 엄하게 지켜지며 다른 카스트와 통혼하는 사람은 카스트 밖으로 추방당한다. 카스트로부터 파문을 당하는 것은 카스트로부터 받아온 모든 보호를 박탈당하는 것이므로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많은 고초와 아픔을 겪어야 한다.

친족혼을 통하여 브라만은 브라만을 낳고 달릿은 달릿을 낳는다. 상위계급에 있어서 이 친족혼 이야말로 자연스럽게 카스트를 재생산하여 지속․보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2001년 6월에 까말라뿌람 교회에서 달릿 출신의 청년 라주와 결혼한 사트 수드라(淨 수드라로 사회적 의례적으로 격이 높은 수드라)출신의 레누까는 결혼을 위해 가출을 시도했으며 결국 가문에서 추방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의 영어 교사인 케랄라 출신의 븨나는 마드라스의 청년과 연애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친정으로부터는 지참금을 받지 못했으며 시댁으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하여 말할 수 없는 곤란 가운데 살고 있다. 라열라씨마노회의 어느 목사는 같은 달릿이지만 자티가 다른 여성과 결혼함으로서 가문에서 추방당했다가 첫 아들을 얻고 난 다음에 받아들여졌고 복귀되었다. 위의 실례들은 현재 인도 청년들이 카스트의 벽을 뛰어 넘어 결혼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 주고 있다. 

카스트의 세 번째 특징은 다른 카스트에 대한 배타성이다.

카스트의 구성원은 다른 카스트에 대해서 독선․배타적이어서 서로 간에 혼인을 금하고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간에 초청하지 않고 교류하지 않으며 한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른 하위 카스트로부터 물과 음식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식사를 일종의 의례로 여기며 친족들이나 동료 카스트들이 모여서 회식하는 것을 친족의식과 동료의식을 서로 확인하는 일종의 예식으로서 행한다. 그러므로 음식은 카스트 안에서 만들어야 하며 음식 재료에 다른 카스트의 사람의 손이 닿아서는 안 된다. 힌두교의 식사 규칙은 ‘누가 무엇을 공동 식탁에서 먹을 수 있으며, 식사를 누가 마련해야 하며, 식사를 누구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하는가’ 등등으로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브라만이며 브라만이 누구의 손에서 음식을 받으며 누구와 함께 음식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가에 따라 모든 자티의 사회적 서열이 결정된다. 

특별히 공동 우물에 언터처블인 달릿이 접근․접촉하는 것은 부정 타는 일이다.

아도니 부근에 있는 에리기리 마을을 다녀오는 길에 ‘마렘마’라는 여신을 모시고 있는 작은 사원에 들리는데 동행하는 현지 목회자가 동행을 거부했다. 이유는 그 마을 사람들이 자신 보다 높은 카스트에 속해 있으므로 달릿인 자신의 접근을 싫어하여 만약의 경우 몰매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혼자 내려갔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양해를 구하고 그를 데리고 가서 제사를 준비하는 사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 ‘부정 탔다’고 생각한 사제는 ‘부정을 푸는 예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20여 년 전에 치루다나깔루에서 한 달릿 여성이 공동 우물에 손을 댄 일로 인하여 린치를 당했고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달릿들은 그 마을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으며 오늘날까지도 핍박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의 장본인인 이렌나씨를 인터뷰하러 그 마을에 가서 문제의 작두 샘을 보러 갔는데 한 여인이 물을 퍼서 기다리고 있는 두 여인의 항아리에 물을 부어 주고 있었다. ‘참으로 사람을 잘 배려해주는구나’라고 감탄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의 사회적인 관습을 모르는 나의 무지였었다. 그 장면은 공동 우물에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부정한 달릿들에게 상위 계급(Upper cas)의 사람들이 베푸는 적선에 불과 했던 것이다.

