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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연구소] 기초를 바로 세워야한다 (갈라디아서 1:1-12)<말씀의 잔치>
정인구 목사(예인교회) | 승인 2016.05.26 14:33

갈라디아서 1:1-12
기초를 바로 세워야한다
정인구 목사(예인교회)

갈라디아서를 가지고 오래 전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빠짐없이 설교를 했고 이를 위해 사전에 한동안 갈라디아서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갈라디아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때 첫 설교가 바로 오늘 본문이 되는 부분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 수정과 가감 없이 그대로 설교를 올려본다. 과거의 기억과 생각에 지금도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며 검토했고 그를 토대로 큰 수정 없이 전문을 올려본다. 별다른 성서해설 없이 막바로 설교 전문을 올려보려 한다.

갈라디아서의 첫 설교의 제목은 “기초를 바로 세워야한다”라는 제목이었다. 전체적으로 설교할 때의 큰 울타리는 다른 복음은 없다는 오직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필자도 지금 하는 요한계시록 강해를 끝나는 내년 상반기쯤에 갈라디아서를 설교해 볼 계획이다.

기초를 바로 세워야한다

교회의 기초를 요즘은 무엇으로 합니까?
참된 교회의 기초는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반이 어디여야 합니까? - 하나님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죄사함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돼야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직이 어디서 왔습니까? 교회나 단체 대리자를 통해 받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겁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서 올까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신앙은 우리 조상이나 선배, 이웃을 보고 물려받는 게 아닙니다. 그들을 보고 배울 수는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이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믿음 생활을 해도 자기들 안에 내세울만한 게 없었습니다. 자랑거리가 없었죠. 나는 며칠 금식했다. 봉사했다. 선교했다. 내세울 게 많아야하는데 없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자기만족이 없었습니다. 자랑할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사실 갈라디아교회의 교인들은 믿음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내가 내세울만한 게있어야 내 믿음이 바로 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란 무엇일까요? 아무 자격이 없는 존재에게 하나님이 아무 대가 없이 베푸는 것. 이게 은혜입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은 흔들립니다. 믿음은 오직 푯대만을 바라보고 가는 겁니다. 목표만보고 가는 겁니다. 장장 반세기를 세계 최고층의 건물로 유명해진 건물이 있습니다. 미국 맨하탄에 있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미국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들을 기념하는 102층의 건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백 층에 높이도 수백 미터 정도가 되는 초고층 건물이 세계의 여러 곳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건물도 높아지고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기술이면 사실은 200층에 800미터 정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런 건물을 지으면서 가장 중요한 게 있습니다. 설계도 중요하고 재료도 중요하지만 그 기초가 어떠냐에 따라서 건물이 지어지고 못 지어지기도 한답니다.

건물의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은 기울기도하고 금이 가기도 합니다.
건물의 기초가 바르지 않으면 건물이 금이 가고 기울기도하고 결국은 해체해서 다시 지어야 합니다. 교회도 그 신앙의 기초가 바르지 않으면 때로는 어느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교회 전체가 그 신앙을 잃고 타락하기도 합니다.

지난 92년도에 다미선교회라는 선교회가 우리나라를 완전히 휩쓴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다미선교회로 떠나갔습니다. 그런가하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등 다른 여러 이단에 빠집니다. 왜 이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자기 믿음의 기초가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믿음이란 이름으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소리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기초가 없는 거죠. 절에 가서도 예불 잘 드리고 석가탄신일 축하한다고 프랑카드 붙이고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오가면서 신앙생활을 나눠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는 칭찬받습니다. 참 신사적이다라고... 방송에도 나오죠. 신문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건 믿음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거죠. 가면 쓰고 나도 믿음 있어요라고 속이는 겁니다. 우리 믿음이 어떤 믿음이 돼야합니까? “우리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반석 같은 믿음이 돼야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렇게 믿음의 기초가 없는 사람들이 유대교의 율법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들이 아니었습니다. 갈라디아지방에 사는 이방인들이 사도바울의 전도로 말미암아 회심하고 복음을 믿고 생긴 교회들입니다. 갈라디아 지방에 처음 복음이 전해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맛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복음을 영접하고 아무 대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보니 그들에게는 뭔가 허전한 것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처음에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고 기독교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지만 유대교의 율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늘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율법에 기웃거렸지만 유대교는 갈라디아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기에 버림받은 백성들이기에 유대인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이들은 모두 회심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습니다. 아마도 누구보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잘 구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유대교는 자기들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이지만 기독교는 자기들을 받아들여서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었기에 그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만 했고 할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함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는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차이를 잘 몰랐습니다. 수백 년 믿어온 것과 이제 얼마 안 된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신뢰가 가겠습니까?

