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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연구소] 하나님만을 택하자 (열왕기상 18:20-21, 30-39)<말씀의 잔치>
이금식 목사(광주예닮교회) | 승인 2016.05.26 14:25

열왕기상 18:20-21, 30-39
하나님만을 택하자
이금식 목사(광주예닮교회)

신앙생활의 승리는 어느 순간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에 성공하면 하나님 나라가 전진하지만 선택에 실패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멈추고 퇴보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은 영적전쟁의 고지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듯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16-22)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두시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이 살기 위해서 생명과 복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서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

우리의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서 다른 인생이 펼쳐집니다. 생명과 복을 선택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복을 누리고 사망과 화를 선택하면 사망과 화의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선택이 인생의 색깔을 바꿉니다. 우리의 선택이 또 다른 내일을 결정합니다. 심지어 죽고 사는 문제가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열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1-42).

우리에게는 매일 매일 산더미 같은 일들이 밀려옵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분주한 일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마르다처럼 급한 일들을 처리하는 일에 분주할 것이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선택하면 좋은 것을 택했다는 주님의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처럼 이것저것 여러 가지의 분주한 일들에 빼앗겨 주님 앞에 앉는 일을 게을리 하고 주님의 말씀에 마음과 뜻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일을 줄이라는 주님을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선택은 신앙생활의 승리를 이끌어 오지만 마르다의 선택은 영적인 전선은 후퇴를 초래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싸움은 선택의 싸움입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지, 여러 가지의 분주한 일들을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전쟁은 선택의 싸움입니다. 아무리 목이 터지도록 “마귀야 떠나 가라”고 외쳐도 세상을 선택하고 돈을 선택하고 죄와 욕망을 선택하면 그는 마귀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목이 터지도록 외친 시간들이 아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의 힘은 선택에 있는 것이지 의미 없는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본질에 따라 우리의 선택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변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가치에 따라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는 나의 말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됩니다. 하나님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우선순위로 정하는 것을 우리는 좋은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중에서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베드로처럼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갈멜산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려도 안 됩니다. 바알과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만이 오직 유일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때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구하고 하나님만을 선택할 때 우리는 갈멜산 위의 백성들처럼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다”고 선포하며 외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을 하나님의 일보다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 하는 것은 사단을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고 후퇴하게 됩니다.

영적전쟁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지 바알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바알을 선택하고 육신을 쫓아 지옥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영생에 이를 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 육신을 쫓아갈 것인지 영의 생각을 하면서 영을 따라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육신을 좇는 자들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좇는 자들은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선택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행동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킨 행동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육신의 생각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육신을 쫓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우리를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영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영의 생각이 생명을 선택하고 우리에게 천국을 누리게 한다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선택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절하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모든 선택은 생각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육신의 일을 선택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선택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전진시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 이니라”(렘6:19).

생각의 결과에 따라서 우리는 육신의 선택과 영의 선택사이를 배회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육신의 파멸과 재앙이라는 열매를 딸 수도 있고,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안이라는 열매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의 길을 우리 앞에 놓으시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살기 위해서 생명과 복의 길을 선택하라고 충고하십니다.(신30:1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고를 무시하고 생명과 복보다는 사망과 저주의 길을 선택하고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우상과 짐승과 버러지 형상의 우상들을 쫓아가고, 진리보다는 거짓을 따라가고, 하나님보다는 피조물들을 섬기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인간 최고의 실패이고 비극입니다. 

마귀는 금식중인 예수님을 찾아와 유혹합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옛적에 마귀는 하와를 찾아와 그녀의 귀에 속삭입니다.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열려서 하나님같이 된다.” 마귀의 미혹에 넘어간 하와는 하나님 같이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오늘은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공공연한 비밀을 주님께 알려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에게는 돌을 떡으로 바꿀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생고생하시지 마시고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세요.” 참으로 친절하고 착한 마귀입니다.

사실 주님은 무척 배가 고프시고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그래 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떡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겠다.”

영적인 전쟁은 선택의 싸움입니다. 마귀의 말을 따라서 떡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말씀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떡을 선택하면 배는 부르지만 영은 죽을 것이고 말씀을 선택하면 배는 고프지만 영을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떡으로 살라는 마귀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떡을 선택하면 멸망합니다. 주님처럼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마귀를 향해서 “나는 오늘도 하나님 말씀으로 살겠다”고 선포해야합니다.

또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전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4:5-6)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곳이 아무리 높아도 두려울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주님의 발을 받을 것이고 주님은 조금도 다치거나 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뛰어 내리면 사람들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메시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 없이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쉬운 방법을 거절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4:7) 뛰어내려서 메시야가 되는 방법은 가장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쉬운 방법을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고집스럽게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십니다. 그것은 십자가 없는 영광은 모래위에 짓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속의 죽음이 없이는 영혼이 살아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왕좌에 앉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가장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이것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주님의 선택이십니다.

세 번째로 마귀는 높은 산으로 주님을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8-9)

마귀는 강남 스타일입니다. 그는 큰 손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통 크게 주님을 향해 빅딜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한번만 엎드려 경배하면 세상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굉장한 제안입니다. 주산을 팅기지 않아도 이것은 승산이 있는 거래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택은 간단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9)

“아무리 큰 돈을 줘도 마귀 너 싫어, 아무리 가난하고 고생을 해도 나는 하나님만 좋아.”
예수님의 선택은 배고픈 선택이고 가난한 선택이고 낮아지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하늘의 승리가 있습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 우리가 선택에서 승리할 때 마귀는 우리를 떠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에서 승리할 때 천사는 우리를 찾아와 수종듭니다. 이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우리의 기도가 열납되고 하늘의 축복이 내려옵니다. 마귀는 배고픔 앞에서 떡을 선택하길 원했고, 두려움 앞에서 뛰어내리기를 원했고 물질 앞에 경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떡보다는 말씀으로 살기를 원하셨고, 뛰어내리기 보다는 십자가를 지기 원하셨고, 물질보다는 하나님을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마귀의 그 어떤 유혹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향한 우선순위를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이 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날이 되면 주님께서 선악간에 행위를 따라서 우리를 양과 염소로 분별하시고 천국과 지옥으로 우리를 가르실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요청할 겁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주님이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고 주님과 함께 떡과 잔도 나누었습니다.주님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간절한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만 천국은 들어갈 수 있단다.”(마7:21)

그들은 주님을 알았지만 심판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능력이 없어서 주님께 거절당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께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능력은 있었지만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일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법사에 감사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해서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할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선택하겠다고 결정한 것처럼 우리가 오늘 선택해야하는 결정입니다. 엘리야가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당연한 외침입니다.

마귀는 오늘도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에게 우울함을 주고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으로 찾아올 겁니다. 또 걱정과 한숨 근심과 염려가 단골손님처럼 우리들을 방문하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항상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더 어려운 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힘들기 때문에 좁은 문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바알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심”을 소리쳐 부르며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속에 거하시길 축원합니다. 

이금식 목사(광주예닮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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