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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두 얼굴<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 승인 2016.06.22 12:52

국가의 발전과 흥망성쇠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 충분히 채워졌을 때 그 국가는 발전할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서 리더로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나는 그 필요조건을 지도자, 비전의 공유, 국민의 성숙도 그리고 지하자원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공동체를 사랑하고 공동체의 번영과 평화를 위하여 그 안에 있는 다양한 공동체의 조화로운 개발과 성장에 헌신된 통찰력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국가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두 번째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함께 공유하며 추구하는 국가적인 차원의 비전이며 셋째는 비전의 성취를 위해 삶의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의 실력과 성숙도이며 마지막으로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이 되는 것으로 국가 영토 내에 있는 지하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과 시장,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만 있으면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것들이 경제발전을 위한 충분조건이기는 하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을 갖추고도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인도가 정말 아이티 강국입니까?
인도가 세계 경제를 리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까?
인도가 뜨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젠가부터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이런 말들을 종종 듣게 되었다. 이 질문들 속에는 인구의 25%가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반신반의가 숨어 있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인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가능성의 나라가 되어 세계의 선진국으로서 국가의 반열에 설 수 있다는 말인가!

인도는 일찍부터 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아시아의 나라로서 남한의 35배, 한반도의 15배 크기로 북으로는 히말라야산맥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서로는 아라비아해를 끼고 아프리카와 걸프국과 만나며 동으로는 벵골만을 사이에 두고 동남아시아와 만나며 남으로는 벵골만과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동서를 잇는 교량적인 위치에 있는 까닭에 자주 외세에 시달렸고 급기야는 17세기 초부터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 경영을 시작한 영국의 속국이 되어 1877년부터 1947년 까지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독립 이후 인도는 서양식 헌법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국제적으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독자노선을 추구했으며 중국과 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으로 전쟁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인도는 두 차례의 국제적인 유류 파동, 가뭄으로 인한 농업 생산의 감소, 지나친 사회복지비와 군사비 지출로 파탄에 직면하여 관리. 통제 경제를 포기하고 시장 중시의 경제로 전환하여 1991년 국영기업의 민영화, 외자도입 규제의 완화 등의 신경제 정책을 표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향후 10년 인도는 IT산업의 나라라는 인식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로 기록되었으며 앞으로는 중국과 함께 차디아 시대를 열어갈 스타로서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전 세계 기업들이 거대한 시장, 값싼 노동력, 풍부한 자원, 영어 인구가 주는 매력에 끌려서 속속히 모여들고 있는 인도는 과연 세계를 리드해갈 뜨는 나라, 리더의 나라가 될 것인가?

좁은 도로에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 버스, 승용차, 오토바이와 마차까지 한데 어울려 있다. 모두들 자기 갈 길에 바빠서 새치기로 끼어들며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나 시속은 10-20km를 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인크레더블 인디아! 라고 외치며 다양한 공존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어떤 사람들은 인프라가 형편없는 인도의 불편을 견디지 못하며 이런 나라가 무슨 IT강국이냐고 비아냥거린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공간에 존재하는 인도는 결코 인크레더블한 국가도 아니고 인프라가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아침에 운 좋게 IT 강국의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니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 지금에도 인도에는 생업을 다른 것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사이클 릭샤와 마차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카스트가 있고 그 한 편으로 영어와 컴퓨터에 능숙한 100만 명이 넘는 숙련된 IT 기술자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실리콘 밸리에는 750개 이상의 회사가 인도계 미국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30만 명 이상의 인도인들이 IT 기술자로서 일하고 있다. 마부와 소프트 엔지니어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인도라는 거인은 판이하게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편만을 보면서 이것이 진짜 인도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 없다. 양쪽 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여 성공을 열망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생계를 꾸려가는 인도인들이요 인도의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에큐메니칼 코워커로서 인도의 시골마을들을 주로 순회하면서 1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양면을 몸으로 체험한 나는 인도를 환상적으로만 보는 것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시와 시골, 남성과 여성, 발전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양면은 세상 모든 나라에 보편적으로 있는 문제다. 그러나 인도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진다. 상위계급과 달릿 (불가촉 천민)의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 쓰레기와 끊이지 않는 소음이다. 인도는 도시나 시골 어디를 가든지 사람, 쓰레기, 소음을 피할 길이 없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도시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쳐 도시는 나날이 쇄신되고 있다.  