또 도대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라는데 성령은 눈에 보이지를 않습니다. 복음을 믿으라하는데 이것도 눈에 안보입니다. 중심으로 회개하라는데 이것도 여전히 어느 정도 회개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얼마만큼 하면 성령이 보인다든지 성경을 어느 정도 공부하면 복음을 믿을 수 있다든지 구체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중심으로 회개하라 했는데 도대체 얼마만큼 울고 금식해야 중심으로 회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는 그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루에 세 번 정해놓고 하고 금식은 일주일에 두 번하고 성경은 얼마를 보고 음식은 뭘 먹고 뭐는 먹어서는 안 되고... 그 구체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도대체 기독교는 그 끝이 안보입니다. 얼마만큼 믿어야할지 기도해야할지 아무리 수고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이정도면 됐다 싶은 게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자랑할 게 없습니다.
그래서 뭔가 눈에 보이는 것 자랑할만한 게 있는 유대교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자랑할만한 것, 눈에 보이는 것,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은 쏠려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1.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1400만의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개신교 850만 카돌릭 550만명. 그런데 왜 그 1400만의 기독교인들이 있는 교회가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세간에 수많은 입담에 오르내립니까? 수년전 신문을 보니 몇 년 전 옷 로비 사건의 핵심이 누구인지를 들춰내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큰 교회의 권사입입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그런 세상의 정치사건에 휘말려서 감옥까지 가야만 합니까?

이 사람들이 법정에 서서 증언할 때 이들은 한결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이들의 문제가 뭔가요? 말은 항상 하나님을 앞세우지만 정작 그들 속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잘될까? 어떻게 하면 더 출세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영향력을 미쳐서 사람들에게 빛나 보일까? 이런 생각만이 가득차 있던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3절 말씀을 보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를 쫒아” 하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쫒아가는 생활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리스도를 쫒아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푯대를 향해가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목표만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수많은 자랑거리들이 있습니다. 내 자녀의 잘됨, 건강함, 부유함, 지혜와 지식들, 뼈대있는 집안임을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가는 믿음의 귀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깨달아야합니다.

수 년 전 국내의 모기업 사원들에게 그 회사에서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했습니다. 일이천만 원 정도의 보너스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보너스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회사는 그해 한 해 동안 상상 할 수 없는 엄청난 이익을 얻었고 그중의 일부를 사원들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했습니다. 포상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적게는 천여 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그 액수가 천차만별입니다. 직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영업이익을 많이 내면 많이 낼수록, 또 연구 실적이 좋아 그 때문에 이득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많은 돈을 포상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 회사의 사원 전체가 다 포상금을 받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포상을 받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같은

회사의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명예퇴직과 해고가 눈앞에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무런 이득도 없고 손해만 있던 부서와 직종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하는 그 말씀은 결코 대가를 따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 은혜와 평강
이 우리의 노력과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의 실적을 따라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은혜는 뭔가 이루어놓은 것 내가 베푼 것이 있어야 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뭔가 베풀지 않아도 그냥 오는 겁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만 내게 넘치도록 부어지는 게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왜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갔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잘 몰라서 뭔가 대가를 치러야 구원을 얻지 하면서 유대교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세상에 기준이 없는 게 어디 있어. 봐 하다못해 운전면허 시험을 봐도 통과점수가 있는데 세상에 기독교는 그런 게 없어요. 체계가 없는 거지. 모름지기 괜찮은 종교라면 뭔가 체계가 있어야지. 우리도 품꾼들에게 품삯을 어떻게 주는데 다 기준이 있잖아. 일찍 온 사람은 제대로 주고 조금 늦으면 사정없이 깎잖아. 일 잘하는 사람을 다음에도 부르고 다시 쓰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않고 구원을 얻는다니 그거 말도 안 되잖아 역시 종교는 유대교가 최고야... 어짜피 하나님도 같은 하나님이고 성경도 같고 그러면 뭔가 확실한 것을 믿어야지. 기독교는 아무래도 어물쩡 넘어가는 것이 수상해. 그리고 그 사람 바울도 사실은 기독교를 탄압하던 사람이잖아.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습니다. 아침 일찍 온 품꾼이나 점심에 온 사람이나 저녁이 다돼서 온 사람이나 하나님은 같은 품삯을 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몰랐던 겁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2000년 전 유대인만을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 오늘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고난당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우리 맘이 흔들리고 주님에 대한 확신이 없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3.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스펄전이라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지 오래지만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설교가로 꼽히는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아주 심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이제껏 자기의 목회생활과 신앙에 대해서조차 회의가 생기고 불심감이 생겼습니다. 잠시 교회를 떠나 시골로 여행을 갔습니다. 어느 시골동네에서 주일을 맞아 조그마한 교회의 맨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전도사님 한분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막 시작하자 스펄전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 저 설교는 내가 한 설굔데. 그 전도사님의 설교는 스펄전 목사가 오래전에 한 유명한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자기설교라 생각하고 집중하지도 않고 설교를 듣다가 그만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는 그 대목에서 크게 감동을 받고 회개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흔들립니까?

혹시 언젠가 정말 주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던가 하고 의심이 가시던 때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정말 내 생활이 바쁘고 힘든데 꼭 교회를 가야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때 날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계속 반복돼왔나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어려움 가운데 있다며 이제는 그만 마침표를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믿음중심으로 성경중심으로 교회의 기초가 다시 세워져야만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말씀위에 바로 세워짐으로 여러분의 가정 모두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렵다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이 사랑을 깨닫고 믿음의 기초를 바로세우면 어떤 환란과 고난이 다가와도 능히 이겨낼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올 한해 우리 안에 바른 믿음의 기초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정인구 목사(예인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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