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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요엘 2:28~32)2016년 5월 29일 성령강림셋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주민교회) | 승인 2016.05.28 20:21

*이번주일 주민교회에서는 인도 선교사 이화랑목사가 설교하기에 이훈삼목사가 2015년 5월 24일 주민교회에서 한 설교를 올립니다.

 

*영상설교: https://www.youtube.com/watch?v=kDbhe8Jjuww

 

1. 과거에서 미래로!

1) 개인적 성향

나는 외향적이기보다는 좀 더 내면적이고, 미래보다는 과거에 좀 더 집착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보다는 과거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더 많다. 내일의 나보다는 오늘의 내가 어떤 과거를 통해 형성된 것인지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이것은 내 타고난 기질이다.
영화도 좀 사실적인 것을 좋아하고 다큐멘터리도 잘 본다. 반면에 과장이 심한 중국 영화나 공상 과학 영화(SF)는 즐기지 않는다. 

2)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과 미래에 대한 관심 고조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과 달리 창의적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창세기이세 말하듯이 인간이 닮았다고 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인류 역사의 변화 속도를 보면 그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즉 인간이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된 이후,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이전의 인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게 되었으며, 20세기 말의 정보 통신, 컴퓨터, 유전자 등의 분야에서 펼쳐지는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프를 보면 어느 지점부터 인류의 발전은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빨라졌으며 갈수록 그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 나는 다가올 미래를 다룬 작품이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만화나 영화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상하여 작품화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3) 이러한 예상의 결과는 어떤가?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질병, 사고, 고통, 주거 등의 문제를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해결하고 지금보다 훨씬 편리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또 한편에서는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면 우리의 미래는 불행과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비관주의적 입장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입장과 디스토피아적 관점 사이에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2. 두려운 미래, 앞으로 30년 후의 세계 전망

1) 가상 세계와 현실의 혼재

“나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스스로도 즐거워서 마음 따라 팔랑팔랑 춤추고 있었다. 깜짝 깨어나니, 이게 웬일, 장주가 아닌가. 그런데, 장주인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자신은 실은 나비이며, 지금 꿈을 꾸고 장주가 되고 있는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모른다.”
장자는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사실은 나비이며 나비가 꾸는 꿈속에서 장자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 비몽사몽이며 현실과 꿈의 구분이 어렵다.
그런데 정말 우리 미래에는 현실과 가상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있다.
대화, 만남, 친구, 접촉 등 모든 것에서 환영이 우리 실생활이 되고 있다. 영화에서나 본 홀로그램이 곧 실제로 상용화될 것이라고 한다.

작은 스마트 폰 단말기에서 재미있는 게임이 벌어지고 그것에 매일 여러 시간을 투자하며 몇 십 만원씩 돈을 쓴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게임에 빠져드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연령층은 10대가 아니라 30대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컴퓨터 게임이 일상이 되면, 우리의 일상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진짜와 가짜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미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품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기계화

메간폭스. 가슴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첨가했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메간 폭스가 사이보그로 분장했다.

예로부터 인간은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소수의 사람들이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몸에 간단한 기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러진 뼈를 나사로 잇는다든지, 인공 관절이나 연골을 만들어 넣는다든지 한다. 우리 교인들도 여러분들이 몸의 건강을 위해 이런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훨씬 건강하고 아프지 않게 생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은 기술이 완전하지 않아서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심장, 신장, 간, 위장 등이 아파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기계 이식을 통해 아프지 않다면 모두가 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이것을 어찌 거부하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기술은 이미 인간의 뇌까지도 기계로 대체하려고 한다. 한번에는 아니지만 인간이 하나씩 기계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 인간 대 로봇

우리는 만화 ‘우주 소년 아톰’을 통해 로봇을 처음 알았다. 그 때는 그냥 재미로만 여겼다. 만화란 원래 상상력의 산물이니까! 그런데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자동차 공장 등에서는 사람을 해직시키고 그 일들을 로봇이 담당한 지 오래다. 가정에서도 최근 가장 잘 팔리는 가전제품 중의 하나가 로봇 청소기다.
운전이나 주차 걱정도 이제 안 해도 될 것이다. 자동차가 계속해서 똑똑해지고 있다. 자기가 알아서 자동적으로 운전하고 주차도 알아서 한다.

문제는 지금은 로봇이 인간의 통제아래 놓여있지만 언젠가는 로봇과 인간이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예언이 전에는 터무니없게 들렸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인간과 닮은 로봇을 만들려는 인간은 끊임없이 쇳덩어리인 로봇에게 인간의 지능과 감성을 지닌 인공지능을 주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로봇이 완성되면 더 이상 로봇은 인간의 지배 아래 눌려있지 않으려 할 것이다. 거기서 목숨 건 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이제까지 인간끼리의 전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의 잔인한 전쟁이 될 것이다.