1994년 보름의 시간으로 인도를 방문하여 북부 인도, 중부 인도, 동북인도를 돌아보았고 1997년부터 인도에서 나그네로 살게 된 나는 인도의 변화 아니 도시의 변화를 피부로 실감한다. 

90년대의 인도의 도시는 폭발하는 인구에 미치지 못하는 전력, 식수의 문제로 단전과 단수가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수도가 정비되지 않아서 비가 오면 도시는 금 방 물바다가 되었고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되지 않아서 오토 릭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도로는 소에게 점령당하여서 차가 소를 피해 다녀야 했다. 시내나 시외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도로가 좋지 않아서 여행은 항상 고되었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어디를 가든지 공중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이 방문과 여행의 목적보다도 더 급선무였다. 또한 거리의 집 없는 사람들과 슬럼가는 주택문제와 실업문제는 빈부 격차와 카스트 문제를 여실하게 보여 주었으며 스트릿 피플들의 임시 텐트, 구걸하는 어린이들과 나환자들은 도시의 일상이었다. 도시라고 해고 쇼핑 공간이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 없었고 소매업 위주의 작은 샵들이 즐비하였으며 판매되는 물건의 품질도 좋지 않았다. 음식점도 부유층의 공간과 보통 사람들의 공간이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도시에 거주하는 한 매연과 쓰레기가 주는 두통과 불유쾌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아무리 대도시라할지라도 나그네로서 인도에서의 삶은 불편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 여서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와 시골의 두 얼굴

그러나 오늘날 도시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도시의 색깔도 달라졌다. 도시의 움직임의 질감도 달라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그냥 한 자리 모여서 구더기처럼 바글거렸으나 지금 도시는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합집산을 하고 있다. 

이제 전기와 상수도가 제법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단절이 되어도 곧 회복되며 생활의 불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하수도 정비 부분은 취약한 것이 사실이고 폭우가 쏟아지면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제는 물의 범람이 자연적으로 해결될 때 까지 방치하지 않고 인력을 동원하여 조속한 복구를 실시하고 있다. 

대중교통의 수단인 길들이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뉴델리의 경우 1998년부터 시작된 델리메트로 프로젝으로 지하철이 건설되어 여러 개의 노선이 운행되어 고질적인 교통난을 해소하고 있는 중에 있고 첸나이는 도시 철도가 계속 건설 중에 있고 노선이 확장 중에 있으며 시내 도로 확장과 산업화 도로, 외곽 도로의 건설로 부산하다. 캘커타(꼴까따)는 인도에서 가정 먼저 지하철을 가진 도시이며 지속적으로 노선이 확장 중에 있다. 도로망 구축에 있어서 다운타운의 도로 확장보다 인구 분산을 위한 신도시 건설과 도로, 전기 등등의 인프라가 정비된 공업단지 솔트레이크 일렉트로닉스 시티, 두르가푸르 소프트웨어 파크와 하루디이항구 주변의 석유화학단지 조성에 우선 관심이 쏠려 있다. 오딧사의 수도인 부바네스바하는 외항인 쿠장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를 왕복 5차선으로 건설 중에 있다. 지금 인도는 어느 도시를 가든지 도로 건설로 소란하며 시간별 차량 정체를 목도하게 된다. 