우리의 의욕적인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제빵훈련 프로그램’이다. 2000년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이를 추진시키려고 했을 때 남인도교단의 총무인 다와씰 바담 목사님께서 상층계급의 사람들은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결코 받아먹지 않으므로 달릿들이 제빵사 자격증을 획득해도 취직할 자리가 없고 만약에 우리가 제과점을 오픈해서 빵을 만들어도 달릿들이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사먹지 않을 것 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 때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설마 그럴 리가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교회 봉헌예배나 특별 행사시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면 힌두교를 믿는 달릿들은 함께 식사를 하지만 상층계급들은 잔치에 구경은 와도 식사는 결코 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지 간에 상층계급 사람들은 달릿들이 주는 것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내가 상층계급 사람들에게 직접 약이나 선물 등을 전달할 때가 많았다. 

안드라푸라데쉬주의 달릿은 마디가와 말라로 구성되는데 마디가는 신발을 만들고 수리하며 짐승의 가죽을 무두질하는 직업을 조상 대대로 세습을 하였으며 말라는 청소부 계급으로 각종 쓰레기를 비롯한 오물 처리와 사체 처리를 직업으로 세습했다. 언터처블인 말라와 마디가는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하여 크리스천이 되었지만 한 마을에 살면서도 서로 교제는 물론 통혼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마디가와 말라의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 전도 집회를 열고서 침례교도인 마디가를 초청했는데 소수의 어린이들만이 참여를 했다. 나중에야 마디가가 말라를 자신들보다 더 낮은 계급으로 취급하며 무시하기 때문에 말라의 행사에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각 카스트의 구성원은 결혼. 식사. 직업 그 밖의 독자적인 종교적․사회적 관행으로 서로 구속되어 있으며 카스트의 관행과 규칙을 어긴 사람은 카스트의 장로회의인 판차야트(panchayat)나 카스트 구성원의 모임인 사바(sabha)의 결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처벌은 대개 카스트 밖으로의 추방이다. 일시적인 추방의 경우에는 속죄행위나 정화의례를 한 뒤에 카스트 내로 복귀할 수 있으나, 영원히 추방된 사람은 다른 카스트에서 받아 주는 일도 없으며, 아무리 직계가족이라 할지라도 돌보아 줄 수 없다.  

인도의 카스트가 그 구조적인 인간차별과 소외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의 말처럼 인도인들의 종교적 성품 때문인가? 그 제도가 독특한 인도문화 유산으로서 인도인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인가? 나는 먼저 카스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일차적 이유를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힌두교 교리인 업․윤회사상과 부정(不淨)사상으로 본다.

윤회와 업 사상이 카스트 제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온 것이 사실이다.

베다의 권위에 근거를 두고 정해진 의례적인 의무(다르마)에 각 계급이 복종해야 함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여 브라만의 사회적 우위를 결정짓는데 이용된 것이 윤회와 업 사상이다. ‘전생의 행위에 따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태어날 수 있다’는 이 사상은 계급제도에 대한 종교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즉 카스트 제도는 ‘업의 법칙’과 연결되어 불평등한 삶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힌두교는 카스트의 질서에 복종함으로써 얻어지는 유익과 복을 설명하는데 윤회와 업을 이용했다. ‘인간은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재생의 윤회 속에 살고 있으며, 개인은 전생에서의 삶의 응보로써 일정한 종성을 가진 집단에 태어나며, 부정 카스트의 구성원도 의례에 따라 모범적인 생활을 계속하여 업을 씻으면 재생할 때 보다 높은 카스트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계급들은 자기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카스트의 다르마에 충실하며 다른 카스트와 배타적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우위성을 확보하려 하였으며 이로써 윤회설은 모든 사람이 영속적으로 네 계급으로 나뉘어 태어난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합리화를 시킬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달릿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죄 값을 치루는 것이라 설명하고, 브라만이 높은 계급으로 온갖 특혜와 권리를 누리는 것은 전생에서 행한 선행공덕의 응보라고 한다. 현재의 상태는 전생에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로 결정되었으므로 현 상황을 개선코자 하는 어떤 인간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간다. 이러한 업의 논리는 각종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불만과 고통을 교묘하게 설명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사회 불평등을 개혁하려는 시도나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노력을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힌두교의 청정(淸淨)과 부정(不淨)개념도 카스트 제도를 유지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힌두교는 모든 존재를 청정과 부정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있다. 각 카스트의 직업과 관습이 브라만적인 관점에서 청정․부정의 관념으로 평가됨으로써 카스트의 등급이 정해진다. 배설물과 피, 죽음과 부패에 관한 것은 극히 부정하게 취급되므로 사체 처리, 피혁가공, 오물 및 쓰레기 청소, 세탁 등에 종사하는 카스트는 부정하게 여겨졌으며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힌두교도는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부정 탄다고 생각했으며 오염은 직접적인 접촉은 물론 간접적인 접촉에 의해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청소부와 신발을 만드는 사람들을 부정하다고 여겨 촌락 외곽에 거주하도록 했으며 우물에 손을 대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사원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출생․배설․사망 등에 의한 오염을 피할 수 없으므로 현실에서 생기는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화의례가 발달될 수밖에 없었다.

