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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메시아인가?<교회개혁 담론투쟁 : 한국교회와 메시아니즘>
신익상 | 승인 2016.05.26 11:10
김봉준 <의병십자가>

지금 떠돌고 있는 것은 맑스라는 이름의 유령만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민중의 유효기간 만료를 말하고 있는 이때를 비웃기라도 하듯 민중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이 유령은 병든 제도 기독교가 자신을 정당화하고 변호하고자 애써온 시간들을 일순간에 삼켜버리려는 듯 ‘천국 시민’이라는 기만적 주술을 뒤흔들고 있다. 처음 프랑스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돈과 힘 좀 있는 사람들은 민중에게 시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민중이 자신들의 처지를 잊어버리도록 시도하지만, 민중은 한 번도 시민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믿는가?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민중의 운명은 신앙에 내몰려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민중은 메시아인가? 민중 신학이 이미 오래 전에 묻고 답했던 이 질문이 오늘날 제도권 신학의 딜레마 곳곳을 배회한다. 교회 내에서 민중의 흔적을 지우는데 열심인 곳마다, 이미 종말이 완성되고 천국이 임한 공간인 것처럼 디스플레이 된 ‘성전’ 구석구석마다, 민중은 메시아 아니냐는 물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메시아는 십자가와 부활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십자가는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면, 부활은 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 메시아에겐 현실과 현실 극복이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상태로 겹쳐있다. 민중 메시아론은 “민중은 메시아다”라는 선언 속에서 이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민중은 “역사의 주체가 아닌 실패한 낙오자나 연민의 대상으로 간주”1)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늘 억눌리고 빼앗김을 당하는 존재”2)다. 그런데 민중신학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민중은 자기초월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에서 민중은 구조적 억압에 의해 억눌린 자들이자 이 억압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민중은 정확하게 현실태 — 구조적 억압의 현실을 폭로하는 피억압자라는 점에서 — 와 잠재태 — 구조적 억압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 의 중첩이라는 것으로, 이러한 민중이 메시아인 한 메시아도 이러한 이중구조를 공유한다. 

서남동

하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어 온 것은 설사 민중과 메시아가 서로 같은 이중구조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민중이 메시아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서남동은 ‘합류’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민중이 메시아임을 더욱 강하게 천명했다. 민중은 신과 역사의 합류이며 기독교의 원점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3) 그런데 서남동 자신의 직접적인 표현, “기독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국교회의 ‘신의 선교’ 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는 것”4)이라는 말은 이 ‘합류’의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신의 선교가 기독교의 민중사와 한국의 민중사의 합류라면, 이 ‘합류’는 역사[민중사] 내적인 초월[신의 선교] 자체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 또한 역사 내적인 초월 자체다. 

이 말의 의미를 서남동은 “메시아는 고난 받는 이웃으로 화신(化身)해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이 메시아입니다.”5)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민중이 메시아인 이유는 민중의 역사적 성격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민중의 초월적 성격에 있는 것도 아닌, 그 교차적 성격 때문이다. 다만 이 교차는 철저하게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실태다. 게다가 그 초월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가능성이 아니라 그 안에서 폭발하여 분출되는 가능성으로서의 자기초월인 까닭에 잠재태다. 민중 메시아론은 성육신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초월의 의미를 철저하게 역사 내재적인 것으로 읽는다는 점에서 메시아라는 말을 급진적으로 일반화한다. 안병무의 ‘사건(event)’은 이 말이 갖는 급진성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마가복음의 오클로스가 곧 민중임을 간파하고 이내 오클로스를 예수로서 재발견했다.6) 김희헌이 지적하듯 그는 “예수와 오클로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연속성’에 관심”7)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연속성을 밝히는 말이 바로 ‘사건’인데, ‘사건’은 맥락적・계기적・관계적이기 때문에 예수의 삶이 ‘사건’이라면 ‘예수사건’ 또한 시공간의 일정 영역을 점하는 특정 계기, 그러나 다른 사건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실재성이 드러나는 맥락적 계기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수­사건의 특수한 계기, 예컨대 부활­사건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치려면, 오직 예수­사건의 민중적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오늘의 구체적 사건을 매개로 해야 한다. 그리하여 안병무는 그리스도­사건이 역사적 예수에게만 유일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역사 속에서 ‘민중­사건’을 통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8)

김봉준 <해방의 십자가>

그렇다면 민중신학이 메시아 개념을 급진적으로 일반화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명확해진다. 예수를 수식하고 있는 ‘메시아’라는 말은 예수의 유일회적이고 비시간적인 초월성을 설명하는 신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메시아는 억압받는 민중이 자기를 초월해가는 역사 내적 과정, 예수가 민중의 내부에서 민중이 처한 구조적 억압의 현실을 민중으로서 초극해나갔던 과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메시아란 역사의 일점인 예수의 삶만을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존재론적 지시어가 아니라, 역사의 매 계기마다 민중적 주체들에 의해 실천되는 자기초월의 과정을 나타내는 관계적 지시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신학에 의해서 메시아 개념은 역사적 유일회성이 탈각되고 역사의 매 계기마다 민중이 실현해 가는 자기 초월성으로서의 역사 내적 역량을 뜻하는 것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민중은 메시아다.” 이 선언은 민중의 잠재적 역량을 메시아를 통해 지지할 뿐만 아니라 메시아의 역사적 현실성을 민중을 통해 지지하는 방식으로 “예수는 메시아다.”라는 기독교의 전통적 신앙고백을 급진적으로 일반화한다. 예수가 민중인 만큼 민중은 예수인 것이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민중 메시아론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메시아란 역사의 한 점에서 유일회적으로 완결된 존재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또한 메시아란 역사 밖에서 진입해 들어오는 초월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메시아란, 계기적으로 발생하는 맥락적 사건으로서 현실과 현실 초극이 교차하며 중첩되는 역사 내재적 운동을 지시하는 말이다. 더하여, 이러한 운동이 곧 민중인 한, 민중 또한 특정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매 계기마다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메시아는 그 명사적 표현형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에 있어서는 서술적이다. 메시아는 언제나 ‘메시아적’이며, 이런 의미에서 민중은 메시아다.

<각주 설명>

(1) 김희헌, 『민중신학과 범재신론』 (서울: 너의오월, 2014), 27.
(2) Ibid., 25.
(3) Ibid., 72. 참조.
(4) 서남동, “두 이야기의 합류,” 『서남동의 철학: 민중신학에 이르다』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3), 214.
(5)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서울: 한길사, 1983), 217.
(6)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서울: 한길사, 1993), 176-7. 참조.
(7) 김희헌, 『민중신학과 범재신론』, 67.
(8)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59, 104; 김희헌, 『민중신학과 범재신론』, 69.에서 재인용

 

<필자 소개>

 

   
 
신익상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감리교신학대학교 박사원에서 종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과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그리고 변선환아키브를 중심으로 학술활동을 하면서 감리교신학대학교, 협성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신학과 과학의 대화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이 해방적인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NCCK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KCRP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으로서 종교의 사회적 책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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