도로의 질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나는 시골교회를 순회하기 위해서 첸나이에서 하이드라바드행 노선과 벵갈로르행 산업도로노선을 자주 이용한다. 처음에는 시골에 갈 때 마다 요철이 심한 도로 사정 때문에 매 두 시간 마다 차와 사람이 쉬어야 했으며 돌아오면 여행의 후유증으로 며칠 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2005년 안식년을 마치고 온 나는 산업도로들과 주와 주를 잇는 국도가 새롭게 정비되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로 폭이 넓어졌고 도로면이 이전보다 평탄해졌으며 화장실을 갖춘 휴게소도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주택문제와 실업문제는 11억 인구의 인도의 영원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두 문제에 관한한 완전한 해결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도가 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계획안을 가지고 건설하는 신도시현장과 산업단지들을 자주 보게 된다. 뉴델리와 캘커타, 마드라스와 하이드라바드의 외곽에 개발되고 있는 신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단지의 방대함과 아파트 건축 규모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특별히 마드라스에서 벵갈로르의 호수로에 이르는 300여 km의 도로 양쪽에 입주할 공장을 기다리는 산업단지가 조성되었거나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현대 자동차, 삼성전자, 모토롤라, 세인트 고바인, 노키아, BMW 등등의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이 입주해서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현장에서 새로운 인도가 탄생되고 있었다.

97년 마드라스(첸나이)에는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4-50명에 불과하였으며 그들 대부분이 현대 자동차공장 건축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500명을 넘어서 3,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구성원들과 종사하고 있는 업종도 다양해졌다. 작은 한국인 커뮤니티가 이정도로 성장했으면 더 많은 회사와 공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과 유럽인들, 일본인들 공동체는 얼마나 더 성장했을 것인가? 새롭게 선을 보이고 있는 중국인 공동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시의 변화를 실감하게 만드는 곳은 쾌적한 쇼핑공간의 출현이다. 우리 같은 나그네는 인도 재래시장에 가면 확실한 봉이 된다. 여유를 가지고 상인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나는 정찰제 샵을 선호한다. 그동안은 닐기리 슈퍼마켓과 풋월드 정도가 고작이었으나 지금은 다양한 슈퍼마켓 체인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서 굳이 다운타운으로 가지 않아도 장을 볼 수 있다. 그나마 있는 정찰제 마켓도 독점의 횡포가 심해서 불친절했으며 아무리 많은 물건을 일시에 구입해도 가격할인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특별 세일기간이 생겼고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 다양한 물건들을 일시에 구입하려면 항상 선택의 여지가 없이 스펜서플라자로 가야했는데 요즈음은 대형 쇼핑몰의 출현으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비 패턴의 변화는 엄청나다. 고급소비가 없었던 인도는 자동차와 TV와 냉장고등의 가전제품들과 모바일 폰과 오토바이 구입에 열광하고 있다. 2005년에 판매된 오토바이가 620만대 였고 승용차가 120만대 였으며 모바일 폰은 한 달에 200만대가 팔렸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모바일 폰 시장은 절대빈곤층을 제외한 7억이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된다. 생일 파티를 하는 청소년들을 카페나 제과점, 핏자헛이나 맥도널드에서 자주 보게 된다. 인도 청소년들의 선망은 모바일 폰과 청바지와 산트로(현대 자동차에서 나온 소형차)와 컴퓨터와 게임기라고 한다.

외식산업 분야도 많은 변화가 왔다. 그동안 우리의 외식은 기껏해야 한국식당이나 중국식당에 가는 것이 다였으나 이제는 다양한 곳에서 핏자, 햄버거, 쥬스, 커피와 청소년들을 겨냥하는 인도 스낵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지 먹고 마시며 즐기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현재 첸나이 시내에 한국식당이 4개 있으며 현대자동차가 공장이 있는 산업단지 부근에는 4, 5개가 있어서 한국인뿐 만 아니라 인도인들도 한국 음식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 음식은 인도인들에게 건강식으로 알려졌으며 김치를 찾는 고개들이 증가하고 있다.