각기 카스트가 가진 정성(淨性)은 집단적인 것으로 카스트 구성원 모두가 일생을 통하여 가지게 되는 것이므로 각 카스트가 그 구성원에게 강제하는 결혼․식사․직업 등에 관한 복잡한 규제도 결국은 자기 카스트를 부정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각 카스트는 부정을 피함으로써 다른 카스트와 의례적인 상하관계를 유지하고, 가능한 정성(淨性)이 높다고 보여지는 새로운 관습을 택하여 자기의 계급을 높이고자 했다. 상위 카스트가 높은 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하게 취급되는 노동들을 하위 카스트가 분담하기 때문이었다. 상위 카스트들의 청정이란 결국 하위 카스트들의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청정․부정사상은 힌두사회를 카스트로 나누는 원리가 되는 동시에 카스트로 구성된 힌두사회를 체계 있게 만드는 원리가 되고 있다. 결국은 종교적․의례적인 의미를 가진 상하의 신분 질서가 경제적인 분업관계를 뒷받침하여 카스트제도를 유지시켜 온 것이다.

(사진 출처 : 세이북 닷컴)

인도에 살면서 겪었던, ‘인도적이다’라는 표현 밖에 할 수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많은 일들이 인도의 종교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청정과 부정의 관념에서 나온 일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한 사람의 시신과 동물의 사체가 길거리에 그대로 여러 날 방치되어서 오가는 길에 얼마나 비명을 질렀던가! 화장실 청소를 꺼려하며 화장실을 만들지 않는 농촌 주택들, 우물과 개울의 물을 달릿과 함께 사용하지 않는 높은 계급들의 횡포와 배타성을 체험하면서 얼마나 탄식했던가! 홍수로 집을 잃은 천민들이 밀려와서 사원을 점령하여 부정 타게 만든다며 사원의 문을 대낮에 닫아 버리는 사제들을 보고 얼마나 화를 냈던가! 어깨에 수건을 걸쳐서 자기 신분을 드러내는 달릿들의 자기비하와 달릿이 자기 몸을 스쳤다고 고성을 지르며 물러가라고 야단쳤던 상위 카스트의 오만방자함, 베지테리안 식당과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간 나에게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에게만 집을 렌트한다고 수선을 피우던 집 주인들 등등은 정(淨)의 개념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지극히 ‘인도스러운’ 일들이었다. 

카스트 제도가 시대를 역행하며 오늘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상의 힌두교의 교리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뜻을 가진 브라만들의 다르마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브라만들은 자신들의 다르마를 다른 카스트들 속에서 교묘하고 정교하게 수행함으로써 자신들의 특권을 옹호하고 아리안의 순수 혈통과 기득권을 유지시킨 장본인들이다.

