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계·교회 칼럼 연재
나는 ‘기센 여자’가 아니올시다!<흐물흐물하게 혹은 말랑말랑하게 교육하기>
김정원 | 승인 2016.06.03 11:14

한국에 오면 그간 방임된 몸뚱이를 돌보고자 병원에 들르곤 한다. 통증과 비용이라는 번민을 몰고 오는 곳이 치과라면, 내 안의 ‘페미니즘적 예민함’이 풀가동 되는 곳은 산부인과이다. 올해로 만 서른 셋이 된 나는, ‘임신이 늦어지는 여성’으로 의사 앞에 서게 된다. 최근 들렀던 산부인과의 의사는 여성이었는데,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나는 그저 간단한 검진을 받으러 간 것뿐이었는데, ‘질문 세례’를 (어김 없이) 받아야만 했다.

“여태 아이를 갖지 않았던 이유가 있나요?”라고 묻는 그녀의 미간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안타까움’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학업 때문이라 간단히 일러주고는 이내 입을 닫았다. 내가 흥미로웠는지 그녀의 질문은 전공에 이어 학업 계획에 관한 것으로까지 이어졌고, 이번 해엔 꼭 임신을 해야 하기에 절대 피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같은 조언을 끝으로 문답을 마쳤다. 

한애규 <거울 앞>- ‘여성’ 혹은 ‘여성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물음을 던지는 한애규의 작품이다. 거울 앞 여자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기센 여자’가 버젓이 거울 앞에 서 있다.

나는 나의 자궁의 처지가 ‘어머니’에 합당한지를 묻기 위해 다리를 벌리고 누운 것이 아니었다. 위내시경을 하듯, 그저 초음파로 자궁의 안녕을 묻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한 마디, “내 자궁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를 외치지 못했던 이유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의사가 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삶을 ‘석연치 않게’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자궁이 있는 여성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라는 억압적 심리가 팽배했던 그 시대가 나쁘지, 그녀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녀는 자발적 선택으로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의 임신이 자발적이고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내게 그토록 불편한 질문 과 조언을 쏟아 붓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의사와의 만남으로 나의 ‘페미니즘적 예민함’이 한 뼘 더 자랐다. 좀 더 생짜로 말하면, ‘페미니즘적 발톱’이라 하겠다. 대개의 경우 그 발톱은 숨겨져 있지만, ‘오빠들, 남자 선배들, 남성 목사들 (늘 그렇듯 모든 남자들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시댁 어르신들 (가부장 제도 안에서의 ‘시댁’이라는 특수성은 여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과 함께 할 경우에 드러나기도 하며 가끔은 할퀴고 싶은 본능을 참느라 애써야 할 때도 있다. 양껏 자란 발톱을 맘껏 휘두르지 못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여하튼 간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 발톱을 휘두르고 싶다면, 단정하고도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예의를 차려가며 불쾌함을 드러내야 한다. 혹시라도 분위기를 망치는 꽉 막히고 ‘기 센’ 여자로 전락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불쾌한 것은 나인데, 그것을 드러내기도 전에 살피고 눈치 봐야 할 것들이 이미 가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발톱은커녕 솜방망이가 따로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늘 솜방망이질을 해가며 살았던 것 같은데, 많은 순간에 ‘기 센’여자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조금 더 예민하고, 약간 더 떠들어 댔으며, 가끔은 ‘나’의 정체성을 밝혔을 뿐인데 말이다. 큰 키와 ‘고집 있게 생긴’ 얼굴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아뿔싸! 아직 ‘할큄질’은 시작도 못했는데, 벌써 ‘기 센 언니’라니…… .  

‘기 센 언니’의 시작을 더듬어 보면, ‘여자가 돼서’ 보다는 ‘여자라고 해서’라는 말을 훨씬 많이 하셨던 울아부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내 인생의 첫 남자, 울아버지는 ‘여성주의’가 무엇인지를, 그러니까 ‘뭣이 중헌지를’ 아는 분이었다. 내 ‘발톱’의 뿌리가 되는 ‘페미니즘적 감수성’은 그에게서 온 것이다. 이후, 많은 ‘반면 교사들’을 지나치다 (간접적으로) 만난 이가 여성학자 정희진이다. 아, 바로 그 정희진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이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 고마운 이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내게 선물하였는데, 얼마 전 개정판이 나온 것을 보니 이제는 진정 고전이 되었나 보다. 그 고마운 이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페미니스트(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규정하는)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신선했고, 신선한 만큼 많은 물음을 남겼다. 재미있게도 그녀가 선물한 ‘페미니즘의 도전’은 그 많은 물음의 신실한 답변이 되어 주었다. 

‘좋은 선생’에게 ‘좋은 선물’을 받았다. 그녀가 책에 남겼던 메시지, ‘천 개의 눈을 가진 활동가가 되기를…’가 마음을 만진다.

‘기 센 언니’에 대한 신실한 답변 하나를 가져와 보자. 

