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등장인물 가운데 베드로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제자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대표로,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많이 또 적극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성서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실수와 실언을 잘하고, 나서기도 잘하며, 때로는 용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맹목적이고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한번 믿고 따르면 끝까지 따라가는 충실한 사람이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의 모습을 보게 된다. 6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모범적이고 충실한 사람이 많다. 질서, 규칙, 명령 등을 잘 지키며 순응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걱정이 많으며 열등감에 잘 빠진다. 스스로 의존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들이 기댈 수 있는 충성스런 타입이다. 

에니어그램 6번 유형인 나는 어려서부터 큰 말썽 없이 자라왔다. 사회에서 정해 놓은 법률적, 도덕적 규범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사회 안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을 밟거나 넘지 않아야 한다는 무의식이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무의식의 무게로 짓눌린 자아가 어느 순간 터져 나오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반항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스프링을 강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르려는 탄성이 강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수께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며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뒤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마가복음 8:31)을 때, 펄쩍 뛰었던 베드로의 모습을 보자. 성서에는 베드로가 “예수께 대들었다”(마태복음 16:22)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균형을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베드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제자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정해 놓은 규율 속에서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예수께서는 자신이 정해 놓은 스승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을 보이고 계셨다. 6번 유형의 베드로는 그런 스승을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 분노하며 대들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충성스럽게 예수를 따랐지만, 이 충성은 예수가 원했던 충성이 아닌 자신이 정한 길 안에서의 ‘맹목적 충성’이었다. 

6번 유형의 격정은 ‘공포’, 즉 ‘두려움’이다. 머리형의 중심인 6번은 혼자 머릿속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걱정하고 근심한다. 특별히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다. 이러한 두려움 안에는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학 시절의 나는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나?”와 같은 걱정을 혼자 떠안고 살았다. 물 위로 걷게 해 달라고 했다가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마태복음 14:30) 된 베드로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며 회의(懷疑)했다. 그 시절의 나는 두려움 속에서 거친 파도와 성난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에 빠져가는 베드로와 같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스스로 만든 번민 속에서 괴로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6번 유형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6번 유형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변화되며 진정한 용기를 덕목으로 갖추게 된다.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할 때, 자신의 존재 중심에서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자신 안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평안한 마음 가운데 용기 있게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에니어그램을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께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근심하는 나에게 기억에 남는 말씀을 해 주셨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믿고 따라가. 그러면 빛이 보일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믿고 따른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정확히는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반발심만 들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한 걸음씩 인도하시며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삶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한 겹, 두 겹 쌓여가고 자라갔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내 내면에 계신 주님의 음성 가운데 찾아오는 평안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복음서 안에서 베드로는 불안정하고 돌출 행동을 잘하는 부족한 제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다른 제자들과 부딪히고 다투며 때로는 예수께 성을 내며 대들기도 하였다. 결국 예수를 부인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런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태복음 16:1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열쇠”(마태복음 16:19)를 주셨다. 부족한 베드로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경험한 베드로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용기로 담대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자신에게 맡기신 교회를 위해 헌신한다. 베드로는 6번 유형답게 제도와 질서를 수호하고 교회를 지키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 전하는 충성스런 사람들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6번 유형의 특징 중 하나가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다. 6번 유형은 자신 속한 공동체에 헌신함으로써 안전이 유지되기를 원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나타나며 건강한 공동체, 제도를 위해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일하게 된다. 6번 유형이 건강해 질수록 자신의 내면 안에서 진정한 안전을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 상호협력을 이루게 된다. 예수께서는 6번 유형이 가진 특징인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알고 계셨으리라. 그래서 변화 될 베드로를 기대하시며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려는 6번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아름답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때는 몰랐는데,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6번 유형의 본능이 나도 모르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가 속한 공동체들에서는 큰 일,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주님께 충성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헌신했다. 어린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지각과 결석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보호받고 있고 소속되어 있다는 안전에 대한 6번의 보이지 않는 요구에서 나왔던 것 같다.    
 
베드로는 결국 주님을 따라 순교하기에 이른다. 성경에는 나타나지 있지 않지만 교회사의 전통 안에서는, 마지막 순간 그리스도와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기를 베드로 스스로 자청했다고 한다. 아마도 예수께 대한 베드로의 충성이 그대로 담겨 있으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주님을 다시 뵐 그날에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기쁨의 칭찬과 함께 주님께서 나를 안아주시고 맞아주시기를 소망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두려움을 넘어선 진정한 용기를 가지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이영진(한양대학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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