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의 미래, 그 절망과 꿈> 연재를 시작하며 

이 물음으로 글을 시작하는 마음이 심란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20대의 청년들에게 도대체 미래는 있는 것인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창창한 이들에게 기성세대가 ‘미래가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작금의 상황은 잘못 되었다.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를 묻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출구를 찾지 못한 시대를 향한 불만은 여기 저기서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 시대의 길이 꼭 막혀 버린 이유가 바로 ‘낙하산’과 ‘사다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2014년 발표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중 ‘어차피 난 이것 밖에 안돼’는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투덜거리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에게 “불평투성이라고 욕”하고, “낙오자의 바코드”를 찍어 외면하고 배제하고. 그러니 ‘나’에게 이 세상은 XX 같아!라고 소리지른다. 그리고 반복되는 후렴구: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돼
낙하산과 사다리 없이 너와 같을순 없어
낙화산만 준비된다면 문제없어
하늘을 날 수 있어 너와 똑같이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돼.

이젠 세상이 어떻게 망가지건 말건 아무 것도 상관없고, 좋은 날이 올거라는 속절없는 이야기에 더 이상 무감해져 버린 X같은 이 세상을 “갈아 마셔”라고 2절은 외친다. 그리고 다시 후렴이 반복된다: “어차피 난 이것 밖에 안 돼. 낙하산과 사다리 없이 너와 같은 순 없어.”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내가 “낙하산만 준비된다면” 너와 똑같이 하늘을 날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 이유다. 

세상이 이럴 때 교회는 이런 대안과 위로를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교회가 오히려 더 세상보다 속물적이다. 국내 개신교 주요 교단들 중 가장 목회자 세습율이 높았던 감리교회 내에서 이런 말들은 그냥 말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버지가 교단의 감독 출신이거나 하면,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여러 경로들을 통해 심지어 대학 전임교원의 자리까지 따 내는 현실은 내가 현실에서 ‘어차피 이것 밖에 안’ 되는 이유가 내가 무능력해서이기 보다는 오히려 얼마 되지 않은 자리를 인맥과 학력으로 독점하는 특정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달빛요정’의 노래 속에서보다 더 절망적이고 씁씁한 것은 바로 이것이 세속의 현실이 아니라, 종교계 내부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런 암울한 현실에서 ‘달빛요정’은 다시 쏟아낸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 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20승.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내 발모가지와 손모가지가 분질러지고 잘라져 나가는 순간에 세상은 월드컵 코리아였고, 박찬호 20승이 소망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가 소망하는 세상은 다를까? 아무도 현실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할 말은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여기 저기서 성나고 볼멘 소리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들을 쏟아내낸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어차피 알고 있는 이야기로, 그걸 이야기해서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꿀 것도 아닌데, 분위기 깨지 말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렇게 나는 외톨이가 되고, 세상의 은둔자가 된다. 그리고 불평은 그냥 불평이 된다. 사회를 변혁시키고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그 어떤 촉매가 되지 못하고, 그냥 주변 사람 모두 다 기분 나쁘게 만들고 끝난다.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도 살아가야 하는 젊은 우리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젊은 세대가 미취업으로 절망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기성세대가 준비한 사회적 안전장치들 중 특별히 ‘연금’ 시스템은 붕괴한다고 봐야한다. 그저 지금 연금수급받는 이들을 위해 직장인들에게 돈 뜯어내지만, 정작 지금 내는 이들은 미래에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낸 돈은 기존 수급자들의 연금을 지급하는데 다 쓰일 것이기 때문이고, 젊은 세대의 취업률이 지금처럼 절망적이라면, 향후 10-20년대 연금을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청년세대의 취업률이 치명적인 이유이다. 종교계도 마찬가지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목회자들 숫자가 가장 많아서, 전체적으로 세대 간 불균형이 심화되었는데, 해결방법은 숫자가 많은 세대의 조기은퇴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목회현장으로 진입하는데 장벽을 설치하는 것이다. ‘수급조절’이라는 명목과 ‘목회자의 자질 향상’이라는 허울로 말이다. 사고치는 목회자들은 기존의 목회자들이지 결코 지금 목회현장으로 진입하려는 대학원 졸업생이 아닌데 말이다. 진정으로 수급조절을 하려면, 기존 세대의 ‘조기은퇴’가 더 시급할텐데, 그 세대가 권력을 잡고 있으니, 그쪽으로는 한 마디도 못하고, 힘없고 줄 없고 빽 없는 젊은 세대 붙잡고 권력질이다. 한심하게. 

요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 마음은 참 심란하다. 점점 많은 학생들이 신학대학원에 가지 않으려는 추세다. 어차피 7년 공부하고, 3년 인턴목회자 과정 마치고 나야, 겨우 미자립 교회 나가는 것도 여기 저기 인맥을 통해 알아봐야 하는 처절하고 절망적인 상황.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멀고 힘든 길을 가야하는가? 사명이고 부르심이라면, 길이 있어야 따라갈 것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훌쩍 학부 졸업 후 다른 길을 알아본다. 문제는 이것이 그냥 지금 한때의 분위기가 아니라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 그냥 주저앉아야 할까? 
다시 힘을 내야 할까? 
도대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같은 시간의 구별이 의미는 있는걸까? 그냥 매번 똑같이 절망적이고 비참한 시간들의 연속이라면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혹자는 이야기한다. 언제 청년세대에게 유리했던 시대가 존재하냐고. 맞는 말이다. 청년 세대는 언제나 기존 세대로 성장하여 편입되는 세대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시대적 상황을 맞이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적 상황, 즉 대부분이 미취업 혹은 신용불량자의 벼랑에 내몰려 살아야 하는 상황, 소위 SKY를 나와도 취업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 문자 그대로 뭐 하나 안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에 매 시대 상황은 다르지만 다들 불안정했다는 말은 위로도 용기도 되지 않는다.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 젊은 시절을 보내야 하는 것이 그저 한스러울 따름이다. 

