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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이수호 칼럼>
이수호 | 승인 2016.05.30 11:20
출처 : 뉴데일리TV

지난 5월 18일은 광주 민주항쟁 36주년 되는 날이었다. 4.13 총선 결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으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네 못 부르네, 합창이냐 제창이냐 하면서 잔뜩 주물러 놓는 바람에, 행사가 오히려 더 긴장감이 높아지고 커졌다. 정말 한심한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보훈처장을, 나무라야 할지 칭찬해야 할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최소한의 상식 수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면 될 걸, 그걸 어기려니 모든 게 힘들어지고 국민들은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광주까진 못 가고 서울 5.18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시청 광장으로 갔다. 36년 전 그날 광주 도청광장도 그날처럼 그랬을까? 무르익은 5월의 맑은 햇살이 광장에 가득했다. 주변 도로가에 심어놓은 꽃들도 만발하여 울긋불긋 고와보였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핏빛 아픔이었다. 그날 행사를 위한 무대는 광장 중앙에 화려하게 마련되어, 검은 옷을 잘 차려입은 정치인 등 양복쟁이들이, 저마다 잘난 척하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시작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무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유성 기업 한광호 열사 분향소는, 외롭게 분향소를 지키는 노동자 몇 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을 뿐 아무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광장 맞은 편 옛 인권위원회 옥상 전광선전탑 위에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2 명이 대법원이 판결한대로 정규직으로 복직 시켜달라는 요구를 걸고, 벌써 340일이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으나, 5.18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그 노동자들은 36년 전 그날처럼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데, 마치 그날의 광주처럼 외롭게 고립되어 있었다.

그날의 광주는 서울 시청광장만이 아니었다.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는 작년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과, 함께하는 국민들이 아직도 모진 목숨을 이어가며 국가폭력에 맞서 처절한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또 삼표 동양시멘트 위장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부가 인정한대로 정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걸고, 삼척 공장 정문 앞에서 309일 째 서울 본사 앞에서 268일 째 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서울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는 225일 째 삼성 직업병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반올림의 농성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또 콜트콜택 노동자들은 몇 년 째 부당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벌이며, 지난 2015년 10월 5일부터는 서울 새누리 당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고,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회사 내 노조파괴 용병 위장취업 저지를 위한 공장 내 농성을 137일 째 벌이고 있었다. 또 군산의 한국지엠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해고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공장 정문 앞에서 325일 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고, 전주의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95일 째 천막농성을 실시하고 있었다.

또 대구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임금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421일 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강원도청에서는 건설노조 강원 건설기계지부 노동자들이, 동계올림픽 공사현장 체불임금 해결을 촉구하며, 27일 째 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은 정당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시청 앞 천막농성을 376일 째 이어가고 있었다. 또 구미 시청에서는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노조설립 한 달 만에 170명을 계약 해지한 외투기업 특혜 구미시청을 항의 농성 중이었고, 금속노조 파나진지회 노동자들은 공장 매각 반대 공장 사수 투쟁을, 영천 공장 앞에서 실시하고 있었고, 발레오만도 노동자들은 2012. 2. 16. 부당한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경주 용강공단 운동장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또 경북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0명이 집단해고 당한데 항의하고 복직을 요구하며, 병원 정문 앞에서 84일 째 농성을 하고 있었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법원 판결대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돌입하고 있었다. 또 부산에서는 홈플러스노조 아시아드지부 노동자 2명이, 노조가입 이유로 부당해고 당한데 대해 항의하며 농성 중에 있었고, 택시지부 한남교통지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위반에 맞서, 회사 앞에서 농성 중에 있었다. 이 밖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부당한 정부와 자본의 폭력에 맞서 그날의 광주처럼 싸우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 속에 기념식은 진행되고 있었다. 국민의례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자며 사회자가 제안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모인 사람들은 1절 외에는 가사를 몰라, 대충 우물우물하거나 눈을 감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종편방송은 이때를 놓칠세라,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는 인사들을 찍기 바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쓴 분으로 알려진 백기완 선생님도, 가사를 몰라 눈 감고 서 있다가 집중 취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기념식 마지막에 다 같이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과 대비시켜 조선일보는 비교해서 보도했단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땐, 백 선생님이 팔뚝질을 하며 열심히 부른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참 치사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 시청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 앞에서는, 전교조 위원장단이 단식 철야농성에 들어가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부당해고 철회 및 직권면직 절차 중단과 차등성과급 반대가 요구사항이었는데, 아직 대법원 판결도 나지 않은 전교조의 법외노조화에 근거하여, 교육부가 전교조 전임상근교사 파견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미복귀 교사로 취급하여, 35명 전원을 직권면직하도록 각 교육청에 지시한데 대해, 항의하고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각 교육청도 교육부의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 따르지 않도록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사립학교 재단은 앞장서서 자기 식구를 잘라내는가 하면, 보수 교육감들도 교육부의 지시를 어길 수 없다며 직권면직을 의결하고 있고, 그 여세를 몰아 교육부는 진보 교육감들을 압박하고 있어, 조직이 큰 타격을 입을 위기감 속에 전교조는 떨고 있었다.

그 35명 중 사립교사인 전교조 본부 부위원장이, 나의 제자여서 더 안타까웠다. 나와 같은 과목인 국어교사인 이 제자는, 내가 전교조 결성과 함께 해고될 때, 마침 군복무 중이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안타깝고 미안했다는데, 이제는 오히려 내 제자가 해고의 위기에 처했는데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1989년 전교조 결성 즈음에 법 해석과 함께 도움도 받으려,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노무현 의원을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변호사인 노무현 의원은 담담하면서도 단호했다.

“선생님, 노동자인 교사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겁니다. 현행 법률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결성하고 법이 뒷받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서 악법은 어겨서 고쳐나가는 게 옳은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교조의 결성은 정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1500명 이상이 일시에 해고됐지만, 결국 법도 만들어지고 복직도 하게 됐다. 사랑하는 제자와 후배들에게 이 말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다.

“지금 전교조가 하고 있는 일은 정당한 일이다. 결국은 법도 바뀌고 복직도 할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크게 단결하여 잘 싸우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도 그날의 광주처럼 민주주의와 생존을 위해 민중들은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다.
기념식의 끝 순서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나도 모르게 주르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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