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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귀태(鬼胎)인가? (2)<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6.05.24 10:43

박정희의 종교 「힘」(1)

“1 사람들이 땅위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로 아내를 삼았다 3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다. 4 그 무렵에, 그 후에도 얼마동안, 땅위에는 네피림이라 하는 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옛날에 있던 용사들로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창세기 6:1~4)

“11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있었다. 12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있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 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창세기 6:11-13)

박정희는 힘을 믿는 자였다. 힘, 그것은 박정희의 종교였다. 자신의 불행도, 가정, 가족의 불행도, 심지어는 조국(?)의 불행도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힘이 없다는 것. 그래서 그의 꿈은 힘을 기르는 것, 힘을 갖는 것이었다. 힘이 있어서만 상대방을 장악할 수 있고 이끌어 줄 수 있고 밀어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때문에 그의 생각 속, 그의 일기 속, 그의 사전 속에 ‘함께’란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生) 속에 공존(共存)이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는 생의 최고의 가치가 <아가페>에 있다는 사실에 형편없이 무지한 자였다. 

힘? 힘이야 말로 망할 자의 철학이라는 사실을 그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때문에 작은 자와 함께 작은 자로, 약한 자와 함께 약한 자로 사는 것이 <참 삶>이라는 절대 진리를 알 수가 없었다. 민중으로 사는 것이야 말로 민중을 섬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그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죄의 씨, 「네피림」

이 글머리의 창세기 6:1-4, 11-13절 기사는 ‘죄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다. 
태초의 죄가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땅 위에 사람이 늘어가면서 딸들이 났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대로 아내를 삼았다는 것이고, 거기서 난 자식들을 네피림이라 했는데, 이 네피림을 죄의 자식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1962년 개역초판에는 ‘범과’ 하였음이라 했다. (6장3절 난하)

죄의 자식들, 범과의 결과로 난 자식들이 <네피림>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영(靈 Spirit)을 거두시며, 내 영이 이제 이후론 영원히 사람 속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영원히 사람을 떠나게 한 이 네피림, 네피림 세대…….

하나님으로 그의 영을 사람에게서 영원히 거두어버리게 한 이 네피림! 그 네피림의 실체가 바로 힘이라는 것이다. 네피림이란 거인(巨人 giant)을 뜻한다. 그것은 어원이 분명치 않은 히브리말을 그대로 써 내려온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아직도 부분적으로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언어학자들의 노력으로 그 어원이 거의 확실히 밝혀지고 있는 편이다. 네피림은 ‘나팔’(Naphal)을 그 어원으로 한다는 것이다. 나팔은 ‘타락하다’, ‘넘어지다’, ‘버려지다’, ‘나눠지다’를 뜻하는데 명사와 공용된다. 네피림은 이말 나팔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뜻은 거인(巨人), 역사(力士), 장사(壯士)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나팔의 파생어인 네피림은 ‘거대한 체구’에 강포(强暴 개역 창6:11)한 인종들로 요약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 같은 거대족들이 하나같이 히브리 족속에 의해 지상에서 축출되는 것으로 성서가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신명기 2:10-13, 20-21, 수11:21, 22, 15:13,14, 민21:33,35)

창세기 6장에 나타나는 ‘네피림 신학’은 참 종교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명명히 증언한다.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했다. 개역의 ‘광포’를 표준 새번역 개정판에서는 ‘무법천지’라 했다. 무법천지라, 무법천지라니?

하늘이 준 법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준 이 법을 거부하며 스스로 법이 된 무리들이 있었다. 소위 ‘힘’을 가진 무리들이었다. 세상은 그들의 것인 듯 했다. 그들이 천하의 법인 듯했다. 성서가 고발하는 바대로 세상은 ‘무법천지’였다!

그랬다. 한국현대사에 특이한 네피림이 있었다. 힘으로 신(神)을 삼은 자가 있었다. 칼의 사람 박정희 말이다. 힘을 신으로 섬기는 그는 칼을 뽑아 들었다. 힘(力)과 칼(刀)은 그 근원을 함께 한다. 

아, 세계사(世界史)의 ‘날빛’으로 불러낸 이땅(韓國史)에 칼춤의 광인이 있었다고야……. 이상스러우리만큼 박정희는 코 흘리게 때부터 이기기를 다투었다. 씨름에서나 싸움에서나 그는 이겨야만 하는 자였다. 박정희의 연구가(?)들은 한결같이 박정희의 이 지고는 못사는 성미를 예찬한다. 그 가난했던 한국을, 한국민족을 더 할 수 없이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세계사의 도상에 ‘내노라’서게 한 것은 바로 이 같은 박정희의 불퇴전의 성정(性情)이었다. 

대구 사범 시절의 박정희 

구미 보통학교시절 박정희의 끝장 보기 씨름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터이고, 그 이후의 대구사범시절, 만주군관학교, 일본군사관학교로 이어지는 그의 힘을 위한 순례(?)는 쉴 줄을 몰랐다. 아마도 박정희의 ‘힘’의 추구는 저의 맹목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는 사상(思想), 인생(人生), 철학(哲學)같은 것에는 처음부터 외인이었다. 조국도, 민족도 그에게는 철저히 허상이었다. 힘, 그저 힘이었다. ‘힘 있으면 살고 힘없으면 죽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가 얼마나 힘에 굶주린 냉혈한(冷血漢)이었던가를 증언하는 사실이 전해진다.