대학1년 시절을 마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장을 다닌 적이 있다. 몇 달간 일하다 부도가 나는 바람에 공장생활은 끝이 났다. 한 달 월급이 15만원 이었는데, 다 못 받았다. 여름철 경기가 돌고 나면 받기로 하고 일단 일을 시작했는데, 그해 여름은 무척 시원했다. 여름 수영장과 해변에서 쓰는 튜브 만드는 공장이었다. 기록적으로 서늘한 여름 덕에 물놀이 용품이 잘 팔리지가 않았고, 여름 특수를 고려해서 여기 저기 빚내서 만든 여름 물놀이 용품들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은 상황에서 내 월급 달라고 사장에게 시위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리고 커피 숍 웨이터 등을 전전하며 1년을 보내다 결국 군대에 갔다. 아무런 목표 의식도 없고,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시절, 유일한 낙은 친구들과 더불어 금요일 모여 노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냥 놀았다. 의미와 동기 그런건 사치품이었다. 안 그러면 폭발할 지경이었으니까. 미래? 우리에게 미래가 있었을까? 그런 것도 나중 일이다. 나 하나 빼고 당시 내 친구들은 전부 대학이라는 곳을 진학하지 못했다. 그렇다. ‘못 했다.’ 지금은 그 시절 친구들과 연락이 다 끊어졌지만, 삶이 고단할 때, 혹은 옛날이 생각날 때, 문득 문득 그 친구들을 떠 올린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과 더불어 있어서, 그 시절 나에게도 ‘행복’이 있었다. 그때 내 삶에는 내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관심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였을 뿐. 그러다 재밌게 모여 놀 수 있는 주말이 오면, 그냥 즐거웠을 따름이고, 혼자가 아니라 외롭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가난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씩 군대 영장을 받아 군대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영장이 나와 그 다음해 군대로 갔다. 

결국 삶의 ‘행복’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닐까? 어느 덧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길들여져서, 남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무엇을 추구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분명히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행복은 나를 위한 것이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의 지금 삶도 이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삶이란 경제적 여건이 아니다. 행복한 삶은 안정적인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 이제 이 물음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너 지금 행복해?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 

유발 하라리는 최근 번역출판된 책 『사피엔스』에서 수렵채집인들이 농경문화인으로 바뀌면서, 단위면적당 식량생산 증가로 더 많은 인구와 구성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의 삶이 이전보다 더 행복해진 것은 결코 아니라고 증언한다. 온 땅과 하늘을 지붕삼아 돌아다니던 그들은 이제 한 곳에 정착하여 보다 많은 식량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잉여 식량은 그들이 독점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배계층에게 세금으로 빼앗기고 오히려 수렵채집인들보다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세상은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여 포스트휴먼의 세상으로 진입한다지만, 이제 인간이 생물학적인 몸을 넘어서서 인공적 기계 몸으로 갈아입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생물학적 한계 너머로 이행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온다지만, 그렇다고 행복할까?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농사짓는 농부의 삶은 이전보다 더 억압적이고 척박해졌지만, 농부들이 만들어낸 잉여 식량의 힘으로 왕과 사제들과 서기관들은 이전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꿈꾸지 못했을 문명의 인공적 생산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각 개인으로보면 농경사회의 억압과 착취는 이전세대보다 훨씬 더 가혹해졌지만, 문명은 이전 시대보다 발전하는 역설적 상황이 진행되었고, 이는 역사적으로 보면 사피엔스의 마지막 실수가 아니었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우리는 그런 잘못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한 개인의 힘으로 이 흐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이제 더 많은 식구를 책임져야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농사를 포기하고 수렵과 채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기약 없이 포스트휴먼의 시대로 맨몸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도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이미 기성세대인 필자는 이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게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내가 대답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청년 세대에 속한 당사자들이 대답을 만들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발 하라리는 아주 옛날 사피엔스가 유일한 인류 종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류의 형제 종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던 시절, 몸집이 그들보다 크지도 못하고, 강력한 개인 무기를 지니지도 못한 사피엔스가 다른 형제 종들을 누르고 유일한 생존 인류 종이 된 비결들 중 하나는 바로 ‘언어를 통해 가상의 세계를 창출하는 능력,’ 즉 (속된 말로) ‘뒷 담화’였다고 지적한다. 말은 가상의 창출이다. 사실의 보고나 기록이 언어의 원시적 능력이라면, 그 언어를 통해 인간들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가상의 세계를 창출하고, 공유하고 그리고 소통하면서 공통의 꿈 즉 이상과 가치들을 창출해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연재는 진정 이 미래없는 현실로 내동댕이 쳐 진 젊은 세대가 이제 어떻게 (다시 그들처럼) 가상의 세계를 창출해 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연재에서는 20대의 미래를 각자의 시각에서 다양하게 연재하고자 한다. 이 연재를 통해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냥 재미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뒷 담화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젊은 세대가 살아갈 내일과 연관된 어떤 이야기라도 우리가 만들고 창출할 가상의 세계에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일준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