“마누법전‘에 의하면 창조물들의 지배자인 동시에 다르마의 ‘형식들’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신들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을 힘을 가지고 있는 브라만은 본래는 종교적인 행사를 주관하는 사제로서 유목과 농경사회의 백성들이 의지하는 소박한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러나 갠지스 강 유역에 정착한 기원전 1,000년에서 500년 사이에 베다와 더불어 제사의식서인 ‘브라마나’를 편찬하면서 그들은 브라만 중심의 카스트 제도를 확립했다. 브라만은 사제인 동시에 천문학․역학․수학의 연구자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계속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예식을 다른 계급의 사람들로서는 알 수 없도록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결혼의식은 물론 사회의 도덕, 습관, 법률까지도 신의 가르침으로 규정했다.

‘지식’을 뜻하는 베다는 오직 브라만만이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었으므로 인도 3,000여년의 역사 동안 브라만이 독점적으로 종교와 교육 그리고 지식과 정보 즉 언론을 장악하여 주도한 집단으로서 자신들의 특권을 보전하고 선주민으로부터 자신들의 혈통과 기득권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모든 개혁과 혁명의 사상은 종교와 교육과 언론을 통하여 발아․ 성장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신념과 열정과 의지를 형성하는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도 인도에서는 브라만이 이 모든 채널을 장악하여 변화를 원천적으로 차단․봉쇄하였으니 어떻게 변혁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브라만 지상주의가 흔들리고 불교를 비롯한 새로운 신앙 체계가 나타났을 때도, 왕권이 강화된 통일 왕조시대에도, 무슬림이 통치하던 시절에도, 영국의 식민 통치 시대에도 브라만들은 강력한 율법교사와 사제, 찬양자와 고문, 협력자와 지지자로서, 각종 전문 지식인과 사업가로 재빠른 변신과 타협을 시도하여 자신들의 생존과 영속성을 과시했다. 1991년 브라만의 인구는 약 4천만 명이었다. 당시 총인구가 8억 5천만 명 정도였으니 5퍼센트도 채 안되는 그들이 나머지 인구를 좌우한 것이다.

인도의 언론인 쿠샨트 씽이 1990년 《선데이》지에 쓴 기사를 인용하면, 관보에 기재된 관직의 70퍼센트가 브라만의 차지였다. 부차관급 이상의 고위직 500명 중 310명, 대법관 16명 중 9명, 주 수상 26명 중 19명, 주지사 27명 중 13명이 그 계층이었으며 대사 140명 중 58명, 대학 총장 98명 중 50명이 브라만이었다. 관직이 낮을수록 비율이 더 높아져서 군수 438명 중 250명, 행정관 3,300명 중 2,376명이 브라만이었으며 국회 하원의원 530명 중 190명, 상원 244명 중 89명이 브라만 출신이었다. 교직, 의료직, 법률직 등의 분야 역시 그들의 무대였다.

3,000여년의 인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여 한 번도 상위 카스트로서 기득권을 잃은 적이 없는 브라만들이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개혁의 통로를 다 장악하고 있는 현대 인도사회에서 굳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카스트 제도 해체를 자발적으로 시도하겠는가? 결코 아니다. 달릿들을 비롯한 하위계급의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투쟁하지 않는 한 브라만들은 여전히 인간의 불평등과 빈곤, 죄악과 구원, 불행과 고통의 문제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윤회와 업사상, 청정과 부정의 사상으로 민중들을 지속적으로 미혹하고 세뇌시킬 것이다. 그들은 제 아무리 다른 직업에 종사를 해도 브라만 의식을 잃지 않는다. 카스트의 정점으로서 전통을 고수하며 정의, 평화, 평등, 자유, 복지 세계를 지향하는 역사의 흐름을 무시하며 인도를 힌두스탄(힌두들의 땅)이라 부르며 힌두교를 믿는 것을 애국으로 선도하며 자신들의 영원한 사제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달릿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셨고 이제 카스트 제도에 의해 억압당했던 사람들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하였으므로, 그 날 ! 그 구원과 해방의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옥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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