소위 ‘비로봉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가 대구사범 3학년 때의 일이다. 3학년 전체가 금강산 수학여행을 하게 되었다. 금강산 비로봉에 일본인이 지어 경영하는 호텔이 있었다. ‘비로봉’ 이름 그대로 ‘비로봉호텔’이라했다. 당시 사범학교의 규율이란 군관학교에 못지않았다. 당시대구사범의 선임교관은 아리카와(有川). 일본군의 현역 육군대령이었는데, 교련시간에는 강도 높은 군사훈련으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이 훈련에서 박정희는 언제나 특상의 대상이었다. 일반학과는 꼴찌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교련시간의 군사훈련엔 선두주자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구 사범 시절의 박정희

어쨌든 병영 같은 학교생활을 벗어나 모처럼의 수학여행을 온 학년이 떼 지어 오른 금강산 비로봉의 아름대운 풍경과, 생기를 몰아오는 듯 하는 하늘 바람결이 더 할 수 없이 좋았다. 조국과 민족혼을 일으켜주는 듯도 했다. 아무리 사범교육이 황국신민의 육성을 위해서라 해도, 교육의 정점에 ‘천황에의 절대숭배’가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푸른 하늘, 푸른 산, 산 숨 같은 바람결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조선의 혼’들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어떻게 알려진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내일 금강산 곳곳의 관광이 있을 텐데, 지참하게 될 도시락이 일본학생의 것과 조선학생의 것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때 조선학생반장이 이정찬(후에 동국국교교장역임, 96년 작고)이었는데, 배정된 각방의 실장들을 모아 이 소문이 사실일 경우 “우리는 내일 아침 호텔 출발 시 정문 앞에서 도시락을 일시에 땅 바닥에 패대기쳐 버리자”고 결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거사계획이 인솔교사와 교무주임에게 밤사이 보고가 되어 주모급 학생들이 불려가게 되었고, “만일 실제로 그 같은 행위가 발생할 경우 학교에서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통첩성 경고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제까지 학교생활에 그저 조용히만 지내오던 학생들이 그 중론을 이끌게 된 것이다. 두려워말자는 것이었다. 정학을 당하게 되면 당하자는 것이었다. “세상에 밥에 차이가 있다니 말이 되느냐?”, “밥 가지고 장난치는 게 될 말이냐?”했다. 이튿날 아침, 가히 그것은 혁명이었다. 딱 한 사람 제외하고, 모든 학생들의 도시락을 호텔 앞마당에 패대기쳐 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 다시 도시락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는 지라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도시락 없이 산엘 올랐다. 신나는 하루를 기대했던 학생들로서는 심히 언짢은 날이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이상스럽게 가슴 저 밑에서 피어 오로는 기혼(氣昏)은 더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 점심시간 이 수학여행에 참여했던 대구 사범 제 4기 3학년 학생들은 참으로 희한한 꼴을 구경해야 했다. 조선 학생들은 그 누구도 점심 도시락이 없어 굶어야 하는데, 3학년 학생 중 유일하게 도시락을 버리지 않았던 한 학생이 있었다. 게다가 그 학생은 바로 일본인 교무주임과 역시 일본인 선생사이에서 아주 태연히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듯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박정희였다. 동료들은 쑥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거 좀 이상한 놈 아냐? 저거 친일파 아냐?”
이 일로 유만식 반장 등 4명이 정학을 당해야 했다.

“박정희,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아…….”

급우들과의 교제는 물론 대화도 없이, 세상에 대한 큰 불평덩이를 품은 듯 그저 홀로 있기를 계속하는 박정희였지만 이미 알려진 대로 ‘교련’ 시간이 오면 전혀 다른 박정희였다. 그를 쳐다보는 모든 급우들이 ‘놀랍다’, ‘대단하다’ 거나, ‘천하에 못된 놈’, ‘되다가 덜 된 놈’이라면서 기이히 여겼다. 그러나 대체적인 인식들은, ‘정희, 저거 아무래도 방향 잘못 된 거야’였다. 특히 대구사범 4기회(士氣會) 회장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이득우’ 같은 이들이 그랬다.

조선인 학생들 특히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에겐 예외의 즐거운 날이 있기도 했다. 주말이나 공휴일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는 때가 더러 있었다. 학교에서는 엄금하는 일이었지만 때로는 막걸리에 된장, 고추장, 마늘등으로 술자리를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선배학년들의 열띤 조선사(朝鮮史)의 웅변 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한번도 이 같은 ‘우리만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15명을 1개조로 하는 악단의 대장, 사격반의 반장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우리만의 시간’으로 민족혼을 부르고 있을 때 박정희는 열심히 나팔연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연습하는 노래는 일본의 군가였다.

“박정희는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았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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