영화관과 스포츠시설, 운동장과 공원도 새롭게 단장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휘트니스 쎈타도 부유층들의 웰빙의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인도의 도시는 인구 집중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신도시들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쾌적하고 편리한 장소로 기획되고 있으나 시골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며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

농촌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실업의 문제다. 70% 넘는 인구가 여전히 시골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한다. 대지주들은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하며 농업관련 비즈니스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지주나 달릿들은 1일 노동자로서 농한기에만 일을 하고 농번기에는 쉬는 반실업자다. 대지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실업자인 농업 노동자들로서 여성들은 30-50루피, 남성들은 50-100루피를 노임으로 받는다. 대부분의 달릿들은 극빈자로서 교육, 의료, 문화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군 소재지(디스트릭)의 달릿들은 65%, 면소재지(만달)의 달릿들은 95%, 시골마을의 달릿들은 99%가 1일 노동자로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농업의 기계화는 농민들을 실업의 길로 내몰고 있으며 노동의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어서 가장 큰 농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농촌 주민들은 식수문제로 고난을 겪고 있다. 디스트릭과 탈룩(읍), 만달에는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더라도 상수도가 보급되고 있으나 농촌마을은 상수도 보급률이 낮다. 대부분의 마을들이 지하수 개발을 통하여 자체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모터 펌프로 끌어올린 물을 워터탱크에 저장을 해서 수도관을 통해서 각 가정에 공급하거나 아니면 마을 몇 곳에 수도시설을 하여 공동으로 사용한다. 작두샘을 개발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을들도 있다. 가뭄이 들어서 물이 부족할 경우 항아리를 옆에 끼고 물을 길러가는 어린이들과 여성들과 식수 공급 차량을 기다리는 길고 긴 줄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전기 사정은 10년 전보다 좋아졌다. 그러나 탈룩과 만달과 빌리지에서는 여전히 전력량의 부족으로 일정한 시간에 단전이 실시되고 있으며 자주 전기가 나간다.

교육문제는 아주 시급하다. 농촌 사람들은 도시인들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적으며 문맹률 또한 두 배나 높다. 빌리지의 학교는 한 칸의 교실에서 1학년에서 5학년의 학생들이 함께 한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는 곳이 많고 특별히 달릿 아동들은 상위계급 아동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며 앞자리에 앉지 못하고 문 입구 쪽에 앉는 등의 차별을 받고 있다. 교실이 부족해서 나무 그늘에서 공부를 하는 교사와 학생들을 왕왕 볼 수 있다. 

대중교통은 거의 발달되지 않았다. 디스트릭이나 만달이나 탈룩 소재지에서 빌리지행 버스는 하루에 3차례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있다. 교통의 불편은 농촌을 도시와 격리시키며 농촌 주민들을 의료와 교육 혜택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달릿들의 주택은 단칸방의 형태이며 부엌과 방과 창고 또는 짐승의 우리가 분리되지 않는다. 간혹 소변용 화장실을 두기도 하나 대변용 화장실은 마을에 한두 개 있는 정도다. 한 칸의 방에서 4-6인의 가족들이 함께 잠을 잘 수 없으므로 남자들은 남길에 그물침대를 펴고 잔다. 각 주마다 달릿들과 수드라계급(4번째)을 위해서 주택을 공급하고 있는데 대략 7평의 규모이며 거실과 부엌과 방 1개로 이루어진 성냥갑 모양의 콘크리트집이다. 

개, 돼지, 소, 염소, 닭 등등 모든 짐승들이 방목되므로 방치된 짐승의 분뇨들이 파리와 온갖 벌레들의 온상이 되며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마을의 입구나 후미진 곳에 형성된 인분밭의 마른 인분은 바람에 날려서 식수와 손을 통해서 주민들에게 기생충뿐 만아니라 많은 질병을 감염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문명과 문화의 공간으로 정비되고 있는 도시의 얼굴과 온갖 고난과 불편 속에서 신음하는 농촌의 얼굴은 숨길 수 없는 인도의 얼굴이다. (계속)

이옥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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