4) 생명 재창조하는 인간

유전공학의 비약적인 발달은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는 유전자 지도를 얻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유전자를 조작하여 마음대로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세포 하나만 가지면 우량 돼지, 우량 소도 만들고, 선사시대의 공룡이나 맘모스도 되살려낼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인간에게도 해당되어 인간이 자기 구미에 맞는 인간을 창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미래에는 아기를 공장에서 물건 생산하듯이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예측과 가능한 현실은 지금보다 행복한 것인가?

3. 요엘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

1)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예언자의 표정이 몹시 심각하다!

이렇게 암울한 미래를 향해서 별 생각 없이 그냥 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오늘 지금부터 약 2500년쯤에 활동했던 예언자 요엘의 음성을 들려주신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할 것이다.”
철저하게 비관적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변화의 방향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이것을 죄라 규정하며 죄에 대한 결과는 죽음과 파멸이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를 향해서 다급하게 외쳐야 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인간은 겸손하게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교회는 이러한 영감을 모두 상실하였다. 개인적이고 탐욕적인 다수의 교회는 아직도 부자 되고 성공하고 커지는 것에만 관심하며, 소수의 사회 참여적 교회는 눈앞의 다급한 정치사회적 이슈에 매달리기도 힘들어서 더욱 근본적이고 더욱 광범위하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에 깊이 관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과학기술을 재료 삼아 인간의 탐욕과 교만을 충족하기 위해 나아가는 미래 세상은 끔찍하고 두려운 세상이다. 곧 우리는 지금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2) 영의 임재

다가올 크고 두려운 심판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주셨다. 바로 하나님의 신(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모든 죄를 극복하는 능력이다. 지금의 인류 역사의 흐름은 어떤 것으로 제어할 수가 없다. 인간의 도덕, 수련, 절제 이런 것들로 제어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미 그 도를 넘어가 버렸다.

정말 인간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특단의 개입만이 멸망을 향한 지구의 역사를 제어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란 바로 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이다.
정말로 감사한 것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인데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말 긴장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재하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직장, 건강,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등 이런 과제들이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 세계 전체가 곧 직면할 문제에 비하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현실 과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눈을 좀 크게 뜨고 현재 우리의 역사와 곧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면서 성려의 임재를 간구하기 바란다.

3) 초대교회의 비밀 – 성령 강림 

엘 그레코, '성령 강림'(1600년경, 275*127cm,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벨라스케스, 고야와 함께 스페인이 자랑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인 엘 그레코(El Greco)가 성령이 강림하시는 사건을 그렸다.
주님을 사랑하던 이들이 함께 모였다. 그들은 모여서 주님을 회상하며 열심히 기도했다. 교회의 본질은 그렇게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몇 여성들과 함께 사도들이 모여 기도할 때, 하늘에서 성령이 임재하셨다. 갈라진 불꽃 모양의  성령이 각 사람에게 내렸다. 깜짝 놀라 손을 들거나 하늘을 우러르는 사람들….

화면 전반부를 이루는 두 사람은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려 한다. 성령 강림은 충격이며 놀라운 사건이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성령강림을 통해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더 이상 다락방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다. 성령이 임재하자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목청껏 소리쳤다. 그것 때문에 손해보고 감옥에 간다할지라도 외치고 증언했다.

화가는  정면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인물에 자화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 역사적 현장의 증언에 동참하고 있다.

4. 우리 아이들에게

1) 두려운 미래는 먼 미래가 아니다!

인류학자들이 예견하는 두려운 미래 –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고, 인간이 점점 기계로 변하며,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대결할 것이라는 – 는 먼 시기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변화 속도로 가면 대략 2050년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30~40년 후다.
여기 모인 분들 중에 여러 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것이고, 더 많은 이들은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많다. 결코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2) 어린 아이의 눈에 어떤 세상을 비추게 할 것인가?

요즘 우리 누님은 첫 손녀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매형과 누님은 매일 카톡으로 손녀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것 경쟁 중이다. 우리교회도 이런 분들이 있다.
2050년에는 이 아이가 30대 중반이 될 것이다. 한창의 나이이고 사회의 중심축으로 활동할 때이다. 그 시기를 지금 우리가 결정하고 있다.

이 어린아이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 것인가?
우리는 이 아이의 눈에 어떤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인가?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결단해야 한다. 당장의 작은 이익과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자식들에게 끔찍한 미래를 안겨준다면 그것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죄악이다.

3) 그래서 성령의 임재가 절실하다.

내가 나를 제어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세계라는 거대한 흐름을 내가 막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임재하심에 따라 나선다면 우리는 예정된 인류역사의 재앙을 막아낼 수 있다. 성령의 임재는 그래서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성령의 임재를 구하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성령을 기다리고 간절히 구하라. 우리는 정말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

이훈삼 목사(성남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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