치열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 여성은 불행해야 하는가? … 나이팅게일과 신사임당은 재능과 열정으로 뭉친 ‘권력 지향적’인 여성이었다. 그들은 당시 남성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협상했을 뿐이다.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에 직접 참가하고 싶었지만, 사회의 성역할 고정 관념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자 대신 간호 장교가 되었던 것뿐이다. 신사임당은 자신의 학식과 예술성이 여성이라는 장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매우 분개했고, 그 ‘분풀이’로 임종 직전 남편에게 “내가 죽은 후 재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들 모두 ‘천사’와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있다.

나혜석(1896~1948)과 동시대에 삶을 마감한 화가 이중섭은 말년에 가족과 헤어져 정신분열로 자해를 거듭하다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그러나 이중섭의 죽음은 나혜석처럼 ‘시대를 앞서간 자의 비참한 말로’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으로 여겨진다. … 자기 시대의 지배 규범에 삶을 일치시키기를 거부한 여성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노숙자가 되거나 정신병원에서 죽는다는 신화 ‘나혜석 콤플렉스’는, 잘못은 사회가 아니라 ‘똑똑한 여성’에게 있다는 가부장제 사회의 협박일 뿐이다. 여성들을 겁먹게 하는 것은 나혜석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남성 사회의 해석이다. - 71쪽, 『페미니즘의 도전』 

‘각성된 여성’이, 다시 말해 ‘페미니즘적 발톱’을 가진 여성이 ‘남성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상을 협상해가며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그 오빠’는 알까? “자기주장 강한 여자는 결혼 상대로는 별로야”라고 말하던 ‘그 오빠’ 말이다. “여성차별은 반대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싫다’라고 말하던 그 때 ‘그 오빠’ 말이다. “여자가 칠칠치 못하니 남자들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냐”라고 충고하던 ‘그 언니’ 역시 모를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대단한 공부를 하려고 아이를 미루냐!” 라고 나를 타박하던 ‘그 의사’야 말로 아예 몰랐을 것이다. (이미 정론이 됐듯, 가부장적 언사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그것에서도 부지기수로 발견할 수 있다.)

그 일상의 불편함. 좀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이가 예의를 차려가며 자신의 불편함을 솜방망이질로 호소할 때, 그 수고로움을 눈치채고 실수를 인정해주었으면 참말로 좋겠다. 나는 갈수록 예민해져 가는데, 예민한 나를 담아내지 못하는 사회가 야속할 때가 많다. 더욱이 가장 느리게 변한다는 교회(종교)안에서 나의 예민함이 혹여나 소외로 귀결될까 하여 근심스러울 때도 있다. 나는 ‘보기보다’ 겁이 많고, ‘생긴 거에 비해’ 기가 세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선생’들을 여럿 만나, 다행스럽게도 각성이 됐을 뿐인 것이다. 각성이 별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몸뚱이를 건사하겠다는 의지요, 한두 번 하던 ‘존재 물음’을 네댓 번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의지와 ‘존재 물음’이 혹자의 눈엔 ‘땍땍거리게’ 보이기도 하나보다.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앎이 곧, 고생인 셈이다. 그 고생을, 그 부대낌을 이제는 좀 같이 하자 말하고 싶다. ‘기 센 여자들’의 뻗댐에 불쾌해 하는 것이 아닌, 그녀들의 의도된 충돌에 기꺼이 부딪혀 달라는 것이다. ‘기 센 여자들’이 라는 언담이 가부장제도와 남성중심주의에 얼마나 오염되었는지를 내씹어가며 말이다. 각성되지 않은 이들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는 마치 “다른 렌즈를 착용한 것과 같은 이물감” 같겠지만, 일상을 부대끼는 이들을 줴내깔리게 두는 것은 예수의 뜻도 부처의 뜻도 아닐 것이다. 

가끔 ‘나는 정원언니 같은 ‘기 센 여자 목사’로 살아갈 사람이 못 된다’라고 말하는 여성 후배의 뒷말을 듣게 될 땐-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하지만, 표상이 되는 ‘좋은 선생들’을 보며 심신을 추스른다. 다시 ‘그 오빠, 그 언니’들과 부대끼는 불편한 일상을 살게 될 테지만, 이제는 관둘 수도 없는 일이 돼 버렸다. 드물지만 ‘나 같은 여자’도 아주 가끔은 ‘딱 좋은 신붓감’ 혹은 ‘보호해주고 싶은 여자’라는 얘길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별로 인기 없는 여자로 사는 것이 즐거울 리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존재 물음’을 그치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멈출 수 있으랴. 

여적 할 얘기가 많은 것을 보니, 맺힌 게 많은 모양이다. ‘흐물흐물’하게, ‘말랑말랑’하게 가자던 취지에 좀 어긋났다. 말의 가락이 좀 셌다. 다만 오늘은 독자들이 ‘흐물흐물하고 말랑말랑하게’ 읽어 주길 바라야 하겠다. 그 산부인과 의사에게 ‘페미니즘의 도전’을 택배로 붙일 것 역시 잊지 않아야 하겠다. 

<필자 소개>

김정원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 석사 졸업.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김정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